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대를 둘러싼 하나님

그대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그대가 궁극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 깨달음은 천국이 그대에게 회복되었다는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직 이 천국만을 창조했고, 하나님은 이것에서 떠나지도, 자신과 분리된 채로 이것을 남겨 두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아들의 처소이며,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고 아버지와 떨어져 살지 않는다. 천국은 장소도 아니고 상태도 아니다. 천국은 다만 완전한 하나됨에 대한 자각이며,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대한 앎이다. 이 하나됨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고, 안에도 그 밖의 그 무엇도 없다.

하나님이 자신에 대한 앎 외에 무엇을 줄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 밖에 무엇을 줄 것이 있겠는가? 그대가 다른 무언가를, 즉 그대 자신 바깥의 무언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그대는 천국에 대한 자각과 그대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자각을 잃었다.

그리고 그대는 아직 그대가 깨닫는 것보다 더 기이한 일을 저질렀다. 그대는 자신의 죄책감을 마음에서 몸으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몸은 죄책감을 지닐 수 없다. 몸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그대는 자신을 속이고 있다. 그대는 자신의 마음을 미워한다. 죄책감이 그 안에 들어왔고, 마음은 형제의 마음과 분리된 채로 남으려 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결합되어 있고, 몸은 그렇지 않다.

마음에 몸의 속성을 부여함으로써만 분리가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조각나고 사적이고 홀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의 죄책감은 마음을 분리된 채로 붙잡아 두며, 이 죄책감은 몸에 투사된다. 몸은 분리를 마음 안에 붙잡아 두고 마음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공격받기에 고통받고 죽는다. 마음은 공격할 수 없지만, 환상을 만들어 내고 몸에게 그 환상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지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만족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결코 몸이 하는 행동이 아니다. 마음이 몸이 실제로 자신의 환상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고 믿지 않는 한, 마음은 몸에 대한 죄책감의 투사를 늘림으로써 몸을 공격할 것이다. 이 점에서 마음은 분명히 망상에 빠져 있다. 마음은 공격할 수 없지만 자신이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공격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몸을 해치는 데 자신이 하는 일을 쓴다.

마음은 공격할 수 없지만 자신을 속일 수는 있다. 그리고 마음이 몸을 공격했다고 믿을 때 마음이 하는 일은 이것이 전부다. 마음은 자신의 죄책감을 투사할 수는 있지만, 투사를 통해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몸의 기능을 명백히 잘못 지각할 수는 있지만, 몸의 기능을 성령이 정한 것과 다르게 바꿀 수는 없다.

몸은 사랑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랑은 몸을 정죄하지 않고 사랑으로 쓸 수 있다.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이 만든 것을 존중하며, 그 몸을 써서 하나님의 아들을 환영으로부터 구한다. 그대는 분리의 도구가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재해석되고 사랑의 목적을 위해 쓰이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대는 복수의 환상에 빠져 있던 상태에서 그 환상으로부터 풀려나는 상태로 바뀌는 것을 반기고 지지하지 않겠는가?

몸에 대한 그대의 지각은 명백히 병들 수 있지만, 병든 지각을 몸에 투사하지 말라. 파괴할 수 없는 것을 파괴적으로 만들려는 그대의 소망은 결코 아무런 실제 효과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다만 하나님이 창조물이 되기를 뜻하는 그대로일 뿐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하나님의 뜻을 파괴적으로 만들 수 없다. 그대는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는 환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환상이 전부다. 몸을 죄책감의 희생양으로 삼아, 몸의 공격을 지시해 놓고 그대가 몸이 하기를 바랐던 일에 대해 몸을 탓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환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여전히 환상이며, 환상은 몸이 하는 일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몸은 환상을 꿈꾸지 않으며, 환상은 다만 몸이 자산이 될 수 있는 자리에서 몸을 부채로 만들 뿐이다.

환상이 그대의 몸을 그대의 "적"으로, 곧 약하고 상하기 쉽고 배신을 일삼아 그대가 몸에 쏟는 증오를 받아 마땅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대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가? 그대는 자신이 미워하는 몸, 곧 복수의 도구이자 그대의 죄책감의 지각된 근원과 자신을 동일시해 왔다.

그대는 아무 의미도 없는 몸에게,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의 처소라고 선포하고 그것을 그에게 등 돌리게 함으로써, 이런 일을 저질러 왔다. 몸이 그대가 하나님을 품는 자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도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아들도, 증오를 품고 있고 그대가 복수와 폭력과 죽음의 씨앗을 뿌려 놓은 거처에는 들어갈 수 없다.

그대가 자신의 죄책감을 섬기도록 만든 몸이 그대와 다른 마음들 사이에 서 있다. 마음들은 결합되어 있지만, 그대는 마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대는 자신이 분리된 감옥에 갇혀, 멀리 떨어져 닿을 수 없고, 닿아지는 것만큼이나 뻗어 나갈 수도 없는 것으로 본다. 그대는 자신이 만든 이 감옥을 미워하며, 감옥을 파괴하려 한다.

그러나 그대는 감옥을 손상되지 않은 채, 그대의 죄책감이 실리지 않은 채로 남겨 두고 감옥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그렇게 해야만 그대는 벗어날 수 있다. 복수의 집은 그대의 것이 아니다. 그대가 자신의 증오를 담아 두려고 마련한 그 자리는 감옥이 아니라 그대 자신에 대한 환영이다.

몸은 마음의 영원한 속성인 보편적 소통에 부과된 한계다. 그러나 그 소통은 내면의 것이다.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다다른다. 마음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마음은 자기 안에 한계가 없으며, 마음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음은 그대를 온전히 감싸니, 그대는 마음 안에 있고 마음은 그대 안에 있다. 그 어디에도, 그 언제에도, 그 밖의 다른 것은 없다. 몸은 그대 바깥에 있으며, 다만 그대를 둘러싸서 다른 이들로부터 그대를 차단하고 그들에게서 떨어뜨려 놓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몸은 거기에 있지 않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사이에는 장벽이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은 환영 안에서를 제외하고는 자신에게서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은 그의 실재가 아니지만, 그는 환상이 실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분리는 오직 하나님이 틀렸을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분리를 가능하게 하려면 하나님이 다르게 창조했어야 했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분리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것들을 창조하고 서로 다른 등급의 실재를 세워, 그중 일부만이 사랑이게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히 그 자신과 같아야 하고, 영원히 변함없어야 하며, 영원히 대안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사랑은 그러하다. 그대는 자신의 둘레에 장벽을 세울 수 없으니, 하나님이 자신과 그대 사이에 아무 장벽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손을 뻗어 천국에 닿을 수 있다. 손이 결합된 그대들은 몸을 넘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대 자신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정체성에 함께 다다르기 위해서다. 이것이 그대 바깥에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없는 곳에?

하나님이 몸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이 아닌 것으로, 자신이 있을 수 없는 곳에 그대를 창조했는가? 그대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둘러싸여 있다. 하나님이 감싸고 있는 그대에게 어떤 한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