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만든 세상 대신 평화

1) 실재 세상과 교환

고요히 앉아 그대가 보는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실재하는 세상은 이렇지 않다. 그곳에는 건물도 없고, 사람들이 홀로 흩어져 걷는 거리도 없다. 사람들이 필요하지도 않은 끝없는 목록의 물건들을 사는 상점도 없다. 그곳은 인공적인 빛으로 밝혀지지 않으며, 밤이 찾아오지도 않는다.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낮도 없다. 상실도 없다. 그곳에 있는 것은 오직 빛나는 것뿐이며, 영원히 빛난다."

그대가 보는 세상은 반드시 부정되어야 한다. 그 세상을 보는 대가로 그대는 다른 종류의 인식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두 세상을 동시에 볼 수 없다. 두 세상은 각각 서로 다른 종류의 봄을 필요로 하며, 어느 쪽이 보이느냐는 그대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보는 것은 다른 하나를 부정했기에 가능하다. 둘 다 참인 것은 아니지만, 그대가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에 따라 어느 쪽이든 그대에게는 실재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두 세상의 힘은 같지 않다. 그대에 대한 이 둘의 진짜 끌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신이 보는 세상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 그 세상은 시간이 시작된 이래로 그대를 실망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대가 지은 집들은 그대를 지켜 준 적이 없다. 그대가 만든 길들은 그대를 아무 데로도 이끌지 못했으며, 그대가 세운 그 어떤 도시도 시간이 무너뜨리는 공격을 견뎌 내지 못했다. 그대가 만든 것 중에 죽음의 표식이 찍히지 않은 것은 없다.

그 세상을 소중히 여기지 말라. 그 세상은 낡고 지쳐 있으며, 그대가 만드는 바로 그 순간에도 이미 먼지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아픈 세상은 살아 있는 세상을 조금도 건드릴 힘이 없다. 그대는 이 아픈 세상에 그런 힘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대가 슬픔에 잠겨 이 아픈 세상에서 등을 돌린다 해도, 그 안에서는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실재하는 세상은 바로 이곳에서도 그대를 건드릴 힘을 지니고 있다. 그대가 실재하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가 사랑으로 부르는 것은 그대에게 올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응답한다. 사랑은 도움을 구하는 부름을 외면하지 못하며, 그대가 만들었지만 원하지 않는 이 기이한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사랑을 향해 솟아오르는 고통의 울부짖음을 반드시 듣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내주고 그대가 만들지 않은 것과 기쁘게 맞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그대가 만든 세상이 거짓임을 배우려는 기꺼움뿐이다.

그대가 세상에 대해 틀렸던 것은 자기 자신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뒤틀린 기준점에서, 그대가 무엇을 볼 수 있었겠는가? 모든 봄은 지각하는 자로부터 시작되며, 지각하는 자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한다. 그리고 그가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그에게 보이지 않는다. 실재를 판단하려는 그대는 그것을 볼 수 없다.

이는 판단이 들어오는 순간 실재는 이미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벗어난 것은 시야에서도 벗어나 있다. 부정된 것은 그곳에 있지만 알아보지 못한 채로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그대는 그를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존재는 그대의 알아봄에 달려 있지 않다.

그리스도는 고요한 현재 속에서 그대 안에 살아 있으며, 그대가 과거를 뒤로하고 그리스도가 사랑으로 그대에게 내미는 그 세상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이 산만한 세상에서 자신을 둘러싼 다른 세상을 언뜻이라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세상에 여전히 가치를 두는 한, 그 사람은 다른 세상에 대한 인식을 부정하며,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고 주장하고, 사랑이 가리키는 길을 따르지 않는다. 사랑은 참으로 기쁘게 이끈다!

