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뜻을 행함이 곧 자유
성령에게 맞서는 것이 곧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임을 그대는 이해하지 못하는가? 그는 오직 그대의 뜻만을 말해 줄 뿐이다. 그는 그대를 대신하여 말한다. 성령의 신성 안에는 오직 그대 자신의 신성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성령이 아는 모든 것은 오직 그대의 앎일 뿐이며, 그대가 그를 통해 그대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그대를 위해 간직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대에게 그대의 뜻을 행하라고 청한다. 그는 그대와 결합한다. 그는 홀로 자신의 나라를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천국 자체가 다만 그대의 뜻을 나타낼 뿐이며, 천국 안에서 창조된 모든 것은 그대를 위한 것이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있게 하려는 그대의 기쁜 동의 없이 창조된 생명의 불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품었던 모든 생각은 태어나기 위해 그대의 축복을 기다렸다.
하나님은 그대에게 적이 아니다. 그가 청하는 것은 다만 그대가 그를 '친구'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뿐이다. 그대의 뜻을 행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대의 뜻을 행하는 것이 곧 자유이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할 것은 그 밖에 아무것도 없다. 그대의 뜻을 행하지 않는 한 그대는 자유롭지 않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그가 스스로 선택한 것 없이 남겨 두겠는가? 그는 다만 자신의 완전한 응답을 그대에게 주었을 때 그대가 결코 자신의 뜻을 잃지 않도록 보장했을 뿐이다. 이제 그 응답에 귀 기울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하고 그대의 뜻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 원하지 않는 것의 포로가 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대가 자유롭기를 뜻하며 그대와 결합한다. 그리고 그를 거스르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내려 스스로 묶이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대가 사랑 대신 미워하기로 선택한 그 적을 다시 한번 바라보라. 이렇게 하여 미움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이렇게 하여 두려움의 지배가 그 안에 세워졌다. 이제 하나님이 그대에게 말하는 것을 들으라 — 하나님의 음성이자 그대의 음성이기도 한 성령을 통해서. 그 음성은 그대의 뜻이 미워하는 것이 아니며, 두려움의 포로, 죽음의 노예, 작은 삶을 사는 작은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님을 일깨워 준다.
그대의 뜻은 무한하다. 그대의 뜻이 묶이는 것은 그대의 뜻이 아니다. 그대 안에 있는 것은 창조 전체의 탄생에서 하나님 자신과 결합했다. 그대를 창조하고 그대의 뜻을 통해 모든 것을 창조한 그를 기억하라. 창조된 것 가운데 그대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대의 뜻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천국의 어떤 빛도 그대를 위해서가 아니면 비치지 않는다. 그 빛은 그대의 뜻으로 천국에 놓였기 때문이다.
자유로워지려고 그대의 축복만을 기다리는 이 세상에서 그대가 분노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대가 포로라면, 하나님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는 자에게 행해지는 일은 곧 하나님 자신에게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대를 자신과 함께 우주의 공동 창조자로 만든 하나님이 그대를 묶고자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는 다만 그대의 뜻을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무한하게 지키고자 할 뿐이다.
이 세상은 그대가 스스로 자유로움을 인식했을 때 그대가 내어 줄 자유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대에게 그대의 뜻을 준 하나님을 용서하기 전까지는 그대는 이 세상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이 자유를 얻는 것은 바로 그대의 뜻 때문이다. 또한 그대가 그 거룩한 뜻을 함께 나누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서는 그대는 자유로울 수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구원받기를 청하려고 그대에게 돌아선다. 이 세상이 치유되는 것은 바로 그대 자신의 구원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이 땅을 걷는 모든 사람은 그대의 결정에 의지한다. 그 사람이 그대의 뜻을 나누듯 그대의 자유도 나누기에, 그 결정으로 그 사람은 죽음이 자신에게 아무런 힘도 없음을 배운다. 그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그대의 뜻이며, 그대가 그 사람과 함께 결정했기에 그 사람은 치유된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용서받는다. 그대가 형제를 친구로 바라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