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둠 너머 그리스도의 인식

1) 빛에 달린 인식

인식(vision)은 빛에 달려 있다. 그대는 어둠 속에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어둠 속, 잠의 사적인 세상 속에서 그대는 눈을 감고 있어도 꿈속에서 본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그대가 보는 것은 그대가 만든 것이다.

그러나 어둠을 놓아 버리면 그대가 만든 것을 더는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어둠을 보는 것은 인식을 부정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식을 부정한다고 해서 그대가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정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부정을 통해 그대는 광기를 받아들이며, 자신이 사적인 세상을 만들어 자신의 지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적인 세상을 만들려면 빛이 배제되어야 한다. 빛이 오고 그대가 볼 수 있게 되면 꿈은 사라진다. 눈을 통해 인식을 구하지 말라. 그대는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보는 방식을 만들었으며, 이 점에서 그대는 속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어둠 너머에, 그러나 여전히 그대 안에, 빛 속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인식이 있다.

그대의 "인식"은 두려움에서 나오지만, 그리스도의 인식은 사랑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대를 위해 보며, 실재하는 세상에 대한 그대의 증인이 된다. 그리스도는 성령의 나타남이며, 언제나 실재하는 세상을 바라보고, 그 증인들을 불러내어 그대에게로 이끈다. 그리스도는 그대 안에서 보는 것을 사랑하며, 그것을 확장하려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대의 지각을 아버지에게까지 확장시키기 전까지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 안에서는 더 이상 지각이 없다. 그리스도가 그대를 자신과 함께 아버지에게로 되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대에게는 오직 두 가지 감정만이 있으며, 하나는 그대가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대에게 주어진 것이다. 각각은 보는 방식이며, 그 서로 다른 봄에서 서로 다른 세상들이 생겨난다. 그대에게 주어진 인식을 통해 보라.

이는 그리스도의 인식을 통해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인지 봄으로써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안다. 그대의 가장 어두운 꿈들 너머에서, 그리스도는 그대 안에서 그대의 꿈들로 흐려지지 않은 완전한 광채로 빛나는 하나님의 결백한 아들을 본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바라볼 때 그대도 이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식은 그대를 향한 사랑의 선물이며, 아버지가 그대를 위해 그리스도에게 준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빛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보고자 하는 모든 이는 그를 볼 수 있다. 그들이 빛을 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그를 홀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들보다 더 홀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보고자 한 이들은 아들을 보았기에 아들 안에서 아버지에게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안을 들여다보고 어둠 너머에서 자신 안의 그리스도를 보고 그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인식이 지닌 제정신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식을 지닌 이들은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으며, 성령이 그들을 보는 대로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한 이 인식과 함께,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찾아와 그들 위에 빛났다.

참되게 지각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통해 모든 실재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되게 지각하려면 그 어떤 환영도 그대의 눈앞에 떠오를 수 없다. 실재는 그 어떤 오류를 위한 자리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대가 형제를 오직 지금 보는 그대로만 지각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형제의 과거는 현재 안에서 아무런 실재도 지니지 않으므로, 그대는 그의 과거를 볼 수 없다. 그에 대한 그대의 과거 반응들도 그곳에 없으며, 그대가 반응하는 것이 바로 그 과거 반응들이라면, 그대는 형제가 아니라 그대가 만들어 소중히 여기는 그의 이미지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환영들에 의문을 제기할 때, 지나간 것을 지금인 것처럼 지각하는 것이 정말로 제정신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형제를 바라볼 때 과거를 기억한다면, 그대는 지금 있는 실재를 지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대는 과거의 경험을 현재를 판단하는 기준점으로 삼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 기준점 삼기는 망상이기에 부자연스럽다.

그대가 모든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과거든 그대가 지각한 그대 자신의 과거든 과거를 전혀 참조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면, 그대는 지금 보는 형제로부터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대가 빛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과거는 현재를 어둡게 할 그림자를 드리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직 그대가 빛을 두려워할 때만 그대는 어둠을 함께 가져오기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게 어둠을 마음속에 붙들어 둠으로써, 그대는 그 어둠을 형제들을 뒤덮어 그들의 실재를 그대의 눈에서 가리는 어두운 구름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이 어둠은 그대 안에 있다.

