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악몽에서 풀려나는 빛
이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단계가 있다.
첫째, 그대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둘째, 그대는 완전한 것을 불완전하거나 결핍된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셋째, 그대는 그대 자신을 포함한 하나님의 창조물을 왜곡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넷째, 그대는 그대 자신을 창조할 수 있으며, 그대 자신의 창조가 나아갈 방향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다.
이 서로 얽힌 왜곡들은 분리, 곧 "두려움으로의 우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분리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하나님을 닮았다. 하나님이 행하는 확장은, 아버지의 자녀들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내면의 광채와 비슷하다. 그 광채의 참된 근원은 내면에 있다. 이는 아버지에게도 아들에게도 똑같이 참이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에는 하나님이 아들을 창조하는 것과, 아들의 마음이 치유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아들 자신의 창조 둘 다 포함된다. 이 둘은 하나님이 아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음을 전제한다. 사랑에서 비롯되는 모든 창조는 하나의 연속된 선 위에서 자유롭게 주어지며, 그 안의 모든 측면은 같은 질서에 속하기 때문이다.
에덴동산, 곧 분리 이전의 상태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마음의 상태였다. 아담이 "뱀의 거짓말"에 귀 기울였을 때, 아담이 들은 것은 오직 거짓뿐이었다.
그대는 참되지 않은 것을 계속 믿어야 할 이유가 없다 — 스스로 그렇게 선택하지 않는 한 그렇다. 참되지 않은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말 그대로 사라질 수 있다. 단지 잘못된 지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꿈에서 보이는 것은 매우 실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에게 깊은 잠이 내렸다고 말할 뿐, 아담이 깨어났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이 세상은 아직 포괄적인 재각성이나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대가 계속 투사하거나 그릇되게 창조하는 한 그런 재각성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의 영을 그대에게 확장했듯이 그대도 확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그대 안에 남아 있다. 실제로 확장이 그대의 유일한 선택이다. 그대의 자유의지는 완전한 것을 창조하는 기쁨을 위해 그대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두려움은 결국, 그대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찬탈할 능력이 있다는 근본적인 잘못된 지각으로 이어진다. 물론 그대는 그렇게 할 수 없고, 지금까지도 할 수 없었다.
여기에 그대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참된 근거가 있다. 그 벗어남은 그대가 속죄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 받아들임은 그대의 잘못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음을 그대가 깨닫게 해 준다.
아담에게 깊은 잠이 내린 뒤에야 비로소 그는 악몽을 경험할 수 있었다.
누군가 두려운 꿈을 꾸고 있을 때 갑자기 불이 켜지면, 그 사람은 처음에는 그 빛 자체를 꿈의 일부로 해석하고 그 빛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깨어나면, 그 빛은 꿈으로부터의 풀려남으로 올바르게 지각되며, 그 꿈은 더 이상 실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 풀려남은 환영에 의존하지 않는다. 환하게 밝혀 주는 앎은 그대를 자유롭게 할 뿐 아니라, 그대가 자유롭다는 것을 그대에게 분명히 보여 준다.
그대가 어떤 거짓을 믿든, 그 거짓은 기적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적은 그 어떤 거짓이든 똑같이 쉽게 치유할 수 있다. 기적은 잘못된 지각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는다. 기적이 오직 관심을 두는 것은 한쪽에는 진리를, 다른 한쪽에는 잘못을 두어 그 둘을 가려내는 일뿐이다. 어떤 기적은 다른 기적보다 더 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의 첫 번째 원리를 기억하라. 기적에는 난이도의 순서가 없다.
실재에서 그대는 사랑의 결핍을 나타내는 그 어떤 표현에도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 이런 사랑의 결핍 표현은 그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서, 그대 자신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대에게로 올 수 있다.
평화는 그대 안에 있는 속성이다. 그대는 평화를 바깥에서 찾을 수 없다. 병은 일종의 바깥을 향한 찾음이다. 건강은 내면의 평화다.
건강은 그대가 바깥에서 오는 사랑의 결핍에 흔들리지 않고 있게 해 준다. 또한 건강은 그대가 기적을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사람 안의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대는 내가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그대에게 기적을 행하라고 요청해 왔으며, 기적이 자연스럽고 교정적이며 치유하고 보편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왔다. 기적이 할 수 없는 일은 없지만, 기적은 의심이나 두려움의 정신으로는 행해질 수 없다.
그대가 무언가를 두려워할 때, 그대는 그 무언가가 그대를 해칠 힘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는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믿는다. 그대가 두려워한다면 그대는 반드시 잘못된 것에 가치를 두게 될 것이다. 또한 모든 생각에 동등한 힘을 부여함으로써 반드시 평화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성경이 "그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평화는 그 어떤 종류의 잘못으로도 결코 흔들릴 수 없다. 하나님의 평화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은 그 무엇도 그대에게 영향을 미칠 힘이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이것이 부인을 올바르게 쓰는 방식이다. 부인은 무언가를 감추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는 데 쓰인다. 부인은 모든 잘못을 빛 가운데로 끌어내며, 잘못과 어둠은 같은 것이므로 부인은 저절로 잘못을 바로잡는다.
참된 부인은 강력한 보호 장치다. 그대는 잘못이 그대를 해칠 수 있다는 믿음이라면 무엇이든 부인할 수 있고, 또 마땅히 부인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부인은 은폐가 아니라 교정이다.
그대의 바른 마음은 이 부인에 달려 있다. 잘못을 부인하는 것은 진리를 지키는 강력한 방어이지만, 진리를 부인하는 것은 그릇된 창조, 곧 에고의 투사로 이어진다. 바른 마음을 섬기는 가운데 잘못을 부인하는 것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의지의 자유를 되세운다.
의지가 참으로 자유로울 때는 그릇되게 창조할 수 없다. 오직 진리만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그대는 잘못을 방어할 수 있는 만큼 진리도 방어할 수 있다.
목표의 가치가 확고히 세워지고 나면 그 수단은 이해하기가 더 쉬워진다. 문제는 그 수단이 무엇을 위한 것이냐다. 누구나 자신의 보물을 방어하며, 저절로 그렇게 하게 된다. 참된 물음은 그대가 무엇을 보물로 여기며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다.
이 물음들을 숙고하고 그대의 모든 행동에 이 물음들을 반영하는 법을 일단 배우고 나면, 수단을 분명히 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 수단은 그대가 구할 때마다 주어진다. 다만 이 단계를 불필요하게 오래 끌지 않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올바른 초점은 이 과정을 헤아릴 수 없이 단축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