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장 어두운 비밀

1) 죄책감 없애는 투사

투사의 궁극적 목적은 언제나 죄책감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특징적으로 에고는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만 죄책감을 없애려 한다. 에고가 죄책감을 붙들어 두고 싶어 하는 만큼, 그대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죄책감이 그대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끌어당기는 힘은 너무나 강해서 그대는 저항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바로 죄책감을 둘러싼 이 문제에서 가장 깊은 분열이 일어난다.

에고가 주장하는 대로 그대가 죄책감을 붙들고 있으려면, 그대는 그대 자신일 수 없기 때문이다. 에고는 오직 자신이 곧 그대라고 그대를 설득함으로써만 그대가 죄책감을 투사하게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죄책감을 그대의 마음속에 붙들어 둘 수 있다.

그러나 에고의 이 방책이 얼마나 기이한 해결책인지 생각해 보라. 그대는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죄책감을 투사하지만, 실제로는 죄책감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그대는 실제로 죄책감을 경험하지만, 왜 그런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대는 죄책감을 기이하게 뒤섞인 "에고의 이상들"과 연결시키는데, 에고는 그대가 그 이상들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을 죄 있는 존재로 봄으로써 그를 저버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대는 자신이 더는 그대 자신이 아니라고 믿기에, 자신을 저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대의 숨겨진 주춧돌들 가운데 가장 어두운 것이 그대의 죄책감에 대한 믿음을 그대의 인식으로부터 감춰 둔다.

그 어둡고 은밀한 곳에는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단죄함으로써 그를 배신했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 살인적이면서도 미친 관념이 그 어둡고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조차 의심하지 못한다. 에고의 파괴적 충동은 너무나 강렬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 처형에 못 미치는 그 무엇으로도 궁극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2) 에고의 숨은 주춧돌

에고는 눈이 멀었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에고가 어디서든 결백함을 지각하면, 두려움 때문에 결백함을 파괴하려 들 것이다. 에고의 기이한 행동 대부분은 에고가 죄책감을 정의하는 방식에서 직접 비롯된다. 에고에게는 결백한 자가 곧 죄 있는 자다.

공격하지 않는 이들은 에고의 "적"이다. 구원에 대한 에고의 해석을 소중히 여기지 않음으로써, 공격하지 않는 이들은 그 해석을 놓아 버리기에 더없이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공격하지 않는 이들은 에고의 토대에서 가장 어둡고 가장 깊은 주춧돌에 다가선 것이다. 에고는 그대가 다른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견뎌 낼 수 있지만, 이 한 가지 비밀만은 목숨을 걸고 지킨다.

에고의 존재 자체가 이 비밀을 지키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 바로 이 비밀이다. 에고는 진실로부터 그대를 지켜 줄 수 없으며, 진실 앞에서 에고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진실의 고요한 빛 안에서,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처형했다고 믿고 있음을 인정하자. 그대는 이 "끔찍한"

비밀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여전히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바람은 매우 두렵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그대에게서 숨겨 왔고, 그래서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을 찾아내기를 두려워한다.

그대는 자신을 죽이려는 이 바람을,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함으로써, 그리고 다른 무언가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처리해 왔다. 그대는 맹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죄책감을 투사해 왔지만, 그 죄책감의 근원은 밝혀내지 못했다.

3) 십자가 처형의 상징

에고는 실제로 그대를 죽이고 싶어 하며, 그대가 에고와 그대 자신을 동일시한다면 에고의 목표가 곧 그대의 목표라고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십자가 처형이 에고의 상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에고는 하나님의 아들의 실제 결백함과 마주했을 때 그를 죽이려 시도했으며, 에고가 내세운 이유는 결백함이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것이었다. 에고에게는 에고 자신이 곧 하나님이며, 결백함은 살인을 완전히 정당화하는 최후의 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대는 이 과정과 관련해 그대가 경험할 수도 있는 어떤 두려움도 궁극적으로는 에고의 이 해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 대한 그대 자신의 반응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점점 더 이것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