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리스도와 동일시
앞서 나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수단이나 그것에 이르는 방법을 고려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대가 그대의 형제를 죄 없는 이로 볼 수 있기를 바라는지는 고려하라. 그것도 잘 고려하라.
특별함에게 그 답은 "아니다"일 수밖에 없다. 죄 없는 형제는 그것의 적이며, 죄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의 벗이 될 것이다. 그대의 형제의 죄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진리가 부인하는 의미를 특별함에 부여할 것이다.
실재하는 모든 것은 그의 죄 없음을 선포한다. 거짓인 모든 것은 그의 죄가 실재한다고 선포한다. 그가 죄인이라면, 그대의 실재는 실재가 아니라, 순식간에 지속되다 먼지로 부스러지는 특별함의 꿈에 불과한 것이 된다.
하나님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빼앗기고 그대가 구원 너머에 남아 있게 되는 이 무의미한 꿈을 방어하지 말라. 실재 안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이 흔들리는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평화가 그대와 온전히 함께 있지 않을 때, 그리고 그대가 그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 겪을 때, 그대는 그대의 형제 안에서 어떤 죄를 보았고, 거기 있다고 생각한 것에 기뻐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그대의 특별함은 안전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그대는 자신의 구원자로 지명한 것을 구했고, 대신 하나님이 그대에게 준 그 형제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렇게 그대는 그 형제와 하나로 묶여 있다. 그대들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특별함은 그의 "적"이며, 그대의 적이기도 하다.
그대 안의 그리스도는 매우 고요하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안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자신이 보는 것에 기뻐한다. 그 보는 것이 자신과,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하나임을 알기 때문이다.
특별함도 자신이 보는 것에서 기쁨을 얻는다. 비록 그것이 참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대가 추구하는 것은 그대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기쁨의 근원이다. 그대가 바라는 것은 그대에게 참이다.
그리고 그대가 무언가를 바란다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반드시 믿게 된다. 바람은 뜻이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실재를 만든다. 바람의 힘은 사랑이 스스로를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강력하게 환영을 떠받친다. 다만 하나는 미혹하고, 다른 하나는 치유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형태가 아무리 숨겨지거나 위장되어 있든, 그것이 아무리 사랑스러워 보이든, 그것이 아무리 섬세하게 평화의 희망과 고통으로부터의 벗어남을 내주는 것처럼 보이든, 그대가 자신에 대한 단죄를 겪지 않는 특별함의 꿈은 없다.
꿈 안에서는 결과와 원인이 뒤바뀐다. 여기서 꿈을 만든 이는 자신이 만든 것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여기서 실 한 가닥을, 저기서 조각 하나를 집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부터 하나의 그림을 짜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 그림의 부분들은 서로 어울리지 않으며, 전체는 그 부분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려고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의 평화가 용서로부터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서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대 안의 그리스도는 오직 진리만을 바라보며, 용서가 필요할 그 어떤 단죄도 보지 않는다. 그는 죄를 보지 않기에 평화롭다.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하라. 그러면 그가 지니고 있으면서 그대가 지니지 못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는 그대의 눈이며, 그대의 귀이며, 그대의 손이며, 그대의 발이다. 그가 보는 광경과 그가 듣는 소리는 얼마나 부드러운가.
그의 형제의 손을 붙잡은 그의 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는 얼마나 사랑스럽게 그의 곁을 걸으며, 보이고 들릴 수 있는 것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을 소리가 없는 곳을 그에게 보여 주는가.
그러나 그대의 특별함이 그의 길을 이끌게 하면, 그대는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둘 다 위험 속을 걸을 것이다.
각자 몰두한 채, 보지 못하는 이들의 어두운 숲 속을 걸을 것이다. 그 숲은 죄라는 반딧불이에서 순간 반짝였다가 꺼져 버리는 흔들리는 작은 빛 말고는 아무것도 밝혀 주지 않는다. 그 숲을 걸어, 서로를 이름 없는 절벽으로 이끌어 그 너머로 밀어 떨어뜨릴 것이다.