지금 그대에게 드러나는 그리스도에게는 과거가 없다. 그리스도는 변함이 없으며, 그 변함없음 안에 그대의 해방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창조된 그대로라면, 그 안에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죄책감의 구름도 일어나 그를 가리지 않았으며, 그대가 만나는 모든 사람 안에서 그는 자신을 통해 드러난 채로 서 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과거를 놓아 버리고, 단죄 없이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대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는 구름은 바로 과거이며, 그대가 과거를 지나가 사라진 것으로 두고 싶다면, 지금 과거를 보아서는 안 된다. 그대가 자신의 환영 속에서 과거를 지금 본다면, 과거는 그곳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대에게서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2) 지금이 구원의 때

시간은 그대가 누구의 해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두어 놓을 수도, 해방시킬 수도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그대가 억지로 연속성을 부여하지 않는 한, 연속적이지 않다. 그대는 이 셋을 연속적인 것으로 지각하여 그대 자신에게 그렇게 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속지 말고, 시간이 실제로 그러하다고 믿지 말라. 실재가 그대의 쓰임에 따라 그대가 원하는 그대로라고 믿는 것은 망상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시간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쪼갬으로써 시간의 연속성을 파괴하려 한다. 그대는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미래를 예상하고 그에 맞추어 계획을 세우려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과거와 미래를 나란히 정렬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개입하여 그대를 다시 태어나도록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기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기적은 그대가 형제를 그의 과거 없이 볼 수 있게 하며, 그럼으로써 그를 다시 태어난 존재로 지각하게 한다. 그의 잘못은 모두 지나간 것이며, 그것들 없이 그를 지각함으로써 그대는 그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형제의 과거는 곧 그대의 과거이므로, 그대도 이 해방을 함께 나눈다. 그대의 과거에서 나온 그 어떤 어두운 구름도 그를 그대에게서 가리지 못하게 하라. 진리는 오직 현재 안에만 있으며, 그대가 그곳에서 구한다면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진리가 없는 곳에서 진리를 찾아왔고, 그래서 찾지 못했다. 그러므로 진리가 있는 곳에서 진리를 구하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그것은 보는 눈에게 동터 올 것이다. 그대의 과거는 분노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그대가 그 과거를 사용해 현재를 공격한다면, 그대는 현재가 지닌 자유를 보지 못할 것이다.

판단과 단죄는 그대 뒤에 있으며, 그대가 판단과 단죄를 함께 가져오지 않는 한, 그대는 자신이 판단과 단죄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현재를 사랑으로 바라보라. 현재는 영원히 참된 것들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치유가 현재 안에 있는 것은 현재의 연속성이 실재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아들됨의 모든 측면에 동시에 확장되며, 그럼으로써 그것들이 서로에게 이를 수 있게 한다. 현재는 시간이 있기 전에도 있었고, 시간이 더는 없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 안에는 영원한 모든 것이 있으며, 영원한 것들은 하나다. 영원한 것들의 연속성은 시간을 초월하며 그것들의 소통은 끊어지지 않는다. 영원한 것들은 과거로 인해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과거만이 분리할 수 있는데, 과거는 어디에도 없다. 현재는 그대를 형제들과 하나로 묶고 과거로부터 그대를 해방시킬 빛 안에서 그대에게 형제들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그대는 형제들에게 과거를 걸고넘어지겠는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대는 그곳에 없는 어둠 속에 머물기를 선택하는 것이며, 그대에게 내놓아진 빛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완전한 인식의 빛이 값없이 받아들여지는 만큼 값없이 주어지며, 오직 제한 없이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이 하나의 고요한 차원은 변하지 않으며, 그대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어떤 광경도 없다. 이 차원 안에서 그대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의 증인들이 그대 위에 빛나도록 부른다. 그대가 그들을 불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대 안의 진리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형제들 안에서 진리를 찾았고 그곳에서 진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금이 구원의 때다. 지금이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이다. 모든 형제에게 손을 내밀어, 그리스도의 손길로 형제들을 어루만지라. 형제들과의 시간을 초월한 하나됨 안에 그대의 연속성이 있으며, 그 연속성은 온전히 나누어지기에 끊어지지 않는다.

