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형제의 거룩함

그대의 형제의 거룩함 앞에서 세상은 고요하며, 평화가 부드러움과 완전한 축복 속에서 세상 위로 내려와, 밤의 어둠 속에서 그대를 계속 괴롭힐 갈등의 흔적은 단 하나도 남지 않는다. 그는 두려움의 꿈으로부터 그대를 구할 그대의 구원자다. 그는 희생의 느낌과, 그대가 지닌 것이 바람과 함께 흩어져 먼지로 변하리라는 두려움의 느낌을 치유하는 이다.

그 형제 안에 하나님이 여기, 지금 그대와 함께 있다는 그대의 확신이 있다. 그대의 형제가 자신인 그대로인 한, 그대는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그가 그대에게 알려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창조물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러하다는 표지는 그대의 형제 안에 있으며, 그의 거룩함 앞에서 그대 자신에 대한 그대의 모든 의심이 사라지도록 그대에게 내밀어졌다.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라. 그 안에서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그대를 자신의 일부로 창조했다는 그대의 인정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 없이는 하나님 안에 결핍이 있을 것이며, 천국은 불완전할 것이고, 아들은 아버지 없이 있을 것이다. 우주도 실재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뜻하는 것은 온전하며, 그의 뜻이 하나이므로 그가 뜻하는 것은 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의 일부가 아니면서 살아 있는 것은 없으며, 그 안에서 살아 있지 않으면서 있는 것도 없다.

그대의 형제의 거룩함은 하나님이 그와 그대와 하나임을, 그대가 그로부터도 그의 아버지로부터도 분리되어 있지 않기에 그가 지닌 것이 그대의 것임을 그대에게 보여 준다. 우주 전체에서 그대에게 잃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창조한 것 중, 하나님이 사랑스럽게 그대 앞에 놓아 영원히 그대의 것이 되게 하는 데 실패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의 마음 안의 그 어떤 생각도 그대 자신의 마음에서 빠져 있지 않다.

그대가 그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이 그대를 마음에 품었던 것만큼,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이 그대를 아는 것만큼 사랑스럽게 그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머무는, 그리고 그대가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영원 안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지나가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아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그대의 형제는 하나님이 그를 창조한 그대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그가 창조하지 않은 세상으로부터 그대를 구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치유가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의 전부임을 잊지 말라. 그 치유가 성령이 이 세상에서 보는 유일한 목적이며, 그렇기에 이 세상이 지닌 유일한 목적이다.

그대가 세상과 시간과 모든 겉모습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들의 치유뿐임을 보기 전까지는, 그대는 아버지도 그대 자신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세상을 그 목적이 아닌 것을 위해 쓸 것이고, 폭력과 죽음이라는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에게는 모든 면에서, 모든 방식과 모든 상황 속에서, 거기 없는 것을 지각하려는 모든 유혹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자신을 보기에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모든 신념 속에서, 그 법칙들 너머에 있는 것이 주어져 있다. 그대의 형제를 바라보고, 그의 안에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는 법칙들의 완전한 역전을 보라. 그의 자유 안에서 그대의 자유를 보라. 그대의 자유가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대의 형제의 특별함이 그의 안의 진리를 가리지 못하게 하라. 그대가 그를 묶는 죽음의 법칙 중 그 어느 하나로부터도 그대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가 그의 안에서 보는 죄 중, 그대들 둘 다를 지옥에 붙들어 두지 않는 죄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의 완전한 죄 없음은 그대들 둘 다를 풀어 줄 것이다.

거룩함은 아주 공정하여, 자신이 바라보는 모든 것에 대해 하나의 판단만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그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으며 그의 존재를 나누는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을 대변하는 그 음성을 통해 내려진다. 볼 수 있는 눈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그의 죄 없음이다. 그 눈들이 모든 것 안에서 보는 것은 그의 사랑스러움이다.

그리고 그 눈들이 어디에서나 찾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없는 광경도 자리도 시간도 찾지 못한다. 그대의 형제의 거룩함 안에, 곧 그대의 구원과 세상의 구원을 위한 완전한 틀 안에, 그대의 형제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고 그대도 그와 함께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에 대한 빛나는 기억이 자리 잡혀 있다.

그로부터, 그리고 그대로부터도 그리스도의 얼굴을 가리는 그 특별함의 베일에 그대의 눈이 눈멀지 않게 하라.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이상 그대가 보도록 정해진 그 인식을 그대에게서 붙들어 두지 못하게 하라. 그대의 형제의 육체는 그대에게 그리스도를 보여 주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그 형제의 거룩함 안에서 드러난다. 그러니 그대가 보고 싶은 것으로서 그의 육체나 그의 거룩함 중 하나를 택하라. 그리고 그대가 택하는 것이 그대가 바라볼 것이 된다. 그러나 진리가 그대의 결정이 될 때까지, 그대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그리고 끝이 없어 보이는 시간을 지나며 계속 선택할 것이다.