사랑을 따를 때, 그대는 사랑의 동행을 찾아냈다는 것과, 사랑에게서 집으로 향하는 기쁨의 여정을 배웠다는 것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다만 자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대의 뜻은 다름 아닌 이 슬픈 세상을 내주고 그대의 오류들을 하나님의 평화와 맞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대가 그 뜻을 자신과 함께 나눈다는 것을 인정하며, 언제나 그대에게 하나님의 뜻을 내놓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러하다. 아들 자신 외에는 그 무엇도 하나님의 아들을 건드리지 못하며, 그 무엇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한다. 아들은 하나님 자신만큼이나 고통으로부터 안전하다. 하나님이 모든 일에서 아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을 둘러싼 세상은 사랑으로 빛난다. 하나님이 고통이 없는 자기 자신 안에 그를 두었고, 사랑이 끝도 흠도 없이 아들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평화가 흔들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완전한 제정신 속에서 그는 사랑을 바라본다. 사랑이 그를 온통 둘러싸고 그의 안에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을 둘러싼 사랑의 팔을 지각하는 순간, 고통의 세상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안전한 자리에서 그리스도는 고요히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이 자신과 하나임을 알아본다. 하나님의 평화가 그대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은 오직 과거 안에서뿐이다.

그러나 그 평화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대는 지금 그 평화를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영원히 아들을 사랑하며,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의 사랑에 사랑으로 답한다.

실재하는 세상은 온전히 참되고 온전히 그대의 것인 단 한 가지를 기억하도록 그대를 이끄는 길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그대가 시간 안에서 자신에게 잠시 빌려준 것이며, 그 빌려준 것들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언제나 그대의 것이다. 하나님이 아들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유일한 실재는 그대에게 주어졌으며, 그 실재를 통해 하나님은 그대를 자신과 하나가 되도록 창조했다. 그대는 먼저 평화를 꿈꾸고, 그다음 그 평화로 깨어날 것이다.

그대가 만든 것을 그대가 원하는 것과 맞바꾸는 첫 교환은, 악몽을 사랑의 행복한 꿈들과 맞바꾸는 것이다. 이 꿈들 안에 그대의 참된 지각이 있다. 성령이 모든 지각이 있는 꿈의 세상을 바로잡기 때문이다. 앎은 바로잡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랑의 꿈들은 앎으로 이어진다.

그 꿈들 안에서 그대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을 보지 않으며, 바로 이 때문에 그 꿈들은 곧 그대가 앎을 반겨 맞아들이는 일이다. 사랑은 시간이 아니라 맞아들여지기를 기다리며, 실재하는 세상은 언제나 있어 온 것을 그대가 맞아들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기쁨의 부름이 그 실재하는 세상 안에 있으며, 그대의 기쁜 응답은 그대가 잃지 않은 것에 대한 그대의 깨어남이다. 그러므로 가장 거룩한 아들의 완전한 제정신에 대해 아버지를 찬양하라.

2) 필요를 아는 성령

아버지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늘에서는 이것이 사실인데, 영원 속에서 그대에게 무엇이 필요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의 세상에서 그대는 실제로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그곳은 그대가 결핍되어 있기에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결핍의 세상이다. 그러나 그런 결핍의 세상에서 그대가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성령이 없다면 그 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그러나 성령 덕분에 그 답은 기쁨에 찬 "예"다! 두 세상 사이의 중재자로서, 성령은 그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무엇이 그대를 해치지 않을지를 안다. 소유는 그대에게 맡겨 두면 위험한 개념이다.

에고는 구원을 위해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소유가 곧 에고의 법이기 때문이다. 소유 자체를 위한 소유는 에고의 근본적인 신조이며, 에고가 자신을 위해 세우는 교회들의 기본 주춧돌이다.

