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초대하는 대로 보는 지각
1) 구함과 찾음
그대는 자신이 예상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초대하는 것을 예상한다. 그대의 지각은 그대의 초대의 결과이며, 그대가 그것을 청한 대로 그대에게 온다. 그대는 누구의 발현을 보려 하는가? 그대는 누구의 임재를 확신하려 하는가? 그대는 자신이 드러내는 것을 믿게 될 것이며, 그대가 밖을 보는 대로 안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 그대의 마음 안에 있으며, 그대의 지각은 그대가 선택한 인도를 반영할 것이다. 나는 성령의 발현이며, 그대가 나를 보는 것은 그대가 성령을 초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대가 그저 증인들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성령은 자신의 증인들을 그대에게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구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라. 그대가 구하는 것을 그대는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에고는 자신이 구하는 것을, 오직 그것만을 찾는다. 에고는 사랑을 찾지 못한다. 그것이 에고가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함과 찾음은 같은 것이며, 그대가 두 개의 목표를 구한다면 그대는 그것들을 찾겠지만, 둘 다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대는 그 둘 다를 원하기에 그 목표들이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2) 두 목표의 분리
마음은 언제나 통합을 향해 애쓴다. 마음이 분열되어 있고 그 분열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면, 마음은 그것이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만듦으로써 여전히 자신이 하나의 목표를 지녔다고 믿을 것이다.
나는 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대가 투사하는지 확장하는지는 그대에게 달려 있지만, 그대는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둘 중 하나를 하는 것이 마음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는 밖을 보기 전에 안을 보아야 한다. 안을 들여다보면서, 그대는 보기 위한 안내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런 다음 그대는 밖을 보며 그 안내자의 증인들을 목격한다. 이것이 그대가 구하는 것을 찾는 이유다.
그대가 자기 안에서 원하는 것을 그대는 드러낼 것이며, 그것을 원함으로써 그것을 거기 둔 것이기에 그대는 그것을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일 것이다. 그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투사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그것을 투사하는 것은 여전히 그대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바로 분리(dissociation)로 이어진다. 이것은 서로 다른 곳에서 각각 지각되는 두 목표를 받아들이는 것을, 즉 그대가 두 목표를 다르게 만들었기에 서로에게서 분리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음은 자기 바깥에서 분열된 세상을 보지만, 안에서는 보지 못한다. 이것은 마음에 온전함이라는 환상을 주며, 마음이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게 해 준다.
3) 하나의 목표와 증인
그러나 그대가 세상을 분열된 것으로 지각하는 한, 그대는 치유되지 않은 것이다. 치유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그대가 오직 하나만을 받아들였고 오직 하나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오직 사랑만을 원할 때, 그대는 그 밖의 아무것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지각하는 증인들의 모순된 본성은 그저 그대의 상충하는 초대들을 반영할 뿐이다.
그대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거기서 대립을 구했기에 거기서 대립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립의 증인들이 참이라고 믿지는 말라. 그 증인들은 오직 실재에 대한 그대의 결정만을 증언하며, 그대가 그들에게 준 메시지를 그대에게 되돌려 줄 뿐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자들을 통해 인식된다. 그대가 사랑을 드러낸다면, 그대가 그들을 초대했기에 그 사자들이 그대에게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