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무것도 아닌 우상

우상이란 무엇인가? 그대는 안다고 생각하는가? 우상은 우상으로 인식되지 않으며, 그것들이 실제로 무엇인지 결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이 그것들이 가진 유일한 힘이다. 그것들의 목적은 불분명하다. 우상이 두려움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왜 만들어졌는지 그대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상은 형제의 참모습보다 그대가 더 소중히 여기게 될 그의 이미지다. 우상은 형제가 대체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마찬가지다. 그리고 결코 지각되거나 인식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점, 곧 우상이 형제를 대신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육체든, 사물이든, 장소든, 상황이든, 정황이든, 소유하거나 원하는 대상이든, 요구하거나 획득한 권리든, 다 마찬가지다. 그것들의 형태에 속지 말라. 우상은 다만 그대의 실재를 대신하는 대체물일 뿐이다.

그대는 어떤 식으로든 우상들이 그대의 작은 자아를 완성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위험하게 지각되는 세상, 곧 그대의 확신과 마음의 평화를 향해 세력들이 몰려드는 세상에서 안전을 얻기 위해서다. 그것들은 그대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 주고, 그대에게 없는 가치를 더해 줄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우상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하찮음과 상실의 노예로 삼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자는 반드시 자신의 작은 자아 너머에서 고개를 들 힘을, 세상이 비추는 온갖 비참함에서 벗어나 홀로 설 힘을 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면에서 확신과 고요한 평온을 찾지 않은 데 대한 대가다. 이 확신과 평온은 그대를 세상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고요함과 평화 속에서 홀로 설 수 있게 해 준다.

우상은 그릇된 인상이며, 그릇된 믿음이다. 우상은 그리스도와 그대가 보는 것 사이에 틈을 이루는 일종의 적그리스도다.

우상은 하나의 소망이다. 이 소망은 실체를 부여받고 형태를 갖추어 실재하는 것처럼 지각되며, 마음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상은 여전히 하나의 생각이며, 자신의 근원인 마음을 떠날 수 없다.

우상의 형태도 자신이 나타내는 관념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적그리스도의 모든 형태는 그리스도에게 맞선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모든 형태는 그리스도의 얼굴 앞에서, 마치 그대를 그로부터 차단해 어둠 속에 홀로 있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두운 베일처럼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빛은 거기에 있다.

구름은 태양을 꺼뜨리지 않는다. 베일도 자신이 갈라놓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없애 버릴 수 없으며, 빛 자체를 조금도 어둡게 할 수 없다.

이 우상들의 세상은 그리스도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베일이다. 이 세상의 목적이 그대의 형제를 그대로부터 분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어둡고 두려운 것이지만, 풀 한 포기조차 살아 있는 것에서 죽음의 표시로 바꿀 힘이 없는 하나의 생각이다. 우상의 형태는 어디에도 없다.

우상의 근원이 하나님이 머물지 않는 그대의 마음 안에 머물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있는 것이 배제되고 떼어져 있는 이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떤 손이 하나님의 길을 막으려 들어 올려질 수 있는가? 어떤 목소리가 그가 들어오지 못하게 요구할 수 있는가?

'모든 것보다 더한 것'은 그대를 떨게 하고 두려움에 움츠러들게 할 대상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적은 어디에도 없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결코 실재가 될 수 있는 어떤 형태도 취할 수 없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우상은 살아나는 것처럼 보이기 전에 먼저 믿어져야 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위해 힘을 부여받아야 한다. 우상의 생명과 힘은 그것을 믿는 자의 선물이며, 기적은 바로 이 선물을, 천국과 영원한 평화의 선물에 걸맞은 생명과 힘을 지닌 것에게 되돌려 준다.

기적은 진리를, 즉 그 베일이 꺼뜨리지 못한 빛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베일을 걷어 올려, 진리가 있는 그대로 아무런 방해 없이 빛나게 할 뿐이다.

진리는 자기 자신이기 위해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존재한다.

우상은 믿음에 의해 세워지며, 그 믿음이 거두어지면 우상은 '죽는다.' 이것이 적그리스도다. 적그리스도는 전능함을 넘어서는 힘이, 무한함 너머의 장소가, 영원을 초월하는 시간이 있다는 기이한 관념이다.

여기, 우상들의 세상은 이런 관념 위에 세워졌다. 곧 이 힘과 장소와 시간이 형태를 부여받아,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세상을 빚어낸다는 관념이다. 여기서 죽지 않는 것이 죽으러 오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상실을 겪으러 오며, 시간을 초월한 것이 시간의 노예가 된다.

여기서 변함없는 것이 변하고, 모든 살아 있는 것에게 영원히 주어지는 하나님의 평화가 혼돈에게 자리를 내준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만큼이나 완전하고 죄 없고 사랑에 찬 하나님의 아들이 잠시 미워하고, 고통을 겪고, 마침내 죽으러 온다.

우상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무한한 것 안에 틈이 있을 수 있는가, 시간이 영원을 방해할 수 있는 장소가 있을 수 있는가? 온통 빛인 곳에 세워진 어둠의 장소, 끝없는 것으로부터 떼어져 나간 음울한 골방은 있을 자리가 없다.

우상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영원히 세운 그곳 너머에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 외에는 어떤 것도 존재할 자리를 남기지 않았다. 하나님이 모든 것이고 모든 곳인 반면, 우상은 반드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곳도 아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