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겉모습 너머의 그리스도
1) 기적의 증언
겉모습은 속이지만, 바뀔 수 있다. 실재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전혀 속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대가 겉모습 너머를 보지 못한다면 그대는 속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보는 모든 것은 변할 것이며, 그럼에도 그대는 전에 그 겉모습을 실재라고 생각했고, 지금 또다시 그 겉모습을 실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실재는 형태로 축소되어 변할 수 있게 된다. 실재는 변함이 없다. 바로 이 변함없음이 실재를 실재로 만들고, 모든 겉모습과 구별되게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기 위해 모든 형태를 초월해야만 한다. 그것은 변할 수 없다.
기적은 모든 겉모습이 다만 겉모습이기에 변할 수 있으며, 실재가 동반하는 변함없음을 지닐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수단이다. 기적은 겉모습들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겉모습으로부터의 구원을 증언한다.
그대의 형제 안에는 겉모습과 속임수 양쪽 모두를 넘어선 변함없음이 있다. 그 변함없음은 그대가 그 형제의 실재라고 지각하는, 계속 바뀌는 시각들에 가려져 있다. 그에 대한 행복한 꿈은 그의 완전한 건강, 모든 형태의 결핍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온갖 종류의 재난으로부터의 안전이라는 겉모습의 형태를 띤다.
기적은 그가 어떤 형태로도 상실이나 고통에 묶여 있지 않다는 증거다. 그 겉모습이 아주 쉽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겉모습이 결코 실재가 아니었으며, 그의 실재에서 나올 수 없었음을 보여 준다. 그의 실재는 변함이 없으며, 천국이나 땅 위의 그 무엇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모습은 변하기 때문에 실재가 아님이 드러난다.
2) 유혹이 세운 한계
유혹이란 환상을 실재로 만들려는 바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아무 실재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유혹은, 어떤 형태의 우상들은 강력한 매력이 있어서 그대가 실재이기를 원하지 않을 다른 우상들보다 저항하기 더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유혹이란 다름 아닌, 기적이 어떤 꿈들은 건드리지 말고 그 비실재성을 가린 채 그 꿈들에 실재를 대신 부여해 달라는 하나의 기도이다. 그리고 천국은 이 기도에 아무 응답도 주지 않으며, 그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겉모습을 치유할 기적도 그대에게 주어질 수 없다.
그대는 한계를 세워 두었다. 그대가 청한 것은 그대에게 주어지지만, 그것은 한계를 알지 못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그대가 스스로 자신을 한정한 것이다.
실재는 변함이 없다. 기적은 다만 그대가 실재와 그대의 자각 사이에 끼워 넣은 것이 실재하지 않으며, 아무 방해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변화의 희망 너머에 있는 어떤 겉모습들이 있어야만 한다는 믿음의 대가는, 기적이 그대에게서 한결같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대가 기적이 모든 꿈을 치유할 힘을 갖지 못하게 해 달라고 청했기 때문이다. 그대가 치유를 원할 때 그대가 가질 수 없는 기적이란 없다. 그러나 그대가 원하지 않는 한 그대에게 주어질 수 있는 기적도 없다.
무엇을 치유할지 그대가 고르면, 모든 기적을 주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자신의 선물을 베풀 자유를 얻지 못한 것이 된다. 그 아들이 유혹받을 때, 그는 실재를 부정한다. 그리고 그는 대신 선택한 것의 기꺼운 노예가 된다.
3) 그 안의 그리스도
실재가 변함없기에, 변하는 모든 것을 치유하여 그것들을 두려움 없는 행복한 형태로 보도록 그대에게 내어 줄 기적은 이미 거기에 있다. 그대의 형제를 두려움 없는 행복한 형태로 바라보는 것이 그대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어떤 면에서든 그 형제가 달랐으면 하고 바라는 동안은 아니다. 이는 다만 그대가 그가 치유되어 온전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안의 그리스도는 완전하다. 그대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가? 그렇다면 이것을 보는 것보다 그대가 더 좋아할 그에 대한 어떤 꿈도 없게 하라. 그리고 그대는 그 안의 그리스도가 그대에게 오도록 허락함으로써 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그대에게 나타났을 때, 그대는 자신이 그리스도와 같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가 그대의 형제 안에서도 그대 안에서도 변함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형제가 실제로 무엇인지를 대신할 어떤 겉모습도 붙들지 않기로 결정할 때, 그대는 이것을 보게 될 것이다. 꿈을 더 좋아하려는 어떤 유혹도 이것을 보는 일에 불확실함이 들어오게 하지 말라. 형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꿈으로 그대가 유혹받을 때 죄책감과 두려움에 빠지지 말라. 그러나 그 꿈에 그대가 그를 보는 시야 안에서 그의 변함없음을 대신할 힘을 주지 말라.
그대가 대신 기적을 청한다면, 어떤 거짓 겉모습이든 사라진다. 그대가 그를 다만 있는 그대로이기를 바란다면, 그는 어떤 고통에서든 자유롭다.
어찌하여 그대는 그 안의 그리스도를 보기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그대는 다만 그대가 보는 것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 형제가 치유됨에 따라 그대도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진다. 그의 겉모습이 그대에게는 곧 그대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