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작음이 아닌 위대함

1) 위대함이 그대의 집

작음에 만족하지 말라. 그러나 작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대가 작음에 결코 만족할 수 없는지 확실히 이해하라. 작음은 그대가 자기 자신에게 주는 봉헌물이다. 그대는 위대함 대신 작음을 바치고, 작음을 받아들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작은 까닭은, 이 세상이 작음으로 만들어졌고 작음이 그대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기이한 믿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무엇을 위해서든, 그것이 그대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애쓸 때, 그대는 자기 자신을 하찮게 만들고 영광에 스스로 눈멀게 하는 것이다.

작음과 영광은 그대의 애씀과 그대의 경계심 앞에 열려 있는 선택들이다. 그대는 언제나 하나를 선택하면서 다른 하나를 희생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선택할 때마다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선택이 그대 자신에 대한 그대의 평가라는 것이다. 작음을 선택하면 그대는 평화를 갖지 못할 것이니, 자기 자신을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가 대신 바치는 그 무엇이든 그대를 만족시키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선물이다.

그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작음은 어떤 형태로도 결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대는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시도해 볼 자유가 있지만, 그대가 하게 될 일은 오직 그대의 귀향을 늦추는 것뿐이다. 그대는 오직 위대함 안에서만 만족할 것이니, 위대함이 그대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자기 자신에게 지고 있는 깊은 책임이 있으며, 그대는 그 책임을 언제나 기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가르침은 처음에는 힘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가르침이 참되며 다만 그대의 힘에 대한 찬사일 뿐임을 깨달을 때 그대는 그 가르침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작음을 찾아 발견해 온 그대여, 이것을 기억하라. 그대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는 그대가 자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서 비롯되며, 그대가 자기 자신에게 두는 가치를 나타낸다. 작은 것이 그대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대는 자기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의 역할은 작지 않으며, 그대의 역할을 찾아 그 역할을 다함으로써만 그대는 작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성령이 그 역할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 역할의 위대함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그 역할은 성령을 통해 위대함(Magnitude) 자체로부터 그대에게 이르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 역할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으니, 그대가 그 역할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애씀은 작음에 맞서 기울여야 한다. 이 세상에서 그대의 위대함을 지키려면 경계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음의 세상에서 그대의 위대함을 완전한 알아차림 안에 붙드는 것은, 작은 존재가 떠맡을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그 과제는 그대의 작음이 아니라 그대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로서 그대에게 요구된다. 또한 그 과제가 그대 홀로에게만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그대가 기울이는 모든 노력을 뒷받침할 것이다.

작은 것을 찾는다면, 그대는 자기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힘을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 모든 것보다 못한 것에 만족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없이는 만족하지 않고, 그 아들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것보다 못한 것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을 품기로 결정

나는 앞서 그대에게 물었다. "그대는 에고의 인질이 되겠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품은 이가 되겠는가?" 그대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성령이 그대에게 이 질문을 하게 하라. 그대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실제로 이 질문에 답하며, 그 결정에 따라 슬픔이나 기쁨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대의 창조 안에서 자기 자신을 그대에게 주었을 때, 하나님은 그대를 영원히 자신을 품은 이로 세웠다. 하나님은 그대를 떠나지 않았고, 그대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그대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에고의 인질로 만들려고 온갖 시도를 하지만, 그 어떤 시도도 하나님이 자신과 하나로 결합한 이를 작게 만들 수 없다. 그대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는 천국을 위한 것이거나 지옥을 위한 것이며, 그대가 무엇을 위해 결정했는지에 대한 알아차림을 그대에게 가져온다.

