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1) 두 약속의 대조

에고는 사랑이 위험하다고 확신하며, 이 확신이 언제나 에고의 핵심 가르침이다. 에고는 결코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고가 구원이라고 믿는 모든 사람은 사랑을 향한 탐색에 열렬히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에고는 사랑을 향한 탐색을 매우 적극적으로 부추기면서도, 한 가지 단서를 붙인다. 사랑을 찾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고의 지시는 간단히 "구하되 찾지는 말라"로 요약될 수 있다.

"구하되 찾지는 말라"는 것이 에고가 그대에게 내놓는 단 하나의 약속이며, 에고가 지킬 단 하나의 약속이다. 에고는 자신의 목표를 광적인 고집으로 추구하며, 에고의 판단은 심하게 손상되어 있음에도 완전히 일관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고가 착수하는 사랑의 탐색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에고는 또한 자신이 그대의 정체성이라고 가르치므로, 에고의 인도는 그대를 결국 자기 패배로 끝난다고 지각할 수밖에 없는 여정으로 이끈다. 에고는 사랑할 수 없으며, 사랑을 향한 필사적인 탐색 안에서 에고는 자신이 찾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탐색은 피할 수 없다. 에고가 그대 마음의 일부이며, 그 근원 때문에 에고는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에고는 전혀 믿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에고를 믿고 에고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그대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고의 존재를 부정할 힘을 지닌 것도 바로 그대의 마음이며, 에고가 그대를 어떤 여정에 세우는지 정확히 깨달을 때 그대는 분명 그렇게 할 것이다.

자신을 완전히 패배시킬 것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은 분명 명백하다.

사랑할 수 없기에, 에고는 사랑의 임재 안에서 완전히 부적절할 것이다. 전혀 반응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에고의 인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에고가 그대에게 필요한 반응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 아주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고는 사랑을 왜곡하고, 사랑이 실제로 에고가 가르칠 수 있는 반응들을 불러일으킨다고 그대를 가르칠 것이다. 그렇다면 에고의 가르침을 따를 때, 그대는 사랑을 찾아 헤매겠지만 사랑을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에고가 그대를, 허무함과 우울함의 느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여정에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대는 깨닫고 있는가? 구하되 찾지 못하는 것은 거의 기쁘지 않다. 이것이 그대가 지키고자 하는 약속인가?

성령은 그대에게 또 다른 약속을, 기쁨으로 이어질 약속을 준다. 성령의 약속은 언제나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이며, 성령의 인도 아래서 그대는 패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여정은 성취로 향하는 것이며, 성령이 그대 앞에 세우는 목표를 성령은 그대에게 줄 것이다. 성령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결코 속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집으로 가는 여정

그대는 이 세상에서 집에 있지 않기에 여정에 나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자신의 집이 어디 있는지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집을 찾아 헤맬 것이다.

집이 그대 바깥에 있다고 믿는다면 그 탐색은 헛될 것이다. 그대는 집이 없는 곳에서 집을 찾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안을 들여다보는 법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집이 마음 안에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그대를 위해 집을 기억하고 있으며, 성령은 그대를 그대의 집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이 성령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함에 따라 성령은 그대에게 그대의 사명을 가르칠 것이다. 그대의 사명이 성령의 사명과 같기 때문이다.

그대의 형제들을 집으로 인도함으로써, 그대는 다만 성령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대의 아버지가 그대에게 준 안내자를 보라. 그대가 영생을 지니고 있음을 배울 수 있도록 말이다. 죽음은 그대의 아버지의 뜻도 그대의 뜻도 아니며, 참인 것은 무엇이든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3) 영의 유산

그대는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생명은 그대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는 대가를, 그것도 매우 무거운 대가를 치른다. 죽음이 그대의 보물이라면, 그대는 죽음을 사기 위해 그 밖의 모든 것을 팔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팔았기에 자신이 죽음을 샀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천국을 팔 수 없다.

그대의 유산은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들됨(Sonship) 가운데 상속에서 제외되는 부분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온전하며 하나님의 모든 확장이 하나님과 같기 때문이다. 속죄는 그대의 온전함의 대가가 아니라, 그대의 온전함에 대한 그대의 알아차림의 대가다.

그대가 "팔기"로 택한 것은 그대를 위해 간직되어야 했다. 그대가 유산을 다시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돈이 아니라 영(spirit)으로 유산에 투자해야 한다.

영은 뜻이며, 뜻이 천국의 "값"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유산은 오직 그대가 해방되었다는 인식만을 기다리고 있다. 성령은 그대를 영생으로 인도하지만, 그대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투자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그대를 온통 둘러싸고 있어도 그대는 생명을 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