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기심 아닌 참나충만
이기심은 에고의 것이지만, 참나충만(Self-fullness)은 영의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영을 그렇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성령은 에고와 영 사이에 놓인 마음의 부분에 있으며, 에고와 영 사이를 언제나 영에게 유리하도록 중재한다. 에고에게 성령의 중재는 편파적으로 보이며, 에고는 마치 자신이 배척당하는 것처럼 반응한다.
영에게 성령의 중재는 진리다. 영은 자신의 충만함을 알고 있으며 자신이 배제된 부분이란 있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영은 모든 형제의 자각이 자신의 자각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며, 이는 곧 그 자각이 하나님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들됨(Sonship) 전체와 그 창조주의 힘은 곧 영 자신의 충만함이며, 이는 영의 창조물들을 똑같이 온전하고 똑같이 완전하게 만든다.
에고는 하나님을 포함하는 전체를 이길 수 없으며, 어떤 전체든 반드시 하나님을 포함해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힘 전부가 주어진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부이며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존재함(Being)을 나누기 때문이다. 창조하는 것은 상실의 반대이며, 이는 축복이 희생의 반대인 것과 같다. 존재함(Being)은 반드시 확장되어야 한다. 확장이 존재함이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간직하는 방법이다.
영은 자신의 창조주가 그러했듯이 자신의 존재함을 나누기를 갈망한다. 영은 나눔으로써 창조되었기에, 그 뜻은 창조하는 데 있다. 영은 하나님을 담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함(Being)을 확장하기를 뜻한다. 하나님의 존재함을 확장하는 것이 영의 유일한 기능이다. 영의 충만함은 담길 수 없으니, 이는 그 창조주의 충만함이 담길 수 없는 것과 같다. 충만함은 곧 확장이다.
에고의 사고 체계 전체는 확장을 가로막으며, 따라서 그대의 유일한 기능을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에고는 그대의 기쁨을 가로막아, 그대가 스스로를 성취되지 못한 존재로 지각하게 만든다.
창조하지 않으면 그대는 성취되지 못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성취되지 못함을 알지 못하므로 그대는 반드시 창조해야 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창조물을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창조물들의 실재함에 아무런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는 그대가 그대의 영을 자각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영의 존재함에 지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마음(Mind) 안에 있기에 영원히 확장되고 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참나충만(Self-fullness)을 알지 못하기에 그대의 기쁨을 알지 못한다.
그 나라의 어떤 부분이라도 그대 자신에게서 배제하면 그대는 온전하지 않다. 나뉜 마음은 자신의 충만함을 지각할 수 없으며, 자신의 온전함이라는 기적이 떠올라 그 마음을 치유해 주어야 한다.
이 기적은 그 마음 안의 온전함을 다시 일깨워, 온전함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마음을 그 나라로 회복시킨다.
마음의 참나충만(Self-fullness)을 온전히 인정하면 이기심은 불가능해지고 확장은 필연이 된다. 그 확장이 바로 그 나라에 완전한 평화가 있는 이유다. 영은 자신의 기능을 성취하고 있으며, 오직 완전한 성취만이 평화다.
그대의 창조물은 그대를 위해 보호되고 있다. 그대의 마음 안에 있는 성령이 그 창조물들을 알고 있으며, 그대가 허락하는 언제든 그 창조물들을 그대의 자각 속으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창조물들은 그대 자신의 존재함의 일부로서 거기 있으니, 그대의 성취에는 그 창조물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아들의 창조물은 그대의 것이니, 모든 창조물은 아들됨(Sonship) 전체를 위해 창조되었으므로 모두에게 속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유산을 늘리는 데 실패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 유산을 그대 자신을 위해 지키는 데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 유산을 그대에게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므로, 하나님은 그 유산을 영원히 주었다. 그 유산을 그대가 영원히 갖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므로, 하나님은 그 유산을 지킬 수단도 그대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대는 그렇게 해 왔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은 오직 제정신이 아닌 자에게만 의미가 있다. 진실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대의 참나충만(Self-fullness)은 하나님의 것만큼이나 무한하다. 하나님의 것이 그러하듯, 그대의 참나충만도 영원히 그리고 완전한 평화 속에서 확장된다. 그 광휘가 너무나 강렬하여 그대의 참나충만은 완전한 기쁨 속에서 창조하며, 오직 전체만이 그 온전함에서 태어날 수 있다.
그대는 그대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온전함과 평화 속에 유지시키는 확장들을 결코 잃은 적이 없음을 확신하라.
기적은 이 확신의 표현이다. 기적은 그대의 형제들과의 올바른 동일시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 동일시가 확장으로 유지된다는 그대의 자각을 반영한다. 기적은 총체적 지각에 대한 하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 안에 전체성의 어떤 부분이라도 포함시킴으로써, 그대는 전체를 포함시킨 것이다.
그 나라는 전제의 결과이며, 이는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대는 에고의 추론을 그 논리적 결론까지 끌고 갔을 수 있는데, 그 결론은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혼란이다.
그대가 정말로 이 결과를 본다면 그 결과를 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가 그 결과의 일부라도 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대가 그 결과의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에고의 전제를 기꺼이 살펴보려 하면서도, 그 논리적 결과는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 그대가 하나님의 전제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을 해 온 것은 아닐까?
그대의 창조물은 하나님의 전제가 낳은 논리적 결과다. 하나님의 생각이 그대를 위해 그 창조물들을 세웠다. 그 창조물들은 정확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
그 창조물들은 하나님과 그대의 동일시의 일부로서 그대의 마음 안에 속해 있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 상태와 그 안에 있는 것에 대한 그대의 인식은 그대가 그대의 마음에 대해 무엇을 믿는가에 달려 있다. 이 믿음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바로 그대가 그대의 마음속에 무엇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하는 전제다. 그대가 거기 없는 것을 그대의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기 있는 것을 부인할 수도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 자신을 통해 그대의 마음에 준 그 기능을, 그대는 부인할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
그 기능은 그대라는 존재의 논리적 결과다. 논리적 결과를 볼 수 있는 능력은 그것을 보려는 의향에 달려 있지만, 그 진리 자체는 그대의 의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나누면 그대는 하나님이 아는 것을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그대의 것으로 부인하면, 그대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대의 나라를 둘 다 부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