성령은 그대의 위대함을 그대의 마음 안에 붙들 수 있다. 그 위대함은 모든 작음에서 깨끗하고 또렷하며 완전히 안전하여, 작음의 세상이 그대에게 주고자 하는 그 어떤 작은 선물에도 닿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위해, 그대는 성령이 그대를 위해 뜻하는 것에 맞서는 편에 설 수 없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결정하라. 작음과, 그대가 작음에 만족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대 자신에 대해 그대가 내리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대 안에 있는 그 힘과 영광은, 그대처럼 자기 자신을 작다고 지각하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이들은 작음이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위대함의 감각으로 부풀려질 수 있다고 믿는다. 작음을 주지도 말고, 받아들이지도 말라. 모든 영예는 하나님을 품은 이에게 마땅하다. 그대의 작음은 그대를 속이지만, 그대의 위대함은 그대 안에 머무는, 그리고 그대가 그 안에 머무는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버지를 영원히 품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누구도 작음으로 대하지 말라. 이 세상으로의 거룩함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절기(성탄절)에, 그대를 위해 거룩함을 결정한 나와 하나가 되라.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품도록 임명한 이에게 위대함에 대한 알아차림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우리의 함께하는 과제다.

하나님의 선물을 주는 일은 그대의 모든 작음으로는 해낼 수 없지만, 그대 자신은 해낼 수 있다. 하나님이 그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대로부터 모든 이에게, 그리고 모든 이를 넘어 자신의 아들의 창조물들에게까지 이르지만, 그대를 떠나지 않는다. 그대의 작은 세상을 훨씬 넘어서지만 여전히 그대 안에서, 하나님은 영원히 확장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확장을 그대에게 가져오니, 그대가 하나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작음을 뒤로하고 헛되이 헤매지 않는 것이 희생인가? 영광으로 깨어나는 것은 희생이 아니다. 그러나 영광보다 못한 그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은 희생이다.

그대가 평화의 왕자에게 합당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라. 평화의 왕자는 그대가 품은 하나님을 기려 그대 안에 태어났다. 그대는 사랑을 작은 선물들로 사려고 해 왔기에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사랑을 너무 하찮게 여겨서 그 위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은 작지 않으며 사랑은 그대 안에 머무니, 그대가 하나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 안에 사는 위대함 앞에서, 그대 자신에 대한 그대의 초라한 인정과 그대가 주는 모든 작은 봉헌물은 무(無)로 사라진다.

3) 깨어남의 탄생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여, 오직 거룩함만이 그대를 만족시키고 그대에게 평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대는 언제 배우겠는가?

내가 그렇지 않았듯, 그대도 그대 자신만을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내가 그대를 위해 배웠기에 그대가 나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다만 그대의 것인 것을 그대에게 가르치고자 할 뿐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함께, 하나님을 품은 이를 죄책감과 약함에 묶어 두는 초라한 작음을, 그 안에 있는 영광에 대한 기쁜 알아차림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대 안에서의 나의 탄생은 장엄함(grandeur)으로의 그대의 깨어남이다. 나를 구유로 맞아들이지 말고, 거룩함이 완전한 평화 속에 머무는 거룩함의 제단으로 맞아들이라. 나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니, 그 왕국이 그대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대의 아버지에게 속해 있다. 영원히 작음을 넘어서 있어야 할 그대를 기리는 데 우리가 하나가 되자.

그대와 함께 머물기로 결정한 나와 함께 결정하라. 나는 나의 아버지가 뜻하는 대로 뜻하니, 아버지의 뜻이 한결같으며 언제나 그 자체와 평화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대는 아버지의 뜻 외에는 그 무엇에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배운 모든 것이 그대의 것임을 기억하며, 그보다 못한 것은 받아들이지 말라.

나의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을 나도 아버지처럼 사랑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것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듯이 나도 그럴 수 없다. 그리고 그대도 그럴 수 없다. 그대가 자신인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면, 그대는 자기 자신에게 바칠 더 이상의 선물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완전하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받았기에, 그대는 기꺼이 줄 것이다. 하나님을 품은 이는 그 무엇도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

그대가 구원을 하나님의 계획에 온전히 맡기고자 하고 스스로 평화를 움켜쥐려 시도하지 않고자 한다면, 구원은 그대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계획을 하나님의 계획 대신 쓸 수 있다고 여기지 말라.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나와 하나가 되라. 그렇게 하여 우리가 매이고자 하는 모든 이를 풀어 주며,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을 품고 있음을 함께 선포할 수 있게 하라.

