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믿음을 거두면 사라지는 에고

에고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대가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에고의 존재는 그대의 마음에 달려 있다. 에고란 곧 그대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에고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다. 일관된 본보기가 있었던 적이 없기에, 에고는 결코 일관되게 발전하지 못했다. 에고는 왜곡된 마음들이 하나님의 법칙을 잘못 적용한 산물이다. 이 마음들은 자신의 힘을 오용하고 있다.

에고를 두려워하지 말라. 에고는 그대의 마음에 달려 있으며, 그대가 에고를 믿음으로써 만들었듯이 그대는 에고에 대한 믿음을 거두어들임으로써 에고를 없앨 수 있다.

에고에 대한 그대의 믿음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도 투사하지 말라, 그러지 않으면 그대는 에고에 대한 믿음을 그대로 보존하게 될 것이다. 그대가 에고의 존재에 대한 책임 전부를 기꺼이 받아들일 때, 그대는 모든 분노와 모든 공격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분노와 공격은 그대 자신의 오류에 대한 책임을 투사하려는 시도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오류들을 그대의 것으로 받아들인 뒤에는, 그 오류들을 간직하지 말라. 그 오류들을 곧바로 성령에게 넘겨 완전히 되돌리게 하여, 그 모든 결과가 그대의 마음과 아들됨(Sonship) 전체에서 사라지게 하라.

성령은 그대의 믿음을 넘어서 지각하도록 그대를 가르칠 것이니, 진리는 믿음을 넘어서 있고 성령의 지각은 참되기 때문이다. 에고는 언제든 완전히 잊힐 수 있다. 에고가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믿음이며, 누구도 자신이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믿음을 계속 간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에고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대는 에고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더욱더 깨닫게 된다. 믿을 수 없는 것은 이해될 수 없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것에 근거한 지각의 무의미함은 명백하지만, 믿을 수 없는 것이 믿음을 넘어서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 믿을 수 없는 것 자체가 믿음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 전체의 목적은 에고가 믿을 수 없는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남으리라는 것을 그대에게 가르치는 데 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써 에고를 만든 그대는 혼자서는 이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대 자신을 위해 속죄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대는 그대가 혼자일 수 있다는 믿음에 반대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로써 그대는 분리라는 관념을 몰아내고, 그 나라 전체와의 참된 동일시, 곧 그 나라가 문자 그대로 그대의 일부라는 동일시를 확언하는 것이다.

이 동일시는 의심을 넘어서 있는 만큼이나 믿음을 넘어서 있다. 그대의 온전함에는 한계가 없으니, 존재함(Being)이 곧 무한이기 때문이다.

오직 그대만이 그대가 창조하는 힘을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힘을 풀어놓기를 뜻한다.

하나님은 그대가 그대의 창조물들을 스스로에게서 빼앗기를 바라지 않으며, 이는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창조물들을 자신에게서 빼앗기를 바라지 않는 것과 같다. 아들됨(Sonship)에게 줄 그대의 선물을 거두지 말라, 그러지 않으면 그대는 그대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거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