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움을 청하는 부름

1) 해석에 반응함

그대는 오류를 실재로 만들지 말라는 말을 들어 왔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그대가 오류를 믿고 싶다면, 오류가 참이 아니므로 오류를 실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그 자체로 실재하며, 진리를 믿기 위해 그대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대가 그 무엇에도 직접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에 대한 그대의 해석에 반응한다는 것을 이해하라. 그래서 그대의 해석이 그 반응의 정당화가 된다.

이것이 다른 이들의 동기를 분석하는 것이 그대에게 위험한 이유다. 누군가가 정말로 그대를 공격하거나 버리거나 노예로 삼으려 한다고 그대가 판단한다면, 그대는 마치 그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한 것처럼 반응할 것이다. 그 사람의 오류를 그대에게 실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류를 해석하는 것은 오류에 힘을 주는 것이며, 이렇게 하고 나면 그대는 진리를 간과하게 될 것이다. 에고의 동기에 대한 분석은 매우 복잡하고 매우 혼란스러우며, 그대 자신의 에고가 관여하지 않는 법이 없다. 이 분석 과정 전체는 그대가 지각하는 것을 이해하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는 명백한 시도를 나타낸다.

이것은 그대가 자신의 해석에 대해 마치 그 해석이 옳은 것처럼 반응한다는 사실로 드러난다. 그대는 그런 다음 자신의 반응을 행동적으로는 통제할 수 있어도, 감정적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 이 상태는 분명 그대 마음의 온전함에 대한 분열 또는 공격, 곧 마음의 한 수준을 다른 수준에 맞세우는 일일 것이다.

2) 오직 하나의 해석

동기에 대한 해석 가운데 조금이라도 말이 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성령의 판단이기에 그대 편에서는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모든 사랑의 생각은 참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 치유와 도움을 향한 호소다. 형제의 도움을 향한 호소에 분노로 반응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형제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향 외에는 그 어떤 반응도 적절할 수 없다. 그 형제가 구하는 것은 바로 도움, 오직 도움뿐이기 때문이다.

그 형제에게 도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준다면, 그대는 그의 실재를 자신이 옳다고 보는 대로 해석함으로써 그 실재를 공격할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대 자신의 마음에 미치는 위험은 아마 아직 완전히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도움을 향한 호소가 도움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믿는다면, 그대는 그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대의 반응은 있는 그대로의 실재에는 부적절하겠지만, 실재에 대한 그대의 지각에는 적절할 것이다.

그대가 모든 도움의 부름을 있는 그대로 도움의 부름으로 알아보지 못하게 막는 것은, 그대 자신이 상상해 낸 공격의 필요뿐이다.

바로 이 공격의 필요만이 그대로 하여금 실재와의 끝없는 "전투"에 기꺼이 뛰어들게 만든다. 그 전투 안에서 그대는 치유의 필요를 비실재로 만듦으로써 그 필요가 실재함을 부정한다. 그대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 그래서 실재를 자신에게서 억누르는 마음이 아니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3) 감사가 적절한 반응

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해 주는 것은 분명 좋은 조언이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사람은 누구도 신뢰할 만한 증인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진리는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대가 도움을 향한 호소를 있는 그대로 지각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대가 도움을 주고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움의 부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도움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대는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겠는가? 그러나 형제의 호소를 인식하기를 거부할 때 그대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직 그 형제의 호소에 답함으로써만 그대는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형제에게 그대의 도움을 거부하라. 그러면 그대는 그대를 향한 하나님의 답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성령은 동기를 해석하는 데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대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오직 감사만이 그대의 형제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다. 그 형제의 사랑의 생각과 그 형제의 도움을 향한 호소 둘 다에 대해 그대는 그 형제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대가 그것들을 참되게 지각한다면 둘 다 그대의 알아차림 안으로 사랑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가 느끼는 모든 긴장감은 바로 이렇게 감사하지 않으려는 그대의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얼마나 단순한가.

실재에 대한 반응은 오직 하나뿐이다. 실재는 어떤 갈등도 전혀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실재의 스승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 스승은 실재가 무엇인지 이해한다. 그 스승은 실재에 대해 자신의 마음(Mind)을 바꾸지 않는다. 실재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의 분열된 상태에서 실재에 대한 그대의 해석은 무의미하지만, 그의 해석은 한결같이 참되게 남아 있다. 그 스승은 자신의 해석이 그대를 위한 것이기에 그대에게 준다.

그대의 방식으로 형제를 "돕"으려 하지 말라. 그대는 자신을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을 향한 그의 부름을 들으라. 그러면 그대는 아버지를 향한 자신의 필요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형제의 필요에 대한 그대의 해석은 곧 그대 자신의 필요에 대한 그대의 해석이다. 도움을 줌으로써 그대는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이며, 그대 자신 안에서 단 하나의 필요만을 지각한다면 그대는 치유될 것이다. 그대는 하나님의 답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식하게 될 것이며, 그대가 그 답을 진리 안에서 원한다면, 그 답은 참으로 그대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대가 답하는 모든 호소는 그대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그대의 알아차림에 더 가까이 가져온다. 그렇다면 그대 자신의 필요를 위해, 모든 도움의 부름을 있는 그대로 들으라. 그래야 하나님이 그대에게 답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의 반응에 대한 성령의 해석을 점점 더 한결같이 적용할수록, 그대는 성령의 기준이 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