그렇게 하여 우리는 그대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을 그 누구도 잊지 않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그대 자신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이 안에서 오직 하나님에 대한 기억과, 그 안에 있는 천국에 대한 기억만을 불러일으키라. 그대가 그대의 형제가 있기를 바라는 그곳에, 그대도 자신이 있다고 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옥과 작음을 향한 그 형제의 호소를 듣지 말고, 오직 천국과 위대함을 향한 그의 부름만을 들으라. 그의 부름이 곧 그대의 부름임을 잊지 말고, 나와 함께 그에게 응답하라. 하나님의 힘은 영원히 하나님을 품은 이의 편에 있으니, 그 힘은 오직 하나님이 머무는 그 평화만을 지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 앞에 작음을 두지 말라. 그 제단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 때문에 별들 위로 솟아 천국에까지 이른다.

이 수업은 즉각 배울 수 있다. 다만 그대가 하나님이 뜻하는 것에 시간이 걸린다고 믿는다면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다만, 그대가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보는 일을 차라리 미루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거룩한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며 모든 순간이다. 그대가 거룩한 순간이기를 바라는 그 순간이 곧 거룩한 순간이다. 그대가 거룩한 순간이 아니기를 바라는 그 순간은 그대에게서 사라진다. 그대는 거룩한 순간이 언제인지 결정해야 한다. 거룩한 순간을 미루지 말라. 그대가 거룩한 순간을 찾지 못할 과거와 미래를 넘어서, 거룩한 순간은 그대의 받아들임을 향해 빛나는 준비 상태로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가 거룩한 순간을 원하지 않는 한 거룩한 순간을 기쁜 알아차림 안으로 가져올 수 없다. 거룩한 순간이 작음으로부터의 해방 전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실천은 모든 작음을 놓아 버리려는 그대의 자발성에 근거해야 한다.

위대함이 그대에게 밝아 오는 순간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는 다만 위대함에 대한 그대의 갈망에 달려 있다. 그대가 위대함을 갈망하지 않고 대신 작음을 소중히 여기는 한, 그만큼 위대함은 그대에게서 멀리 있다. 그대가 위대함을 원하는 만큼, 그대는 위대함을 더 가까이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대 자신의 방식으로 구원을 찾아 구원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기지 말라. 그대의 구원을 위해 그대가 세운 모든 계획을 하나님의 계획과 맞바꾸어 내려놓으라.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를 만족시킬 것이며, 그 밖의 그 무엇도 그대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다. 평화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하나님 외의 그 누구에게서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되, 하나님 안에서는 위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보다 에고의 그 어떤 계획도 소중히 여기지 말라. 그대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그 어떤 계획에든 함께하기로 결정하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그대의 자리를 비워 두게 되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그대가 나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채워야 할 자리다.

나는 그대를 불러, 작음으로부터 세상을 해방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세상에 준 그 계획 안에서 그대의 거룩한 역할을 다하게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품은 이가 완전한 자유 안에 머물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떠난 구원의 계획에 대한 그 어떤 충성도 그대 자신의 마음 안에서 그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러나 하나님을 품은 것은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그대의 아버지가 자기 자신을 두어 놓은 그 거룩한 제단이 얼마나 완전하고 흠 없는지 그대는 배우고자 하는가? 그 완전함과 흠 없음을 그대는 거룩한 순간에 알아보게 될 것이니, 그 순간에 그대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모든 계획을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내려놓는다. 거기에 평화가 있으니, 그대가 그 조건들을 기꺼이 충족해 왔기에 완전히 또렷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원할 때면 언제든, 원하는 곳이면 어디서든 거룩한 순간을 요청할 수 있다. 그대의 실천에서, 작음 안에서 위대함을 찾기 위해 그대가 받아들여 온 모든 계획을 내려놓으려 하라. 위대함은 거기 없다. 거룩한 순간을 오직, 그대 홀로는 위대함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며 다만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데만 쓰라.

