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재림은 실재에 대한 인식
에고는 말 그대로 빌려 온 시간으로 살아가며, 그 날들은 정해져 있다.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심판을 반기라. 그리고 기다리지 말라. 에고의 시간은 그대의 영원에서 "빌려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첫 번째 오심이 창조되었듯이 그대를 위해 만들어진 재림이다. 재림은 그저 분별의 회귀일 뿐이다. 이것이 과연 두려운 일일 수 있겠는가? 환상이 아니고서야 무엇이 두려울 수 있으며, 실재 안에서 만족을 찾는 것에 절망하지 않고서야 누가 환상으로 향하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환상 속에서 결코 만족을 찾지 못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며, 따라서 그대의 유일한 희망은 실재에 대한 그대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실재가 두렵다는 결정이 틀렸을 때에만 하나님이 옳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옳다는 것을 나는 그대에게 장담한다.
그러므로 그대가 틀렸었다는 것을 기뻐하라. 그러나 이는 오직 그대가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알았더라면, 하나님이 틀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대도 틀릴 수 없었을 것이다. 불가능한 일은 오직 환상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그대가 환상 속에서 실재를 찾는다면 찾지 못할 것이다. 환상의 상징들은 에고에게서 비롯되며, 그대는 그런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환상의 상징들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라. 그 상징들은 자신이 얽혀 있는 환상들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동화는 즐거울 수도 두려울 수도 있지만, 아무도 참되다고 부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것들을 믿을 수 있으며, 그래서 한동안은 그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참되다.
그러나 실재가 동틀 때, 환상들은 사라진다. 그동안 실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재림은 실재의 귀환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인식이다. 보라, 내 아이야, 실재가 여기 있다. 실재는 그대와 나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 모두를 완전히 만족시킨다. 오직 이 인식만이 치유한다. 그것이 진리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