그리고 에고는 자신의 제단에서 그대에게 요구한다. 자신이 얻으라고 명한 모든 것을 그 제단에 바치라는 것이다. 에고는 그 얻은 것들 안에서 그대에게 아무런 기쁨도 남기지 않는다. 에고가 그대에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것은 그대를 해칠 것이다. 에고는 거듭거듭 그대에게 얻으라고 몰아붙이지만, 그대에게 아무것도 남겨 주지 않는다. 그대가 얻은 것을 에고가 다시 그대에게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얻은 것은, 움켜쥔 바로 그 손에서조차 비틀려 뜯겨 나가 먼지 속으로 내던져질 것이다. 에고가 구원을 보는 곳에서 에고는 분리를 보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대는 에고의 이름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든 잃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에게 묻지 말라. 그대는 알지 못하며, 자신에게 주는 그대의 조언은 그대를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빛에 맞서 그대의 세상을 더욱 조여 놓고, 그 세상이 그대에게 실제로 지닐 수 있는 가치를 의문시하지 못하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만이 그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안다. 성령은 빛으로 가는 길을 막지 않는 모든 것을 그대에게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밖에 그대에게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시간 안에서 성령은 그대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며, 그대가 그 모든 것을 필요로 하는 한 계속해서 새롭게 채워 줄 것이다. 그대가 그 모든 것을 조금이라도 필요로 하는 한, 성령은 그대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며, 그 모든 것은 그대가 자신의 모든 필요에서 물러나 그것들이 이미 다 채워졌음을 깨달을 때까지만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자신이 공급하는 것들에 아무런 집착도 없으며, 다만 그대가 그 공급하는 것들을 시간 안에 머무르기 위해 사용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려 할 뿐이다. 성령은 그대가 시간을 집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며, 그대의 기쁜 귀향을 기다리며 조금도 지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의 필요를 성령에게 맡기라. 성령은 그 필요들에 아무런 강조도 두지 않은 채 그 필요들을 채워 줄 것이다. 성령으로부터 그대에게 오는 것은 안전하게 온다. 성령은 그대에게 오는 것이 결코 그대의 마음속에 숨겨진 어두운 자리, 곧 그대를 해치기 위해 간직되는 자리가 될 수 없도록 보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인도 아래 그대는 가볍게 짐을 꾸려 가볍게 여행할 것이다. 성령의 시선은 언제나 여정의 끝, 곧 자신의 목표에 있기 때문이다.

3) 집에 있음을 깨달음

하나님의 아들은 바깥 세상들을 떠도는 여행자가 아니다. 그 아들의 지각이 아무리 거룩해지더라도, 그 자신 바깥의 그 어떤 세상도 그의 유산을 담고 있지 않다. 그 자신 안에서 그 아들에게는 아무런 필요도 없다. 빛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평화 속에서 빛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광선이 고요히 무한으로 뻗어 나가게 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빛에서 멀어지는 무익한 여정을 떠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그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하라. "성령은 나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니, 내가 그 밖의 어디로 가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깨어나는 것 외에 내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다음 성령이 이 세상이 그대 앞에 놓을 수 있는 모든 위험을 뚫고 그대의 평온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이끌어 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쁨으로 성령을 따르라.

희생의 제단들 앞에 무릎 꿇지 말고, 그대가 반드시 잃게 될 것을 구하지 말라. 그대가 반드시 간직하게 될 것으로 만족하고 조바심 내지 말라. 이는 그대가 하나님의 평화를 향한 고요한 여정을 떠나고 있으며, 그 평화 안에서 하나님은 그대가 고요함 속에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그대는 그대를 붙들어 두려는 모든 유혹을 이미 극복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고요함으로 가는 길을 함께 걷는다. 나를 소중히 여기라. 그대의 형제들 외에 그대에게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함께 찾아야 할 마음의 평화를 그대에게 회복시켜 줄 것이다. 성령은 우리에게로, 그리고 그대 자신에게로 깨어나는 법을 그대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이것이 시간 안에서 채워져야 할 유일한 진짜 필요다.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은 오직 여기에만 있다.

나의 평화를 그대에게 준다. 세상이 내놓았지만 결국 빼앗아 가기만 한 모든 것과 기쁘게 맞바꾸어, 나에게서 그 평화를 받으라. 그리고 우리는 그 평화를 이 슬픈 세상의 얼굴 위에 빛의 베일처럼 펼칠 것이다. 그 베일 안에서 우리는 형제들을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세상을 형제들로부터 숨길 것이다.

우리는 해방의 찬가를 홀로 부를 수 없다. 나의 과업은 모든 목소리를 나의 목소리와 함께 들어 올릴 때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해방의 찬가는 나의 것이 아니다. 그 찬가가 그대를 향한 나의 선물이듯이, 그 찬가는 아버지가 성령을 통해 나에게 준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해방의 찬가의 소리는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아들의 마음에서 슬픔을 몰아낼 것이며, 그 마음에서 슬픔은 머물 수 없다. 시간 안에서 치유가 필요한 것은, 슬픔이 머무는 곳에서는 기쁨이 자신의 영원한 통치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영원 안에 머문다. 그대는 안전하게 집에 있으면서도 다만 꿈속에서 여행할 뿐이다. 그대를 기억하는 법을 그대가 가르쳐 준 그대의 모든 부분에 감사하라.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의 순수함에 대해 아버지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