나는 그대가 나를 보고자 하는 만큼 또렷하게 거룩한 순간 안에 서 있다. 그리고 그대가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정도가, 거룩한 순간이 그대의 것이 될 그 시간의 척도다. 나는 그대에게 거룩한 순간을 즉시 그대의 것으로 만들라고 부른다. 하나님을 품은 이의 마음 안에서 작음으로부터의 해방은 시간이 아니라 자발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4) 완전한 소통

이 수업이 단순한 까닭은 진리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복잡함은 에고에게서 나오며, 명백한 것을 흐리려는 에고의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시작하여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대는 거룩한 순간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지만, 매우 단순한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 이유의 단순함을 흐리지 말라. 그렇게 한다면 다만 그대가 그 이유를 알아보지도 놓아 버리지도 않기를 더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단순한 이유를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것이다.

거룩한 순간은 그대가 완전한 소통을 받고 주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 말은, 거룩한 순간이 그대의 마음이 받는 것과 주는 것 둘 다에 열려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거룩한 순간은 모든 마음이 소통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순간은 그 무엇도 바꾸려 하지 않고, 다만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대가 사적인 생각을 갖고 사적인 생각을 간직하기를 더 바랄 때, 그대는 어떻게 이것을 할 수 있겠는가?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룩한 순간을 거룩한 순간이게 만드는 그 완전한 소통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대는 자신이 나누고 싶지 않은 생각을 품을 수 있다고, 그리고 구원이 생각을 자기 자신에게만 간직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오직 그대 자신만이 아는 사적인 생각들 안에서, 그대는 자신이 홀로 갖고자 하는 것은 간직하고 나누고자 하는 것은 나누는 방법을 찾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그대는 왜 자신이 주위 사람들과, 그리고 그대들 모두를 함께 에워싸는 하나님과 완전한 소통 안에 있지 않은지 의아해한다. 그대가 감추어 두고자 하는 생각 하나하나는 소통을 차단하니, 그대가 소통이 차단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소통을 깨뜨리는 것이 그대에게 가치를 지니는 한, 완전한 소통을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으라. "나는 완전한 소통을 갖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영원히 놓아 버릴 온전한 자발성이 나에게 있는가?"

답이 아니오라면, 성령이 완전한 소통을 그대에게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그대의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대가 성령과 그 소통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한 소통은 그것에 맞서기로 결정한 마음 안으로는 들어올 수 없다. 거룩한 순간은 동등한 자발성으로 주어지고 받아들여지니, 거룩한 순간은 모든 생각을 다스리는 그 단일한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순간을 위한 필요조건은 그대의 생각이 모두 순수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룩한 순간은 그대가 간직하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요구한다. 결백함은 그대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대가 결백함을 갖고자 하는 그 순간 결백함은 그대에게 주어진다.

속죄에 대한 필요가 없다면 속죄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서 숨기고자 하는 한, 그대는 완전한 소통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대가 숨기고자 하는 것은 그대에게서 숨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실천에서, 다만 속임에 맞서 경계하려고만 하고, 그대가 자기 자신에게만 간직하고자 하는 생각들을 지키려 하지 말라.

성령의 순수함이 그대가 간직하고자 하는 생각들을 빛으로 없애 버리게 하라. 그리고 성령이 그대에게 주는 그 순수함에 대한 준비 상태로 그대의 모든 알아차림을 가져오라. 그렇게 하여 성령은 그대가 하나님을 품은 이이며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인질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준비를 그대에게 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