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령의 결정

그대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로 선택할 때마다 그대는 파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그 결정은 잘못된 것이 될 것이다. 그 결정은 그런 결정으로 이어진 결정에 대한 개념 때문에 그대를 아프게 할 것이다.

그대가 혼자서, 또는 오직 그대 자신만을 위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그 어떤 생각도 그 결과에 있어 분리되거나 고립될 수 없다. 모든 결정은 아들됨(Sonship) 전체를 위해 내려지며, 안팎으로 향하고, 그대가 꿈꾸어 온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큰 별자리에 영향을 미친다.

속죄를 받아들인 자들은 완전한 평화(invulnerability) 안에 있다. 그러나 자신이 죄지었다고 믿는 자들은 죄책감을 구원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죄책감에 반응할 것이며, 죄책감을 보고 그 편에 설 것이다. 그리고 죄책감을 믿는 자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자신을 아프게 한다는 그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뜻(will)은 거룩하기에 그들에게 주어졌으며, 한계를 모르는 평화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다가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들의 뜻이 그들에게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이 조용히 그들을 대신해 그 뜻을 이해한다. 그리고 성령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홀로 결정해야 하는 그 불가능한 짐이나 애씀이나 노력 없이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에게 준다. 그대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대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답을 아는 도움이 있다.

그대에게 모든 것을 주는 이가 그저 그 선물을 그대에게 내어 주려 하는데, 그대 혼자서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전부인 그 작은 것에 만족하겠는가? 모든 것을 주는 이는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결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질문을 그대 자신에게도 던지지 말라. 대신 성령의 답을 받아들이라, 성령은 그대가 하나님이 그대를 위해 뜻하는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토록 아낌없이 그토록 기꺼이 그대에게 내어 주는 그 선물을 피하려 하지 말라. 성령은 오직 하나님이 그대를 위해 성령에게 준 것만을 그대에게 내어 준다. 그대는 그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결정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그대가 그렇다는 것을 안다. 그대는 하나님의 결정이라는 진리를 부정하고, 자신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평가 대신 자신에 대한 그대의 초라한 평가를 그 자리에 놓으려 하겠는가?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의 완전한 순수함에 대한 하나님의 확신을 그 무엇도 흔들 수 없으니, 그 순수함은 온전히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 순수함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지 말라, 그 순수함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화는 하나님이 자신의 속죄를 위해 세운 계획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는 모든 마음 안에 머문다. 그대는 구원을 알지 못하니, 구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원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결정하지 말고, 성령에게 모든 것을 물으며 모든 결정을 성령의 부드러운 조언에 맡기라. 하나님이 그대가 따르기를 바라는 그 계획을 아는 존재(One), 곧 성령만이 그 계획이 무엇인지 그대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 오직 성령의 지혜만이 그대를 그 계획을 따르도록 인도할 수 있다.

그대가 홀로 내리는 모든 결정은 그저 그대가 구원이 무엇인지, 그대가 무엇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규정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성령은 모든 구원이 죄책감으로부터의 도피임을 안다.

그대에게는 다른 "적"이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의 순수함을 기이하게 왜곡하는 이 죄책감에 맞서 성령은 그대의 유일한 친구다. 성령은 그대를 자유롭게 하는 결백함의 강력한 보호자다. 그리고 그대의 흐려지지 않은 마음에서 그대의 결백함을 가리는 모든 것을 되돌리는 것이 성령의 결정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그대가 구원을 향해 따르고자 하는 유일한 안내자가 되게 하라. 성령은 길을 알며 그 길에서 그대를 기꺼이 인도한다. 성령과 함께라면 그대는 하나님이 그대를 위해 뜻하는 것이 곧 그대의 뜻임을 반드시 배우게 될 것이다. 성령의 인도 없이는 그대는 자신이 홀로 안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대의 평화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는 구원이 오직 그대 안에만 있다고 결정했던 것만큼이나 틀림없는 일이다.

