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형제 안에서 찾는 빛
1) 너 자신을 알라
그대가 어떤 스승을 선택하든, 교육과정의 목표는 "너 자신을 알라"이다. 그 밖에 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잃었다고 생각하는 권능과 영광을 찾고 있다. 그대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마다, 그대에게는 그 권능과 영광을 찾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 그대의 권능과 영광은 그 사람 안에 있다. 그 권능과 영광이 곧 그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에고는 권능과 영광을 오직 그대 자신 안에서만 찾으려 한다. 어디를 보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령은 그대가 오직 그대 자신만을 본다면 그대 자신을 찾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홀로인 그대 자신은 그대의 참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가 한 형제와 함께 있을 때마다, 그대는 그대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있다. 그대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형제는 그대가 어느 스승을 따르고 있는가에 따라 고통으로 반응하거나 기쁨으로 반응할 것이다. 그 형제는 그대의 결정에 따라 갇히거나 풀려날 것이며, 그대도 마찬가지다.
그 형제에 대한 그대의 책임을 결코 잊지 말라, 그것이 그대 자신에 대한 그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 형제에게 그 나라 안의 자리를 주라, 그러면 그대도 그대의 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그 나라는 혼자서는 찾을 수 없으며, 그 나라인 그대는 혼자서는 그대 자신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의 목표를 이루려면, 그대는 에고의 말을 들을 수 없다. 에고의 목적은 자기 자신의 목표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고는 이것을 알지 못한다. 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에고의 목적을 알 수 있다. 에고가 그대를 무엇으로 만들려 하는지 기꺼이 들여다본다면, 그대는 그 목적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그대의 책임이다. 그대가 정말로 에고의 목적을 들여다보고 나면 그대는 그대 자신을 위해 속죄를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달리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선택을 하고 나면, 그대는 왜 예전에 그대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형제가 다른 어떤 존재라고 믿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온전히 들어서는 모든 거룩한 만남은 그 형제가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님을 그대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그대는 오직 그대 자신의 일부만을 만날 수 있다. 그대가 모든 것인 하나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은 어디에나 있으며, 그대는 권능과 영광에서 배제될 수 없다. 에고는 그대의 힘이 오직 그대 안에만 있다고 가르친다. 성령은 모든 힘이 하나님 안에 있으며 따라서 그대 안에도 있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고통받기를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대를 포함해 그 누구도 그릇된 결정으로 인해 고통받기를 뜻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릇된 결정을 되돌릴 수단을 그대에게 주었다.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통해 그대의 모든 그릇된 결정은 완전히 되돌려진다. 이 되돌림이 아들됨(Sonship)의 어느 부분이든 붙들고 있는 모든 가두는 생각에서 그대와 그대의 형제를 풀어 준다.
그릇된 결정에는 아무 힘도 없다. 그것들이 참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듯 보이는 갇힘도 그것들 자체보다 더 참되지 않다. 권능과 영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한다. 그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 준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내어주기 때문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속하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하나님이 그대에게 준 역할이다. 그 역할을 완전히 완수하면 그대는 그대가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가졌는지 기억하게 될 것이며, 이로써 그대는 또한 그대가 하나님 안에서 무엇인지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대에게는 자신을 내어주는 이 일을 할 힘이 반드시 있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힘이기 때문이다. 영광은 하나님이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 영광을 어디에서나 보라, 그러면 그대는 그대가 무엇인지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대를 위해 뜻하는 것이 완전한 평화와 기쁨이라면, 그대가 오직 이것만을 경험하지 않는 한 그대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하나님의 뜻은 흔들리지 않으니, 영원히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평화롭지 않을 때, 그것은 오직 그대가 그대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믿지 않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다. 하나님의 평화는 완전하며, 그대는 반드시 그 평화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법칙은 그대를 다스린다. 그것이 모든 것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대는 하나님의 법칙에서 스스로를 면제할 수 없지만, 그 법칙에 불순종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대가 그 법칙에 불순종한다면, 그리고 오직 불순종할 때만, 그대는 외롭고 무력하게 느낄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어둠을 몰아내는 빛
나는 자기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부인하는 이 세상에 빛으로 왔다. 세상은 그저 자기 자신을 모든 것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부인한다.
그러므로 세상은 고립의 환영이며, 그 환영 자체인 바로 그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지된다. 나는 내가 언제나 그대와 함께 있다고, 세상의 끝까지도 그러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의 빛이다. 내가 세상의 외로움 속에서 그대와 함께 있다면, 그 외로움은 사라진다. 그대가 혼자가 아니라면 그대는 외로움이라는 환영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목적은 여전히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공격하지 않지만, 나의 빛은 세상의 본질 때문에 반드시 세상을 몰아내야 한다.
빛은 어둠을 공격하지 않지만, 어둠을 비추어 몰아낸다. 나의 빛이 어디든 그대와 함께 간다면, 그대는 나와 함께 그 어둠을 비추어 몰아낸다.
그 빛은 우리의 것이 되며, 그대가 가는 곳마다 어둠이 머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대도 어둠 속에 머물 수 없다. 나에 대한 기억은 곧 그대 자신에 대한 기억이며, 나를 그대에게 보낸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다.
아들됨(Sonship)의 어느 한 부분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행하기 전까지, 그대는 어둠 속에 있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행해졌을 때, 모두가 그 뜻을 완전하게 성취한 것이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완전하게 성취될 수 있었겠는가?
나의 사명은 그저 아버지의 뜻을 나 스스로 자각함으로써 아들됨의 뜻을 아버지의 뜻과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그대에게 주기 위해 온 자각이며, 그 자각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그대가 겪는 어려움이 바로 이 세상의 문제다.
그러므로 세상은 나를 경멸하고 거부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내가 그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대는 세상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뜻은 하나님의 뜻이며, 나의 말을 듣기로 한 그대의 결정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기로 한 결정이다.
하나님이 나를 그대에게 보냈듯이 나도 그대를 다른 이들에게 보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대와 함께 그들에게 갈 것이니, 우리가 그들에게 평화와 하나됨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세상이 그대만큼이나 평화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대가 평화를 받고 싶은 만큼 그 평화를 세상에게 주고 싶지 않은가?
그대가 세상에게 평화를 주고 싶어 하지 않는 한, 그대는 그 평화를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나에게서 그 평화를 얻고 싶다면, 그대는 그 평화를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