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형제 안에서 듣는 응답

무언가를 요구하려고 기도를 사용해 본 사람은 누구나 실패처럼 보이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는 해로울 수 있는 특정한 것들과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이 과정과 엄격히 일치하는 요청들과 관련해서도 참이다. 특히 이 과정과 일치하는 요청에서 겪는 실패는 이 과정이 말하는 바를 실제로 의미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그대는 이 과정이 그 목적이 두려움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정해 보자. 그대가 성령에게 요구하는 것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데, 그대는 여전히 그것을 두려워한다. 이 경우 그것을 얻는 일은 더 이상 그대가 원하는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상태는 이루어지더라도 특정한 형태의 치유는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다.

어떤 사람은 신체적 위해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신체적 치유를 요구할 수 있다. 동시에, 만약 그 사람이 신체적으로 치유된다면, 자신의 사고체계에 가해지는 위협이 그 신체적 표현보다 훨씬 더 두려울 수 있다. 이 경우 그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증상의 제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요구는 전혀 치유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성경은 모든 기도가 응답받는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실로 참이다. 성령에게 무엇이든 요구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응답을 보장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주는 그 어떤 응답도 결코 두려움을 늘리는 것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확실하다. 성령의 응답이 들리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대가 이미 받았지만 아직 듣지 못한 응답이 많이 있다. 그것들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그대에게 장담한다.

그대의 기도가 응답받는다는 것을 알고 싶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그를 의심하지 말고, 혼란스럽게 하지도 말라. 그를 향한 그대의 믿음이 곧 그대 자신을 향한 그대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응답을 알고 싶다면, 나를 믿으라. 그대를 향한 나의 믿음은 결코 흔들릴 수 없다.

그대는 성령에게 진실로 요구하면서 자신의 형제를 의심할 수 있는가? 그 형제의 말이 참되다고 믿으라, 그의 안에 있는 진리 때문이다. 그대는 그 안에 있는 진리와 하나가 될 것이고, 그의 말은 참될 것이다. 그대가 그의 말을 들을 때 그대는 나의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진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지금 진리를 듣고 마침내 알게 되는 유일한 길이다.

그대의 형제가 그대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대에게 달려 있다. 그대의 형제는 그대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그대는 그대의 형제가 무엇을 말하기를 바라는가? 그대의 형제에 대한 그대의 결정이 그대가 받는 메시지를 결정한다.

성령이 그 안에 있으며, 성령의 음성이 그를 통해 그대에게 말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토록 거룩한 형제가 진리 외에 그대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형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그대의 형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수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그것을 아는 빛이 있다. 이 빛은 그대의 마음속으로 비쳐 들어와, 그의 말에 진리를 부여하고 그대가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 그대의 형제의 말은 그대를 향한 성령의 응답이다.

그 형제를 향한 그대의 믿음은 그대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한가? 그대가 홀로 기쁨을 찾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대는 홀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수 없다. 기도는 포함의 재천명이며, 하나님의 법칙 아래 성령이 이끄는 것이다. 구원은 그대의 형제에게서 온다.

성령은 그대의 마음에서 그의 마음으로 확장되며, 그대에게 응답한다.

그대는 홀로 자기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대변하는 음성을 들을 수 없다. 그대가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의 응답은 오직 그대의 참모습을 위한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갖는 신뢰를 그대가 확장하지 않는 한, 그대는 그 신뢰를 알지 못할 것이다. 다른 이들 안에서 성령의 응답을 듣지 않는 한, 그대는 성령의 인도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그대를 위한 것이라고 믿지도 않을 것이다.

성령의 응답이 그대를 위한 것이기에, 그것은 그대의 형제를 위한 것이기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오직 그대만을 위한 음성을 창조했겠는가? 하나님이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응답하는 방식이 아니고서야, 그대가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겠는가? 그대가 나에게 그대에 대해 듣게 하고 싶은 것을, 그대는 그대의 형제에 대해 들으라.

이는 그대가 내가 속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러하듯,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리 때문에 그대를 사랑한다. 그대의 속임수는 그대 자신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를 속일 수는 없다. 그대가 무엇인지 알기에, 나는 그대를 의심할 수 없다.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성령만을 듣는데, 성령은 그대를 통해 나에게 말한다. 그대가 나의 말을 듣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대변하는 음성이 말하고 있는 나의 형제들의 말을 들으라. 모든 기도에 대한 응답은 그대의 형제들 안에 있다. 그대가 모든 사람 안에서 그 응답을 들을 때, 그대는 응답받을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에도 귀 기울이지 말라. 그러지 않으면 그대는 참되게 듣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대를 믿기에 그대의 형제들을 믿으라. 그러면 그대는 그대를 향한 나의 믿음이 정당하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대의 형제들을 믿음으로써 나를 믿으라. 하나님이 그대의 형제들에게 준 것을 위해서다.

그대가 그대의 형제들에게 오직 진리만을 요구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대의 형제들은 그대에게 응답할 것이다.

그대의 형제들을 축복하지 않고서는 축복을 요구하지 말라.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만 그대는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을 따름으로써 그대는 자기 안의 진리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응답만을 들으라. 그러면 그대는 응답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