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기 자신을 아는 수업
우리는 모든 사람이 가르치며, 언제나 가르친다는 것을 이미 배웠다. 그대는 잘 가르쳐 왔을 수도 있지만, 그대의 가르침의 위안을 받아들이는 법은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대가 자신이 가르쳐 온 것을 살펴보고, 그것이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과 얼마나 다른지 살펴본다면, 그대는 자신의 스승이 자신의 사고 체계 너머에서 왔다는 것을 반드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스승은 그대의 사고 체계를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고, 그 사고 체계가 참되지 않다는 것을 지각할 수 있었다. 스승은 필시 매우 다른 사고 체계 — 그대의 것과 공통점이 전혀 없는 사고 체계 — 의 근거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확실히 스승이 가르친 것과, 스승을 통해 그대가 가르친 것은, 스승이 오기 전에 그대가 가르쳤던 것과 공통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승을 통해 그대가 가르친 것의 결과는 고통이 있던 곳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었으며, 고통은 사라져 기쁨으로 대체되었다.
그대는 자유를 가르쳐 왔을 수도 있지만, 자유로워지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나는 앞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것이며, 그들도 자기 자신을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대가 자신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을 판단한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에고의 가르침은 즉각적인 결과를 낳으니, 그 결정이 그대의 선택으로 즉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받아들임은 그대가 그 결정에 따라 자기 자신을 판단하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인과 결과(Cause/Effect)는 에고의 사고 체계 안에서 매우 또렷하니, 그대의 모든 배움이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세우는 쪽으로 향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가 그토록 부지런히 믿도록 스스로에게 가르쳐 온 것에 그대는 믿음을 두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그 믿음의 증인들을 선택하는 데, 그리고 진리라는 원인과 그 결과를 대변하는 증인들을 피하는 데 얼마나 많은 주의를 기울여 왔는지 기억하라. 자신이 가르친 것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대가 아들됨을 하나로 지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에게 보여 주지 않는가? 그리고 그 사실은 또한, 그대가 자기 자신을 하나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도 그대에게 보여 주지 않는가?
확신이 전혀 없이 성공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며, 확신이 그대 밖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자유를 믿지 않았다면 자유를 결코 가르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가르친 것은 그대 자신에게서 나왔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대가 가르친 것이 나온 그 참나(Self)를 그대는 분명히 알지 못하며, 그 참나가 작용하는데도 그 참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작용하는 것은 거기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참나가 해 온 일을 부인할 때에만, 그대는 그 참나의 임재(Presence)를 부인할 수 있다.
이것은 그대 자신을 아는 법에 대한 수업이다. 그대는 자신이 무엇인지 가르쳐 왔지만, 자신이 무엇인지가 그대를 가르치게 하지는 않았다. 그대는 명백한 것을 피하고, 완전히 분명한 그 진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보지 않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 왔다.
그러나 그대 안에는 그대가 가르친 모든 것이 있다. 그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 수 있는가? 그것은 필시 정말로 그대 자신 밖에 있는, 배우지 못한 그 부분일 수밖에 없다. 그대 자신이 투사해서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그대가 안으로 받아들인 것 중 그대가 아닌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대가 마음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을 정말로 바꾸지는 않는다. 환영은 다만 거기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일 뿐이다. 그리고 진리와 환영 사이의 겉보기 갈등은 오직, 진리로부터가 아니라 환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함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
그대의 가르침은 이미 이것을 이루었으니, 성령이 그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성령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창조물도 떠나지 않았다. 그대가 하나님과 성령을 함께 아우르듯이, 성령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그대다. 이는 분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그대가 없애려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대에게 더했기 때문이다.
성령은 그대의 창조물들과 그대를 함께 지켰으며, 그대가 배제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와 하나로 지켜 두었다. 그리고 창조물들은, 자신들을 대체하려고 그대가 안으로 받아들인 것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것들은, 그대가 알지 못하는 참나의 일부로서, 아주 실재한다. 그것들은 성령을 통해 그대에게 소통하며, 자신들의 힘과, 자신들의 창조에 대해 그대에게 지니는 감사를, 그것들의 집인 그대 자신에 대한 그대의 가르침에 기꺼이 바친다.
하나님을 품은 그대는 그것들 또한 품는다. 실재하는 그 무엇도 자신의 창조주의 마음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것은 결코 거기 있었던 적이 없다.
그대는 서로 갈등하는 두 개의 참나가 아니다. 그대를 넘어서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을 품고 있고 하나님이 품고 있는 그대가 우주라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없는 바깥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대는 이 진리를 가르쳐 왔으며, 우주의 먼 곳에서, 그러나 그대 자신을 넘어서지 않는 곳에서, 그대의 가르침에 대한 증인들이 그대의 배움을 돕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 증인들의 감사는 그대의 것과 하나님의 것과 하나로 결합하여 그대가 가르친 것에 대한 그대의 믿음을 강화해 왔다. 그대가 가르친 것이 참이기 때문이다.
홀로 있을 때 그대는 자신의 가르침 밖에, 그 가르침과 떨어져 서 있다. 그러나 그 증인들과 함께, 그대는 자신이 다만 자기 자신을 가르쳤을 뿐이며, 그 증인들과 나눈 그 확신에서 배웠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올해 그대는 배우기 시작할 것이며, 배움을 가르침에 걸맞게 만들 것이다. 그대는 가르치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자발성으로 이것을 선택했다. 그 선택 때문에 고통받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가르침의 기쁨은 그럼에도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가르침의 기쁨은 배우는 자 안에 있으니, 배우는 자는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승에게 바치고 스승과 나누기 때문이다. 그대가 배움에 따라, 자신이 무엇인지 그대에게 가르쳐 주는 그대의 참나에 대한 그대의 감사는 자라나 그대가 그를 공경하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참나의 힘과 세기와 순수함을 배우게 될 것이며, 참나의 아버지가 그러하듯 참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참나의 왕국에는 한계도 끝도 없으며, 참나 안에는 완전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그대이며, 이것 밖의 그 무엇도 그대가 아니다. 그대의 가장 거룩한 참나에게, 그대인 것에 대해, 그리고 그대를 지금의 그대로 창조한 참나인 것에 대해, 모든 찬양이 마땅하다.
조만간 모든 사람은 자신의 참나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그 간극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각자는 이 다리를 놓으며, 각자가 그 간극에 다리를 놓기 위해 약간의 노력이라도 기울이고자 하는 즉시, 그 다리는 각자를 간극 너머로 데려간다. 천국의 힘과, 천국을 지금의 천국이게 만드는, 그 안에서 하나로 결합한 모든 이의 하나 된 뜻이 각자의 작은 노력을 강력하게 보충해 준다.
그렇게 하여 건너가고자 하는 자는 말 그대로 거기로 실려 간다. 그대의 다리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튼튼하게 지어져 있으며, 그대의 발은 그 위에 굳게 디뎌져 있다. 반대편에 서서 그대를 기다리는 이들의 이끌림이 그대를 안전하게 건너오도록 이끌지 못할 것이라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는 자신이 있고자 하는 곳, 그리고 그대의 참나가 그대를 기다리는 그곳으로 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