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분리된 뜻, 하나 된 뜻

치유는 다른 그 누구에게서도 오지 않는다. 그대는 내면에서 오는 인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인도는 그대가 원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인도는 그대에게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치유는 협력의 일이다. 나는 그대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 줄 수 있지만, 그대는 내가 그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고 믿음으로써 협력해야 한다.

그렇게 믿어야만 그대의 마음이 나를 따르기로 선택할 것이다. 이 선택이 없다면 그대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그대가 치유에 반하기로 결정한 것이 되며, 그대를 위한 나의 결정에 대한 이러한 거부가 치유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치유는 우리의 공동의 뜻을 반영한다. 치유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이는 명백하다. 치유는 분리가 극복되는 방식이다. 분리는 하나됨으로 극복된다. 분리됨으로써는 극복될 수 없다.

하나 되기로 한 결정은 명확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마음 자체가 나뉘어 온전하지 못하다.

그대의 마음은 그대가 그대 자신의 상태를 결정하는 수단이다. 마음이 곧 결정의 기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대가 분리하거나 하나 되며, 그에 따라 고통이나 기쁨을 경험하게 하는 힘이다.

나의 결정은 그대의 결정을 넘어설 수 없다. 그대의 결정도 나의 것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대의 결정이 나의 결정만큼 강력하지 않다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평등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공동 결정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나 혼자만의 결정은 그대를 도울 수 없다. 그대의 뜻은 나의 뜻만큼 자유로우며, 하나님 자신도 그대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뜻하지 않는 것을 뜻할 수 없다. 나는 그대의 힘을 무적으로 만들기 위해 나의 힘을 내줄 수 있지만, 그대의 결정과 경쟁하고 그로써 그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않고서는 그대의 결정에 반대할 수 없다.

하나님이 창조한 그 무엇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창조한 그 무엇도 그대의 결정을 거스를 수 없다. 하나님이 그대의 뜻에 그 힘을 주었으며, 나는 다만 하나님의 힘을 기려 그 힘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대가 나처럼 되고 싶다면 나는 그대를 도울 것이니, 우리가 서로 닮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대가 다르게 되고 싶다면, 나는 그대가 마음을 바꿀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나는 그대를 가르칠 수 있지만, 오직 그대만이 나의 가르침을 듣기로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자유라면, 달리 어떻게 될 수 있겠는가? 자유는 그 어떤 종류의 폭정으로도 배울 수 없으며,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의 완전한 평등은 한 마음이 다른 마음을 지배함으로써는 인식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뜻에서 평등한데, 모두가 그들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가르치러 온 유일한 가르침이다.

그대의 뜻이 나의 뜻이 아니라면 그대의 뜻은 우리 아버지의 뜻도 아닐 것이다. 이는 그대가 그대의 뜻을 가두어 자유롭게 두지 않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대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대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버지를 부인함으로써 그대는 그대 자신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그대를 기억할 것이며, 그대에 대한 나의 기억 안에 그대 자신에 대한 그대의 기억이 있다. 서로에 대한 우리의 기억 안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기억 안에 그대의 자유가 있으니, 그대의 자유는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미하는 데 나와 함께하라,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한 그대 자신을 찬미하는 데도 함께하라. 이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우리의 감사의 선물이며, 하나님은 이를 자신의 모든 창조물과 나눌 것이니, 하나님은 그들 모두에게 자신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면 무엇이든 똑같이 준다.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기에 그것은 자유의 선물이며, 이는 자신의 모든 아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자유를 줌으로써 그대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유는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니, 이는 그들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정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창조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가두려 하는 이를 그대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가 그대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를 가두려 할 때, 그대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며 그 사람과 동일시할 수 없다. 그대 자신을 가둘 때, 그대는 나와 아버지에 대한 그대의 참된 동일시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대의 동일시는 아버지와 아들 둘 다와의 동일시다. 그 동일시는 하나와만 함께할 수 없으며, 반드시 다른 하나와도 함께해야 한다. 그대가 하나의 일부라면 그대는 반드시 다른 하나의 일부이기도 해야 한다. 그 둘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삼위일체는 하나이기에 거룩하다. 그대가 이 하나됨에서 그대 자신을 배제한다면, 그대는 거룩한 삼위일체를 분리된 것으로 지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반드시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 하나됨이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삼위일체는 그대만큼이나 상실감에 잠겨 있다. 그대가 삼위일체 안에서 그대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일부로서 그대의 역할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삼위일체의 진리가 알려지려면, 삼위일체의 그 어떤 부분도 갇혀 있을 수 없다.

그대는 그대의 동일시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면서 평화로울 수 있는가? 해리는 해결책이 아니라 망상이다. 망상에 빠진 이들은 진리가 자신을 덮칠 것이라 믿으며, 그 망상을 더 선호하기에 진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진리를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함으로써, 망상에 빠진 이들은 앎을 가로막는 자신들의 환영을 지각한다.

그대의 통합된 마음을 그들을 대신해 그들에게 내어줌으로써 그들을 도우라, 내가 그대를 대신해 나의 마음을 그대에게 내어주는 것처럼. 우리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함께라면 우리의 마음은 그 분리된 부분들의 힘을 훨씬 뛰어넘는 힘을 지닌 무언가로 융합된다.

분리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마음(Mind)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로서 세워진다. 이 마음(Mind)은 나뉘지 않았기에 무적이다.

아들됨(Sonship)의 나뉘지 않은 뜻은 완전한 창조주이니, 이는 그 뜻의 주인인 하나님을 온전히 닮았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 뜻이 무엇이며 그대 자신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그대는 그 뜻에서 면제될 수 없다. 그대의 뜻이 나의 뜻과 분리되어 있다는 믿음으로써, 그대는 곧 그대 자신인 하나님의 뜻에서 그대 자신을 면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치유한다는 것은 여전히 온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유한다는 것은 그대와 닮은 이들과 하나 된다는 것이다. 이 닮음을 지각하는 것이 곧 아버지를 알아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완전함이 오직 아버지 안에만 있다면, 아버지를 알아보지 않고서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알아보는 것이 곧 그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물 사이에는 아무 분리도 없다. 그대의 뜻과 나의 뜻 사이에 아무 분리도 없음을 이해할 때 그대는 이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대가 나를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 위에 비추게 하라. 나의 실재는 그대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이다. 그대의 마음을 나의 마음과 합침으로써 그대는 하나님의 뜻이 하나임을 자각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됨과 우리의 하나됨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의 하나됨이 우리의 하나됨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나와 하나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힘을 그대에게 회복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 안에 있는 하나님의 힘에 대한 인정만을 그대에게 내주지만, 그 인정 안에 모든 진리가 있다.

우리가 하나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들의 하나됨에 영광이 있기를! 모든 영광은 그들 안에 있으니, 그들이 하나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하는 기적은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품은 뜻에 대한, 그리고 그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뜻과 하나 되는 우리의 기쁨에 대한 증언이다.

그대가 나와 하나 될 때 그대는 에고 없이 하나 되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 안에서 에고를 버렸기에 그대의 에고와 하나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나됨은 그대 안의 에고를 버리는 길이다.

우리 둘 안의 진리는 에고를 넘어서 있다. 에고를 넘어서는 우리의 성공은 하나님이 보장하며, 나는 이 확신을 우리 둘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나눈다.

나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하나님의 평화를 되돌려 준다. 내가 우리 모두를 위해 하나님에게서 그것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우리의 하나 된 뜻을 이길 수 없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뜻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