8. 실재 세계란 무엇인가?
실재 세계는 지각이 내놓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나 실재 세계는 그대가 만든 것과 정반대되는 것을 나타낸다. 그대의 세계는 두려움의 눈을 통해 보여, 그대 마음에 공포의 증인들을 데려온다. 실재 세계는 용서가 축복하는 눈을 통하지 않고는 지각될 수 없다. 그 눈은 공포가 불가능한 세계를 보며, 그 세계에서는 두려움의 증인을 찾을 수 없다.
실재 세계에는 그대의 세계에 비친 불행한 생각 하나하나를 바로잡는 짝이 있다. 그것은 그대 세계가 담은 두려움의 광경과 전투의 소리에 대한 확실한 교정이다. 실재 세계는 고요한 눈과 평화로운 마음을 통해 다르게 보이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곳에는 안식 외엔 아무것도 없다. 그곳에는 고통과 슬픔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용서 밖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재 세계의 광경들은 온화하다. 행복한 광경과 소리만이 스스로를 용서한 마음에 이를 수 있다.
스스로를 용서한 마음이 죽음과 공격과 살인의 생각을 무엇에 쓰겠는가? 그 마음이 자기를 둘러싼 것에서 안전과 사랑과 기쁨 외에 무엇을 지각할 수 있겠는가? 그 마음이 정죄하기로 선택할 만한 것이 무엇이며, 대적하여 판단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 마음이 보는 세계는 자기 안에서 평화로운 마음에서 나온다. 그 마음이 보는 어떤 것에도 위험은 도사리지 않는다. 그 마음은 친절하고, 오직 친절함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실재 세계는 죄와 죄책의 꿈이 끝났고 하나님의 아들이 더는 잠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깨어난 눈은 아버지의 사랑의 확실한 반영을, 그가 해방되었다는 확실한 약속을 지각한다. 실재 세계는 시간의 끝을 의미한다. 실재 세계를 지각하는 것이 시간을 목적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시간이 성령의 목적을 다 섬기고 나면, 성령에게는 시간이 필요 없다. 이제 성령은 하나님이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을 그 한순간만을 기다린다. 그러면 시간은 사라지고, 사라지면서 지각도 함께 데려가, 오직 진리만이 그 자체로 남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이 우리의 목표다. 그 순간이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용서받은 세계를 바라볼 때, 우리를 불러 집으로 데려가려고 오는 이는 성령이다. 성령은 용서가 회복해준 우리의 정체성을 상기시켜준다.
실재 세계는 지각이 내놓는 다른 모든 것처럼 하나의 상징이지만, 그대가 두려움의 눈으로 만든 세계와는 정반대되는 것을 나타낸다. 실재 세계는 용서가 축복하는 눈을 통해서만 지각될 수 있으며, 두려운 광경과 전투의 소리를 바로잡는 확실한 교정이다. 고요한 눈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보면 실재 세계에는 안식 외엔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를 용서한 마음은 안전과 사랑과 기쁨만을 지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