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잠든 눈을 여는 그리스도의 인식

1) 깨우는 성령의 사명

교정은 보지 못하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눈먼 이들의 눈을 여는 것이 성령의 사명이다. 성령은 눈먼 이들이 인식(vision)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잠들어 있을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성령은 눈먼 이들을 잊음의 잠에서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깨우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눈은 열려 있으며, 그대가 그리스도의 인식(vision)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는 그대가 보는 그 무엇이든 사랑으로 바라볼 것이다. 성령은 잠들어 있는 하나님의 모든 아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인식(vision)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완전하며, 그리스도는 자신의 인식(vision)을 그대와 나누기를 갈망한다. 하나님이 그대에게 천국을 주었기에, 그리스도는 그대에게 실재 세계를 보여 줄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그대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에게 기억하라고 부른다. 그 아들의 깨어남은 실재 세계에 대한 그 아들의 투자로 시작되며, 이로써 그 아들은 자기 자신에게 다시 투자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실재는 아버지 및 아들과 하나이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실재 세계를 축복하기 때문이다.

이 실재 세계를 본다면, 그대가 분명 그렇게 하게 될 것처럼, 그대는 우리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잠자는 것의 대가를 배우고, 그 대가를 치르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대는 깨어나기로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실재 세계가 그대의 눈앞에 솟아오를 것이다. 그리스도는 결코 잠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대를 시야에서 놓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실재 세계를 고요히 바라보며,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에 그 사랑을 그대와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알기에, 그리스도는 그대의 것을 그대에게 주고자 한다.

완전한 평화 속에서 그리스도는 자기 아버지의 제단에서 그대를 기다리며, 성령의 축복이라는 고요한 빛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그대에게 내밀고 있다. 성령은 모든 이를 아버지에게로, 그리스도가 각자의 참나(Self)로서 기다리고 있는 그 집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지각이 앎으로 융합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 하나님의 자녀 각자의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 있듯이, 그리스도의 존재는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그리스도는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에 그 사랑을 안다.

성령이 마침내 그대를 아버지의 제단에 있는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을 때, 지각은 앎으로 융합된다. 지각이 너무나 거룩해져서 거룩함으로의 그 전이가 그저 지각의 자연스러운 확장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무런 방해 없이 사랑으로 전이된다. 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에서 공통된 요소를 점점 더 많이 지각함에 따라, 성령의 인도 아래 있는 훈련의 전이는 늘어나며 일반화된다. 점차 그대는 그 전이를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적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 적용 가능성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루어지고 나면, 지각과 앎은 너무나 비슷해져서 하나님의 법칙들의 통합을 함께 나누게 된다. 하나인 것은 분리된 것으로 지각될 수 없으며, 그 분리를 부정하는 것이 앎의 복원이다.

하나님의 제단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거룩한 지각은 너무나 깨우쳐져서 그 거룩한 지각 안으로 빛이 흘러든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은 아버지의 마음(Mind) 안에서 빛나며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확장인 그 아들을 사랑하며, 매우 부드럽게 자기 자신 위에 빛난다.

세상은 하나님의 목적 안으로 녹아들면서 자신만의 목적을 지니지 않게 된다. 실재 세계는 조용히 천국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실재 세계 안의 영원한 모든 것은 언제나 그 천국에 있어 왔기 때문이다.

천국에서 해방자와 해방된 이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고 서로를 향한 완전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된다. 천국은 그대의 집이며, 하나님 안에 있기에 천국은 그대 안에도 있을 수밖에 없다.

3) 기적, 성령의 증인

기적은 학습이 올바른 인도 아래서 일어났음을 증명한다. 학습은 보이지 않으며 배운 것은 오직 그 결과로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운 것의 일반화는 그대가 그것을 점점 더 많은 상황에 사용함에 따라 증명된다.

그대가 기적을 모든 상황에 적용할 때, 기적에는 난이도의 순서가 없다는 것을 자신이 배웠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기적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은 없으며, 기적을 모든 상황에 적용함으로써 그대는 실재 세계를 얻게 될 것이다.

이 거룩한 지각 안에서 그대는 온전해질 것이며, 속죄는 그대가 자신을 위해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여, 그대의 축복을 위해 성령이 그대에게 보내는 모든 이에게로 뻗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 안에 그의 축복이 놓여 있으며, 그대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 안에 그대를 향한 그의 축복이 있다. 세상이 해방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 해방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결과를 본다면, 그대는 보이지 않는 것이 거기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하는 일을 지각함으로써, 그대는 그것의 존재를 인식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 하는 일로써, 그대는 그것이 무엇인지 배운다. 그대는 자신의 힘을 볼 수 없지만, 그 힘이 그대로 하여금 행동할 수 있게 해 줌에 따라 그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 그리고 그대는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볼 수 있다. 성령은 보이지 않지만, 그대는 그의 임재의 결과를 볼 수 있으며, 그 결과를 통해 그가 거기 있음을 배우게 될 것이다.

성령이 그대로 하여금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분명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기적은 이 세상이 판단하는 실재의 모든 법칙을 어기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크기와 질량의 모든 법칙이 초월된다. 성령이 그대로 하여금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분명 그 모든 것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성령의 결과를 지각하면서, 그대는 그가 어디에 있을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그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대는 성령을 볼 수 없지만, 그의 발현들은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발현들을 보지 않는다면, 그대는 그가 거기 있음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기적은 그의 증인이며, 그의 임재를 대변한다. 그대가 볼 수 없는 것은 오직 자신을 대변하는 증인들을 통해서만 그대에게 실재가 된다. 그대는 볼 수 없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그 임재가 그대를 통해 드러남에 따라 그대에게 거부할 수 없는 실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일을 행하라. 그대는 성령의 역할을 함께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에서 그대의 역할이 창조이듯, 땅에서 그대의 역할은 치유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자신의 역할을 그대와 나누며, 성령은 땅에서 자신의 역할을 그대와 나눈다. 그대가 다른 역할들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한, 그만큼 그대에게는 교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 믿음은 평화의 파괴이며, 성령의 목적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목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