영원은 그 형제의 안의 그리스도를 또 한 번 부인함으로써 되찾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다만 육체일 뿐이라면, 그대의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거룩함 안이 아니라면 그대의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그 일부를 그대의 형제의 거룩함 안에 영원히 두어, 그대가 마침내 알아보고 이해한 방식으로 드러난 그대 자신에 대한 진리를 볼 수 있게 한 그곳이 아니라면, 하나님 자신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의 형제의 거룩함은 그대에게 성사이자 축복이다. 그의 오류는 그 자신으로부터도, 그를 참되게 보는 그대로부터도 하나님의 축복을 거두어 갈 수 없다. 그의 실수는 지체를 일으킬 수 있으며, 그 지체를 그에게서 거두어 가는 일이 그대에게 주어져 있다. 결코 시작된 적이 없으며 끝이 필요하지도 않은 여정을 둘 다 끝낼 수 있도록 말이다.

결코 있었던 적이 없는 것은 그대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이 그대 곁에 서 있는 형제의 일부가 아님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대의 일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그대 자신의 거울이며, 그 안에서 그대는 그대들 둘 다에게 내린 그 판단을 본다.

그대 안의 그리스도는 그의 거룩함을 바라본다. 그대의 특별함은 그의 육체를 바라볼 뿐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대의 구원이 오래 걸리지 않도록, 그 형제를 있는 그대로의 그로 보라.

목적도 없고 그 어떤 종류의 성취도 없는 무의미한 방황이, 다른 선택이 그대에게 내줄 수 있는 전부다. 그대의 형제가 잠들어 있는 동안, 그대에게 주어진 것이 이루어지고 그가 과거에서 일어날 때까지, 완수되지 않은 기능의 헛됨이 그대를 계속 괴롭힐 것이다. 자기 자신을, 그리고 그대까지도 단죄한 그가, 그대와 함께 단죄로부터 구해 낼 존재로서 그대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대들 둘 다 자신의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그대가 육신으로 착각하고, 자신에게 아무런 힘도 지니지 못한 법칙들에 묶인 것으로 착각했던 그 아들 안에서 말이다.

그대는 이 법칙들이 그대를 위한 것이 아님을 기꺼이 깨닫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대의 형제를 그것들의 죄수로 보지 말라. 하나님의 일부를 다스리는 것이 나머지 전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대는 그를 다스린다고 보는 그 법칙들 아래에 그대 자신을 둔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대를 위한 사랑이 얼마나 커야 했는지 생각해 보라. 그는 고통에서 구해 내어 그대에게 행복을 줄 자신의 한 부분을 그대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대의 특별함이, 자신의 각 부분을 똑같은 사랑과 돌봄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사라지리라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그대 안의 그리스도는 그대의 형제를 참되게 볼 수 있다. 그대는 그가 보는 그 거룩함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려는가? 특별함은 그대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기능이다. 그것은 오직 그대만을 위해 서 있다.

특별함은 스스로 창조되고 스스로 유지되며,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육체를 넘어선 그 무엇과도 이어져 있지 않은 것으로서 그렇게 서 있다. 특별함의 눈에 그대는 하나의 분리된 우주다. 자기 자신을 자기 안에서 완전하게 붙들어 둘 모든 힘을 지녔으며, 침입에 맞서 모든 입구가 닫혀 있고, 빛에 맞서 모든 창문에 빗장이 걸려 있는 우주로서 말이다.

언제나 공격받으며 언제나 분노한 채, 그 분노가 언제나 온전히 정당화된 채, 그대는 결코 양보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경계심과 결코 멈추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노력으로 이 목표를 추구해 왔다.

그리고 이 모든 지독한 결의는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 — 그대는 특별함이 진리이기를 원했다. 이제 그대에게 요청되는 것은 다만 훨씬 적은 경계심으로, 적은 노력과 적은 시간으로, 그리고 그 목표를 유지하며 성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힘과 함께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두 목표 중, 그대가 더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뒤의 목표다. 자아의 "희생"은 그대가 이해하는 것이며, 그대는 이 대가가 너무 무겁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작은 기꺼움, 하나님을 향한 고갯짓, 그대 안의 그리스도를 향한 인사, 작은 기꺼움을 그대는 짊어질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지치고 지루한 짐으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이 확립한 그대로의 진리에 대한 헌신에는 그 어떤 희생도 요구되지 않으며, 그 어떤 부담도 불려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천국의 모든 힘과 진리 그 자체의 위력이 그 수단을 마련하고 그 목표의 성취를 보증하기 위해 주어진다. 그대의 형제의 거룩함보다 그대의 형제의 육체를 보는 것이 더 쉽다고 믿는 그대여, 무엇이 이 판단을 만들어 냈는지 반드시 이해하라.

여기에 뚜렷이 들리는 특별함의 목소리가 있다. 그리스도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리며, 그대가 이룰 수 있는 목적과 그대가 할 수 없는 것을 그대에게 제시하는 목소리다. 이 판단은 그대가 그 판단을 동맹으로 삼아 하는 일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 판단은 그대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게 이 판단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오직 그의 아버지가 뜻하는 것만이 가능하며, 그가 볼 다른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그의 갈등 없음으로부터 그대의 평화가 나온다. 그리고 그의 목적으로부터 애쓰지 않는 성취와 쉼을 위한 수단이 나온다.

