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참 치유자인 하나님

1) 하나님 인정과 치유

치유를 병의 신에게서 구하지 말고 오직 사랑의 하나님에게서만 구하라. 치유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하나님을 인정할 때, 그대는 하나님이 결코 그대를 인정하기를 멈춘 적이 없다는 것과, 그대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 안에 그대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대는 병들어 있지 않으며 죽을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병들고 죽는 것들과 자기 자신을 혼동할 수 있다. 다만 자기 자신을 그렇게 혼동하는 것이 신성모독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이는 그대가 하나님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사랑 없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오직 영원한 것만이 사랑받을 수 있다. 사랑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은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며, 그대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이 고통받도록 허락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그 무엇을 자신의 아들에게 주겠는가? 하나님이 창조한 그대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인다면, 그대는 고통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그대는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로 인정해야 한다. 이는 그대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그저, 아버지를 인정하는 것이 곧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아버지는 그대를 온전히 죄 없이, 온전히 고통 없이, 그리고 그 어떤 종류의 괴로움도 온전히 없이 창조했다. 그대가 아버지를 부인한다면, 그대는 죄와 고통과 괴로움을 자기 자신의 마음속으로 가져오게 된다. 아버지가 그대의 마음에 준 힘 때문이다.

그대의 마음은 세상들을 창조할 능력이 있지만, 마음이 자유롭기에 자신이 창조하는 것을 부인할 수도 있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부인해 왔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사랑으로 그런 부인을 얼마나 원하지 않는지 깨닫지 못한다.

2) 신성모독의 해소

그러나 하나님은 그대에게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자유롭지 않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간섭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될 것이며, 하나님은 미치지 않았다.

그대가 하나님을 부인할 때 그대는 미친 것이다. 그대는 하나님이 그대의 광기를 함께 나누기를 바라는가?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의 아들도 결코 그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랑이 그의 아들의 창조의 조건이었으며, 하나님의 마음(Mind) 안에 영원히 고정되어 있다. 그 사랑을 아는 것이 온전한 정신이다. 그 사랑을 부인하는 것이 광기다. 하나님은 그대를 창조할 때 자기 자신을 그대에게 주었으며, 하나님의 선물은 영원하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에게 부인하겠는가? 그대가 하나님에게 준 선물에서 비롯되어 왕국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을 위해 창조된 것과, 자신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창조한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을 그 선물로부터 떼어 냈다. 천국은 그의 귀환을 기다린다. 천국이 하나님의 아들의 거처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 밖의 그 어느 곳에도, 그 밖의 그 어떤 상태에도 있을 집이 없다.

그대가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든 비참함을 위해, 그대를 위해 창조된 기쁨을 부인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대가 만든 것을 원상태로 돌릴 수단을 그대에게 주었다. 귀 기울이라. 그러면 그대는 자신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들을 완전히 죄 없는 존재로 안다면, 자녀들을 죄책이 있는 존재로 지각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들을 완전히 고통 없는 존재로 안다면, 그 어디에서든 괴로움을 지각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들을 완전히 기쁨에 찬 존재로 안다면, 침체를 느끼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이 모든 환영들과, 신성모독이 취할 수 있는 그 밖의 많은 형태들은 창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완전한 존재로 창조했다면, 그대는 아들의 실재를 알기 위해 바로 그렇게 아들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아들됨의 일부로서, 그대는 자신의 실재를 알기 위해 바로 그렇게 자기 자신을 보아야 한다.

3) 영원한 것만을 봄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그 무엇도 지각하지 말라. 그러지 않으면 그대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됨은 오직 하나님만의 것이며, 아버지 됨이 그대의 것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 아버지 됨을 그대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에게 주는 그대의 선물은 무의미하지만, 그대의 창조물들에게 주는 그대의 선물은 하나님의 선물과 같다. 그 선물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그대의 창조물들이 하나님의 창조물만큼 실재하는 이유다.

그러나 참된 아들이 알려지려면 참된 아버지 됨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대는 자신이 지각하는 병든 이미지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믿기에, 자신이 만든 병든 것들이 자신의 참된 창조물이라고 믿는다. 오직 그대가 하나님의 아버지 됨을 받아들일 때만 그대는 무엇 하나라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버지 됨이 그대에게 모든 것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인 이유다.

오만함은 사랑의 부인이다. 사랑은 나누고 오만함은 움켜쥐기 때문이다. 사랑과 오만이 둘 다 그대에게 바람직해 보이는 한,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선택이라는 개념이 그대와 함께 남아 있을 것이다.

선택이라는 개념은 영원 안에서는 참되지 않지만 시간 안에서는 참되며, 그래서 시간이 그대의 마음속에 지속되는 동안에는 선택이 있을 것이다. 시간 자체가 그대의 선택이다.

그대가 영원을 기억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오직 영원한 것만을 보아야 한다. 그대가 자기 자신이 일시적인 것에 사로잡히도록 허용한다면, 그대는 시간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그대가 가치를 두는 것이 그대의 선택을 결정한다. 시간과 영원은 둘 다 실재할 수 없다. 시간과 영원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대가 시간을 초월한 것만을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대는 영원을 이해하기 시작해 영원을 그대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