3) 빛의 증인들

하나님의 결백한 아들은 오직 빛일 뿐이다. 그 안에는 그 어디에도 어둠이 없다. 그는 온전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대에게 나와 함께하자고 부르듯이, 모든 형제를 불러 그의 온전함을 증언하게 하라. 각 목소리는 해방의 노래, 곧 빛의 창조주에게 빛을 향한 기쁨과 감사를 드리는 찬가 안에서 한 역할을 지닌다.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거룩한 빛은 아들의 빛이 아버지의 것임을 증언하는 증인이다. 창조주를 기억하며 형제들 위에 빛을 비추라. 그대는 그의 창조에 대한 증인들을 불러냄으로써 창조주를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치유하는 형제들은 그대의 치유를 증언한다. 그 형제들의 온전함 속에서 그대는 자신의 온전함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의 찬양과 기쁨의 찬가가 창조주에게 올라갈 때, 창조주는 그대의 부름에 대한 명료한 응답으로 그대의 감사에 화답할 것이다.

창조주의 아들이 그를 불렀는데 응답받지 못한 채로 남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를 향한 아버지의 부름은 다름 아닌 아버지를 향한 그대의 부름이다. 그리고 아버지 안에서 그대는 아버지의 평화로 응답받는다. 빛의 자녀여, 그대는 그 빛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대는 빛의 증인들을 통해 그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대가 형제들에게 빛을 주었기에 그들이 그 빛을 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빛 속에서 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대의 빛을 그대의 인식에 더 가까이 가져온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으로 이어진다.

사랑을 구하는 병든 이들은 사랑에 감사하며, 그들의 기쁨 속에서 거룩한 감사로 빛난다. 그리고 병든 이들은 자신들에게 기쁨을 준 그대에게 이 거룩한 감사를 내놓는다.

병든 이들은 그대를 기쁨으로 이끄는 안내자다. 그대에게서 기쁨을 받았기에 그들은 그것을 간직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들을 평화로 이끄는 안내자로 세워 왔다. 그대가 평화를 그들 안에서 드러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가 그 평화를 볼 때, 그 아름다움이 그대를 집으로 부른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빛이 있다. 그러나 그대는 그 빛을, 그대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대가 그 빛을 줄 때, 그 빛은 환히 뿜어져 나오며 그대를 세상에서 불러내어 그 빛을 따르게 한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 빛이 그대를 끌어당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는 세상을 내려놓고 다른 세상을 찾게 될 것이다. 이 다른 세상은 그대가 준 사랑으로 밝게 빛난다. 그리고 이 다른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그대에게 아버지와 그의 거룩한 아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빛은 제한이 없으며, 고요한 기쁨 속에서 이 세상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대가 함께 데려온 모든 이가 그대 위에 빛날 것이며, 그대는 그 형제들이 그대를 이곳으로 데려왔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 위에 빛날 것이다. 그대의 빛은 그들의 빛과 결합하여 너무나 강력해져서, 그대가 다른 이들을 바라볼 때 그 빛이 그 다른 이들을 어둠에서 이끌어 낼 것이다.

그리스도에게로 깨어난다는 것은 사랑의 법칙들을 따르는 것이며, 그대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리고 그 법칙들 안의 진리를 고요히 인정하는 데서 우러나와 따르는 것이다. 빛의 끌림은 반드시 그대를 기꺼이 이끌어야 하며, 기꺼움은 줌으로써 드러난다. 그대에게서 사랑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그대가 그들에게 준 사랑에 대한 기꺼운 증인이 되며, 그 사랑을 그대에게 내미는 것도 바로 그들이다.

잠 속에서 그대는 홀로 있으며, 그대의 인식은 자기 자신에게로 좁혀진다. 그리고 그 고립이 악몽이 찾아오는 이유다. 그대는 눈을 감고 있기에 고립을 꿈꾼다. 그대는 형제들을 보지 못하며, 어둠 속에서는 그대가 그 형제들에게 준 빛을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그대가 잠들어 있다고 해서 사랑의 법칙들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대는 자신의 모든 악몽을 거치는 동안 그 법칙들을 따라왔으며, 자신의 줌에 있어 신실했다. 그대가 홀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 속에서조차 그리스도는 그대를 지켜 왔으며, 그대가 깨어날 때를 위해 실재하는 세상을 보장해 두었다. 그리스도는 그대의 이름으로 그대를 위해 주었으며, 그리스도가 준 선물을 그대에게도 주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만큼이나 사랑이 넘친다. 아버지와 이어져 있기에, 아들에게는 아버지와 떨어진 과거가 없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의 증인이자 자기 자신의 증인이기를 결코 멈춘 적이 없다. 비록 잠들어 있었어도, 그리스도의 인식은 그 아들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아들은 자신이 결코 잠든 적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증인들을 자신에게로 불러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