이 세상에 묶인 모든 이가, 진리이기를 바라는 자신의 특별함을 얼마나 쓰라리게 방어하는가! 그런 사람의 바람은 그에게 법이며, 그는 그 바람을 따른다. 그의 특별함이 요구하는 것 중 그가 거두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특별함이 필요로 하는 것 중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게 거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 특별함이 그에게 부르는 동안 그는 다른 그 어떤 음성도 듣지 못한다.

그런 사람의 특별함을 가장 작은 무시로부터, 가장 사소한 공격으로부터, 속삭이는 의심으로부터, 위협의 낌새로부터, 또는 가장 깊은 경외 말고 그 무엇으로부터든 지켜 내려면, 그 어떤 노력도 지나치지 않고, 그 어떤 대가도 과하지 않으며, 그 어떤 값도 너무 비싸지 않다. 이것이 그대의 아들이다. 그대가 그대의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만큼 그대에게 사랑받는 아들이다.

그러나 그 특별함은 그대에게 아들인 그대의 창조물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서 있다. 그대가 하나님의 아버지 됨을 하나님에게서 낚아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눌 수 있도록 그대에게 주어진 그 창조물들 말이다.

그대가 자신의 힘이 되도록 만든 이 아들은 대체 무엇인가? 그토록 많은 사랑이 아낌없이 쏟아지는 이 땅의 자식은 대체 무엇인가? 그대의 창조물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흉내는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을 품은 이가 그 창조물들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아들을 찾아낸 지금, 그 창조물들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홀로 빛나지 않는다. 그대의 형제 안에 있는 것은 여전히 모든 창조를, 창조된 모든 것과 창조하고 있는 모든 것을, 태어난 것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을, 여전히 미래에 있는 것과 겉보기에 지나가 버린 것을 모두 담고 있다. 그 형제 안에 있는 것은 변함이 없으며,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그대의 변함없음이 알아보아진다. 그대 안의 거룩함은 그에게 속한다.

그리고 그 거룩함을 그의 안에서 봄으로써, 그 거룩함은 그대에게 되돌아온다. 그대가 특별함에 바친 그 모든 찬사는 그에게 속하며, 그렇게 그대에게 되돌아온다. 그 모든 사랑과 돌봄, 그 굳센 보호, 밤낮으로의 생각, 그 깊은 관심, 이것이 그대라는 그 강력한 확신, 그 모든 것이 그에게 속한다. 그대가 특별함에 준 것 중 그의 몫이 아닌 것은 없다.

그리고 그의 몫인 것 중 그대의 몫이 아닌 것도 없다. 특별함이 대신 그대를 요구하는 동안 그대가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있겠는가? 그의 거룩함 안에서 그대가 어떻게 그 가치를 알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대의 특별함을 진리로 만들려 하지 말라. 그것이 진리라면 그대는 참으로 길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대의 형제의 거룩함이 진리이기에 그대가 그의 거룩함을 볼 수 있도록 그대에게 주어졌음에 감사하라. 그리고 그대의 형제 안에서 참인 것은 그대 안에서도 그만큼 참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 그대가 마음을 지킬 수 있는가? 육체는, 그렇다, 조금은 지킬 수 있다. 시간으로부터는 아니지만, 일시적으로는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대가 지킨다고 생각하는 것의 많은 부분을, 그대는 해친다.

그대는 무엇을 위해 육체를 지키려는가? 그 선택 안에 육체의 건강과 해로움이 둘 다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육체를 부패와 죽음에 단죄하는 것이다. 육체를 과시를 위해, 다른 물고기를 낚을 미끼로, 그대의 특별함을 더 나은 방식으로 담아 둘 집으로 지키거나, 그대의 증오 주위에 사랑스러움의 틀을 짜 두려고 지킨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대가 그대의 형제의 육체에서 이 목적을 본다면, 그것이 바로 그대 자신에 대한 그대의 단죄다.

그러니 오히려 그대의 형제의 주위에 거룩함의 틀을 짜라. 진리가 그의 위에 빛나고, 그대에게 부패로부터의 안전을 줄 수 있도록 말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창조한 것을 안전하게 지킨다. 그대는 그를, 그대가 만든 그 거짓된 관념들로 건드릴 수 없다. 그는 그대가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의 어리석은 공상이 그대를 겁먹게 하지 못하게 하라. 불멸하는 것은 공격받을 수 없으며, 다만 일시적일 뿐인 것은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 일시적인 것 안에서 그대가 보는 목적만이 의미를 지니며, 그 목적이 참이라면 그것의 안전은 확고히 놓여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에는 아무 목적도 없으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수단이다.

진리를 위한 수단으로 지각되는 것은 무엇이든 진리의 거룩함을 나누며, 진리 자체만큼이나 안전하게 빛 안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일시적인 것이 사라져도 그 빛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의 거룩한 목적이 그것에게 불멸성을 주어, 천국에 또 하나의 빛을 두었다. 그곳에서 그대의 창조물들은 그대로부터의 선물을, 그대가 그것들을 잊지 않았다는 표지를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