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무것도 아닌 다른 신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그러지 않으면 그대는 듣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대가 만든 신들을 질투하지 않지만, 그대는 질투한다. 그대는 신들이 그대를 만들었다고 믿기에, 신들을 구하고 섬기려 한다. 그대가 신들을 그대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체하기 위해 그대가 신들을 만들었다는 두려운 사실을 신들에게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들이 그대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 무엇도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으며 그대가 시도한 그 어떤 대체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매우 단순하게 말해, 그대는 자신이 무(無)를 두려워한다고 믿을 수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인식 안에서 그대는 치유된다. 그대는 자신이 귀 기울이는 신의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대는 병의 신을 만들었으며, 병의 신을 만듦으로써 그대는 자기 자신을 병의 신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대는 병의 신을 창조하지 않았다. 병의 신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의 신은 영원하지 않으며, 오직 영원한 것만을 받아들이려는 그대의 의향을 나타내는 순간 그대를 위해 원상태로 되돌려질 것이다.
하나님에게 오직 하나의 아들만이 있다면, 오직 하나의 하나님만이 있다. 그대는 하나님과 실재를 공유한다. 실재는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대 자신 앞에 다른 이미지들을 놓는 것이다. 그대는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신들에게 귀 기울이는지, 그리고 신들을 위해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신들은 오직 그대가 신들을 공경하기에 존재한다. 공경이 마땅한 곳에 공경을 두라.
그러면 평화가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평화는 그대의 참된 아버지로부터 받는 그대의 유산이다. 그대는 자신의 아버지를 만들 수 없으며, 그대가 만든 아버지는 그대를 만들지 않았다. 환영에게는 공경이 마땅하지 않은데, 환영들을 공경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공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영들에게 두려움도 마땅하지 않은데, 아무것도 아닌 것은 두려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사랑의 완벽한 무해함 때문에 사랑을 두려워하기로 선택했으며, 이 두려움 때문에 그대 자신의 완벽한 도움됨과 그대 자신의 완벽한 도움을 기꺼이 포기해 왔다. 오직 하나님의 제단에서만 그대는 평화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제단은 그대 안에 있다. 하나님이 제단을 그곳에 두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여전히 그대에게 돌아오라고 부르며, 그대가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음성은 들릴 것이다.
그대는 형제들을 위해 병의 신을 포기할 수 있다. 실제로 자기 자신을 위해 그를 포기한다면 그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어디에서든 병의 신을 본다면 그대가 병의 신을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의 신을 받아들인다면 그대는 병의 신에게 절하고 병의 신을 숭배하게 될 것이다. 병의 신이 하나님의 대체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병의 신은 어느 신이 실재하는지 그대가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실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지만, 그대가 지각하는 실재와는 전적으로 상관이 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