구원은 성령의 것이다. 하나님이 그대를 위해 구원을 성령에게 주었다. 성령은 구원을 잊지 않았다. 성령을 잊지 말라, 그러면 성령이 그대를 위해, 그대의 구원과 그대 안의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결정을 내려 줄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창조한 자신의 아들의 가치를 평가하려 하지 말라. 그렇게 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를 평가하고 그에게 불리하게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는 이 세상에서도 천국에서도 그 누구도 저지를 수 없는 이 상상 속의 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을 대신해 자신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는 그 "죄"가 죄책감의 근원이 아니라고 가르칠 뿐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은 두려워할 결과를 가질 수 없다.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를 광기에서 이끌어 내고자 하는 그 존재에 대한 그대의 믿음 안에서 고요히 있으라. 광기는 그대의 선택일 수는 있어도 그대의 실재는 아니다. 그대를 기억해 온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잊지 말라.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그가 창조된 그 사랑의 마음(Mind)에서, 그의 거처가 영원히 완전한 평화 속에 정해진 그곳에서 떨어지게 두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에게 오직 "나를 위해 결정해 달라"고 말하라, 그러면 그것으로 이루어진다. 성령의 결정은 하나님이 그대에 대해 아는 것을 비추는 것이며, 이 빛 안에서는 그 어떤 종류의 오류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성령이 그대를 위해 내리는 모든 결정 뒤에 모든 앎이 놓여 있는데, 그대가 알 수 없는 모든 것을 예측하려고 그토록 필사적으로 애쓸 이유가 무엇인가? 성령의 지혜와 사랑을 배우고, 어둠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답을 가르치라. 그대는 그들을 위해서도, 그대 자신을 위해서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그 평등한 사랑을 지닌 성령을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성령은 그대 바깥에 아무도 남겨 두지 않는다. 그래서 성령은 그대에게 그대의 것을 주니, 그대의 아버지가 그대로 하여금 그대의 것을 성령과 나누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성령에게 이끌리고, 다시 생각하지 말라. 결정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빠르고 확실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답하리라는 것을 신뢰하라.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무엇이 모두에게 오직 좋은 것만 가져다줄 수 있는지 결정할 유일한 책임을 그대 스스로 떠맡으려 하겠는가? 그대는 다음 사실을 알고자 하는가? 그대는 그대의 창조주와 소통하지 않는 가장 부자연스러운 습관을 스스로 배웠다.

그러나 그대는 여전히 창조주와, 그리고 그대 안에 있는 것처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과 긴밀한 소통을 하고 있다. 성령의 사랑 가득한 인도를 통해 고립을 배우지 않은 상태로 되돌리라. 그리고 그대가 내던져 버렸지만 결코 잃어버릴 수 없었던 그 모든 행복한 소통을 배우라. 그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의심스러울 때마다, 그대 안에 있는 성령의 임재를 생각하고, 오직 이것만을 스스로에게 말하라.

성령은 나를 인도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길을 안다. 그러나 성령은 자신이 내가 배우기를 바라는 것을 결코 나에게서 감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성령이 나를 위해 아는 모든 것을 나에게 전해 주리라고 신뢰한다. 그러고 나서 이미 그대 안에 있는 그대의 결백함을 지각하는 법을 성령이 그대에게 조용히 가르치게 하라.

그대가 형제의 결백함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그 사람 안에서 속죄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사람 안에서 속죄를 선포함으로써 그대는 속죄를 그대의 것으로 만들고, 그대가 찾던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결백함이 거기 없다고 여전히 믿는 동안에는, 그대는 형제 안에서 빛나는 그 사람의 결백함의 표징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의 결백함이 곧 그대의 속죄다. 그 결백함을 그에게 허락하라, 그러면 그대는 그대가 인정한 것의 진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에게 먼저 진리를 주었듯이, 먼저 받아들여지도록 제시된다. 시간상의 처음은 아무 의미가 없지만, 영원 안의 처음(First)은 하나님 아버지이며, 하나님은 처음이면서 동시에 하나(One)다. 처음을 넘어서는 다른 것은 없으니, 거기에는 순서도 없고 둘째도 셋째도 없으며, 오직 처음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제일원인(First Cause)에 속하고, 제일원인이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했으며, 제일원인의 일부이기도 한 그대는 단지 결백한 존재 이상이다. 결백함의 상태란 단지, 거기 없는 것을 있다고 여겼던 무질서한 마음에서 그 없는 것이 제거된 조건일 뿐이다. 바로 이 상태를, 오직 이것만을 그대는 하나님을 곁에 두고 이루어야 한다.

그대가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그대는 여전히 자신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어쩌면 그대 곁의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는 있어도, 그대가 하나님과 하나임을 알 수는 없다. 하나님과 하나임은 가르쳐질 수 없다. 배움은 오직 스스로 일어나는 그 조건에만 적용된다.

그대의 지극히 거룩한 마음 안에서 진리를 가리던 모든 것이 그대를 위해 되돌려지도록 허락하여, 그대의 아버지 앞에 은총 속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자기 자신을 그대에게 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주는 것이 하나님이 아는 전부이며, 그러므로 그것이 모든 앎이다. 하나님이 알지 못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그러므로 주어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