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움됨이 곧 찬양

성경은 그대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 이는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대가 하나님에게 말해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러한 찬양을 받아들일 에고도 없고, 그 찬양을 판단할 지각도 없다.

그러나 그대가 창조 안에서 그대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한, 그대의 기쁨이 온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기쁨도 온전하지 않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것을 참으로 안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함 안에서, 그리고 그 존재함이 하나님의 아들의 경험을 함께 겪는 데서 이를 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뻗어 나가지만, 하나님의 통로들이 닫히면 막힌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한 마음들이 하나님과 온전히 소통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외로워진다. 하나님은 그대를 위해 그대의 나라를 지켜 왔지만, 그대가 그 나라를 그대의 온 마음으로 알기 전까지는 그대와 자신의 기쁨을 나눌 수 없다.

계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소통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계시가 자신에게 되돌려지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계시가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원한다. 이러한 전달은 실제 계시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계시의 내용은 표현될 수 없다. 계시를 받는 마음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는 계시를 받은 마음이 그 계시에서 오는 앎이 가져오는 태도를 통해 다른 마음들에게 되돌려질 수 있다.

어떤 마음이든 온전히 도움이 되는 법을 배울 때마다 하나님은 찬양받는다. 온전히 도움이 되려면 온전히 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이 두 믿음은 함께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도움이 되는 이들은 상처받지 않는다. 자신의 에고를 지키고 있지 않으므로 그 무엇도 그들을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움이 되는 이들의 도움됨이 곧 하나님을 향한 이들의 찬양이다. 하나님은 이들이 자신을 닮았기에 자신을 향한 이들의 찬양에 화답할 것이며, 이들은 함께 기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로, 그리고 이들을 통해 나아가며, 그 나라 전체에 큰 기쁨이 있다. 변화된 마음은 저마다 그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각자의 의지로 이 기쁨을 더한다.

참으로 도움이 되는 이들은 하나님의 기적 일꾼들이며, 나는 우리 모두가 그 나라의 기쁨 안에서 하나가 될 때까지 도움이 되는 이들을 인도한다. 나는 그대가 참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리고 그대를 통해 나의 인도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그대를 인도할 것이다.

치유한다는 것은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스스로를 기쁘게 할 기회가 얼마나 많았으며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기회를 거절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이는 그대가 자신을 치유하기를 거절해 왔다고 그대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

그대에게 속한 빛은 기쁨의 빛이다. 광채는 슬픔과 연결되지 않는다. 기쁨은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통합된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하나로서 응답하려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충동을 북돋운다. 자신이 온전히 기쁘지 않은 채로 치유하려는 이들은 동시에 서로 다른 종류의 반응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서 온 마음으로 응답하는 기쁨을 빼앗는다.

온 마음이 되려면 그대는 행복해야 한다. 두려움과 사랑이 공존할 수 없고, 온전히 두려워하면서 살아 있을 수 없다면, 가능한 유일한 온전한 상태는 사랑의 상태다. 사랑과 기쁨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가능한 유일한 온전한 상태는 온전히 기쁜 상태다. 따라서 치유하는 것, 즉 기쁘게 만드는 것은 통합하는 것, 즉 하나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치유를 아들됨의 어느 부분이 베풀든, 어느 부분에게 베풀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모든 부분이 유익을 얻으며, 똑같이 유익을 얻는다.

그대는 그대의 형제 그 누구의, 어디에서든 나오는 이로운 생각 하나하나로 축복받고 있다. 그대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에게도 보답하여 축복하고 싶어 해야 한다. 그대는 그들을 하나하나 알 필요가 없으며, 그들도 그대를 알 필요가 없다.

그대에게 속한 기쁨의 빛은 너무나 강해서 아들됨 전체에 걸쳐 빛나며, 아버지가 그 위에 아버지의 기쁨을 비추어 준 것에 대해 아버지에게 감사를 돌린다.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만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기쁨에 걸맞은 통로다. 오직 거룩한 자녀들만이 그 기쁨을 나눔으로써 담아낼 만큼 아름답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 이웃을 오직 자기 자신처럼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치유자의 기도는 이러하다. 내가 나 자신을 알듯 이 형제를 알게 하라.

치유는 두 마음이 자신들의 하나됨을 지각하고 기뻐하게 되는 생각이다. 이 기쁨은 아들됨의 모든 부분에게 이 두 마음과 함께 기뻐하라고 부르며, 하나님이 이 두 마음 안으로, 그리고 이 두 마음을 통해 나아가게 한다. 오직 치유된 마음만이 지속적인 효과를 지닌 계시를 경험할 수 있다. 계시는 순수한 기쁨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온전히 기뻐하기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마음은 기쁨이 되기로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가질 수 없다.

영은 가지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에 차이를 알지 못함을 기억하라. 높은 마음은 영이 따르는 법칙에 따라 생각하며, 그렇기에 오직 하나님의 법칙만을 따른다. 영에게 얻는 것은 무의미하며 주는 것이 전부다. 모든 것을 가진 영은 모든 것을 줌으로써 모든 것을 간직하며, 그렇게 아버지가 창조한 대로 창조한다.

주면서 간직한다는 이런 식의 생각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낮은 마음에게도 관념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이해가 된다. 그대가 물리적 소유물을 나눈다면, 그대는 실제로 그 소유권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관념을 나눈다면, 그대는 관념을 줄이지 않는다. 그 관념이 남김없이 주어졌어도 그 관념은 여전히 그대의 것이다. 게다가 그대가 관념을 준 사람이 관념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그대의 마음속에서 관념을 강화하여 늘려 준다.

그대가 세상이 관념들의 세상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에고가 주는 것과 잃는 것 사이에 만들어 내는 거짓된 연관에 대한 믿음 전체가 사라진다.

몇 가지 단순한 개념들로 우리의 재각성 과정을 시작하자. 생각은 주어짐으로써 늘어난다. 그 관념을 믿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관념은 더 강해진다. 모든 것은 관념이다. 그렇다면 주는 것과 잃는 것이 어떻게 연관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