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립 아닌 실재의 증인

1) 그림자 형상과 감정

나는 그대에게 오직 두 가지 감정, 곧 사랑과 두려움만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나인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끊임없이 주고받아진다. 영원한 존재가 영원한 존재에게 사랑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 주고받음 속에서 사랑은 확장된다. 사랑은 주어질수록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여러 형태를 지닌다. 개별 환영의 내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의 형태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모두 미쳐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의 형태들은 보이지 않는 광경과 들리지 않는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함께 나눌 수 없는 사적인 세상을 이룬다. 두려움의 형태들은 오직 만든 이에게만 의미가 있으며, 따라서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이 사적인 세상에서 두려움의 형태들을 만든 이는 홀로 움직인다. 오직 그만이 그것들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자신의 개별적 과거에서 나온 형상들로 자신의 세상을 채우며, 바로 이 때문에 사적인 세상들이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각 사람이 보는 형상들은 결코 실재한 적이 없다. 그 형상들은 오직 형제들에 대한 그의 반응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에 대한 형제들의 반응은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그 형상들을 만들었다는 것과, 그 형상들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이 형상들에는 증인이 없다. 오직 하나의 분리된 마음 안에서만 지각되기 때문이다. 미친 이들이 자신의 미친 세상과 관계 맺는 것은 바로 이 기이하고 그림자 같은 형상들을 통해서다. 미친 이들은 오직 이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만을 보며, 바로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친 이들은 그곳에 없는 이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 대답하는 것도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그곳에 없는 이들을 불러낸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그 대답을 듣지 못하며, 오직 그 사람만이 그들이 자신에게 대답했다고 믿는다.

투사가 지각을 만들며, 그대는 그 너머를 볼 수 없다. 그대는 형제 안에서 그대의 사적인 세상에 속한 그림자 형상을 보았기에, 거듭거듭 형제를 공격해 왔다.

그러므로 그대는 먼저 자신을 공격해야만 한다. 그대가 공격하는 것은 다른 이들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자 형상의 유일한 실재는 그대 자신의 마음 안에 있으며, 다른 이들을 공격함으로써 그대는 말 그대로 그곳에 없는 것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망상에 빠진 이들은 매우 파괴적일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를 단죄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죽기를 원하지 않지만, 단죄를 놓아 버리려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망상에 빠진 이들은 모든 것이 무질서하고 안에 있는 것이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신들의 사적인 세상 속으로 분리되어 들어간다. 그러나 이들은 안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형제들의 실재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2) 뒤바뀐 반응과 광기

그대에게는 오직 두 가지 감정만이 있지만, 그대의 사적인 세상에서 그대는 그 두 감정 각각에 대해 마치 다른 쪽 감정인 것처럼 반응한다. 사랑은 분리된 세상 안에는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분리된 세상에서는 사랑이 찾아와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대가 자신의 미움을 형제로 본다면, 그대는 형제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게는 가까이 다가가고,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게서는 움츠러든다. 그리고 그대는 사랑에 두려움으로 반응하며, 사랑에게서 물러난다.

그러나 두려움은 그대를 끌어당기며, 그대는 두려움이 사랑이라고 믿으며 두려움을 자신에게로 불러들인다. 그대의 사적인 세상은 그대가 초대해 들인 두려움의 형상들로 가득 차 있으며, 형제들이 그대에게 내놓는 사랑은 전혀 보지 못한다.

눈을 뜨고 자신의 세상을 바라볼 때, 자신이 광기 속으로 물러나 있다는 생각이 반드시 떠올라야 한다. 그대는 그곳에 없는 것을 보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을 듣는다. 그대가 드러내는 감정의 표현은 그 감정 자체와는 정반대다. 그대는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으며, 마치 온 우주에 홀로 있는 것처럼 실재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그대의 광기 속에서 그대는 실재를 완전히 간과하며, 어디를 보든 오직 자신의 분열된 마음만을 본다.

하나님이 그대를 부르지만 그대는 듣지 못한다. 자신의 목소리에만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식(vision)은 그대의 시야에 없다. 그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여, 그대는 이 광기를 아버지에게 내놓겠는가? 그대가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내놓는다면, 그대는 그것을 아버지에게 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광기를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에게 어울리지 않기에 그대에게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대를 광기에서 풀어 주어 자유롭게 하려 한다. 아버지의 제정신인 답은, 그대가 자신에게 내놓은 광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그대에게 말해 준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대에게 내놓은 것은 결코 변한 적이 없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그대도 광기가 무엇인지 배우고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다. 광기를 부정하는 법을 배우고 평화롭게 자신의 사적인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 그대에게 주어져 있다.

3) 형제들과 하나가 됨

그대는 형제들 안에서 부정했던 모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대가 그것을 자신 안에서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대는 형제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며,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그들을 자신에게로 이끌어, 하나님과 함께 나누는 실재의 증인으로 지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와 함께 있듯이 그들과도 함께 있으며, 우리는 그들을 그들의 사적인 세상에서 이끌어 낼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듯이, 우리가 그들과도 하나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기쁨으로 우리 모두를 맞아들이며, 기쁨이야말로 우리가 아버지에게 내놓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내준 하나님의 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대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가 그들에게 내놓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내놓는 것이 그대에게 준 하나님의 선물을 알아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