특별함이 죽이는 것 말고 무엇을 기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죽음의 광경 말고 무엇을 추구하겠는가? 그것이 파괴 말고 어디로 이끌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그대의 형제를 먼저 바라보았다거나, 그대를 미워하기 전에 그를 미워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특별함의 눈이 그의 안에서 보고 바라보기를 사랑하는 그 죄를, 특별함은 그대 안에서 이미 보았고, 여전히 기쁨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부패와 광기를 바라보며, 살이 이미 뼈에서 떨어져 나가고 눈 대신 보지 못하는 구멍이 있는 이 부스러져 가는 것이 그대 자신을 닮았다고 믿는 것이 기쁨인가?
그대에게 볼 눈이 없고, 들을 귀가 없으며, 붙잡을 손도 이끌 발도 없음을 기뻐하라. 그대에게 그것들이 필요한 동안,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대에게 자신의 것을 빌려줄 수 있음을 기뻐하라. 그리스도의 눈과 귀와 손과 발도 그대의 것만큼이나 환영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른 목적을 섬기기에, 그것들의 목적이 지닌 힘이 그것들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그것들이 보고 듣고 붙잡고 이끄는 것에는 빛이 주어진다. 그대가 이끌어졌던 대로 이끌 수 있도록 말이다.
그대 안의 그리스도는 매우 고요하다. 그리스도는 그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며, 온 길 내내 부드러움과 축복 속에서 그대를 그곳으로 이끈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대가 자신 안에서 보았다고 생각한 모든 두려움을 대신한다.
그리스도의 거룩함은 그대가 손을 붙잡고 있는, 그리고 그대가 그에게로 이끌어 가는 그 안에서 그대에게 자기 자신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대가 보는 것은 그대 자신을 닮았다. 그리스도 말고 무엇이 보고 듣고 사랑하고 따라가 집으로 삼을 것으로 있겠는가?
그리스도는 먼저 그대를 바라보았지만, 그대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바라보고 사랑하는 살아 있는 것 하나하나 안에서 그대의 완성을 찾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 완성을 찾고 있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그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내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그는 고요하다. 사랑이 이제 그대 안에 있으며, 그대의 손 안에서 그대의 형제의 손을 붙잡고 있는 그 같은 손에 의해 그대 안에 안전하게 붙들려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손은 자기 자신 안에서 자신의 모든 형제를 붙들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보지 못하는 눈에 인식(vision)을 주고, 그들의 귀가 더 이상 전쟁과 죽음의 소리를 듣지 않도록 그들에게 천국을 노래해 준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밀며 그들을 통해 손을 뻗는다. 모든 이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축복하고 그것들의 거룩함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 광경들이 그대의 것임을, 그와 함께 바라보고 그의 기쁨을 나눌 그대의 것임을 기뻐한다. 그의 완전한 특별함 없음을 그는 그대에게 내준다. 그대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음에서 구하고, 그것들 하나하나로부터 그대의 용서가 그대의 참나(Self)에게 내주는 그 생명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스도의 광경이 볼 것의 전부다. 그리스도의 노래가 들을 것의 전부다. 그리스도의 손이 붙잡을 것의 전부다. 그와 함께 걷는 것 말고 다른 여정은 없다.
특별함에 만족하며 사랑과의 전쟁 속에서 구원을 구하려는 그대여, 이것을 생각해 보라. 천국의 거룩한 주가 그대 자신의 완성을 내주려고 몸소 그대에게 내려왔다. 그리스도의 것은 그대의 것이다. 그대의 완성 안에 그 자신의 완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 없이 있기를 뜻하지 않은 그는 그대가 형제 없이 있기를 결코 뜻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그대만큼 완전하지 않고, 거룩함에 있어 그대가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만큼 그를 닮지 않은 형제를 그대에게 주었겠는가?
갈등이 있기 전에는 의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의심은 그대 자신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에게는 의심이 없으며, 그의 고요함은 그의 확신으로부터 온다. 그대가 다음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는 자신의 확신을 그대의 모든 의심과 맞바꿀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그대와 하나이며, 이 하나됨은 끝이 없고 시간을 넘어서며, 그대의 손이 그의 손이기에 그대가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대 안에 있지만, 그대의 곁에서, 그리고 그대의 앞에서 걸으며, 자기 자신을 완전한 상태로 찾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그 길을 이끈다. 그리스도의 고요함이 그대의 확신이 된다. 그리고 확신이 왔을 때 의심이 어디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