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신 밖에서 구하지 말라
1) 우상 찾기는 죽음
자신 밖에서 구하지 말라. 그 구함은 실패할 것이고, 우상이 무너질 때마다 그대는 울게 될 것이다. 천국이 없는 곳에서는 천국을 찾을 수 없으며, 그곳 말고는 평화도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부를 때 그대가 숭배하는 우상은 어느 것도 그를 대신해 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대신 쓸 수 있는 다른 답은 없으며, 그의 답이 가져오는 행복을 찾을 다른 방법도 없다.
자신 밖에서 구하지 말라. 그대의 모든 고통은 단순히,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고 고집하는 곳에서 그것을 헛되이 찾는 데서 온다.
만약 그 원하는 것이 거기에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대는 옳은 것과 행복한 것 중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행복이 어디에 머무는지 들었으니 기뻐하고, 더는 다른 곳에서 찾지 말라. 그대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것은 그대에게 주어졌으며, 그것을 자신 밖에서 찾지 않는 것도 주어졌다. 이곳에 오는 자마다 여전히 어떤 희망을, 남아 있는 어떤 환영을, 자신 밖에 자신에게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줄 무언가가 있다는 어떤 꿈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그 사람 안에 있다면 이런 꿈은 사실일 수 없다. 그러므로 이곳에 옴으로써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한 진리를 부인하고, 마치 그 전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나머지 전체가 없는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듯이, 모든 것보다 더한 무언가를 구한다. 이것이 그 사람이 육체에 부여하는 목적이다.
곧 육체가 그 사람에게 없는 것을 구하고, 그 사람을 완전하게 만들어 줄 것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 목적 없이 헤매며,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이라고 믿는다.
남아 있는 그 환영은 그 사람을 재촉해 천 개의 우상을 찾아 나서게 하고, 그것들 너머로 다시 천 개를 더 찾게 만든다. 그리고 각각의 우상은 그를 실망시킬 것이다.
다만 하나만은 예외다. 그 사람은 죽을 것이며, 자신이 찾는 그 우상이 다름 아닌 자신의 죽음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우상의 형태는 자신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면의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자신이 그를 이겼음을 입증하려 한다.
이것이 모든 우상이 지닌 목적이며, 우상에게 부여된 역할이고,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역할이다. 그대가 육체의 향상을 주된 수혜자로 내세우는 목표에 이르려 할 때마다, 그대는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결핍을 겪을 수 있다고 믿고, 결핍이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희생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부족해지고 상실을 겪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포기로 인해 생명이 거부된다. 자신 밖에서 구하지 말라.
그 찾음이 뜻하는 바는 이렇다. 그대는 내면에서 온전하지 않으며 자신의 황폐함을 바라보기를 두려워하지만, 대신 자신이 무엇인지를 자신 밖에서 찾기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우상들은 생명이 없기에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생명이 없는 것은 죽음의 표시다.
그대는 죽기 위해 왔으니, 그대가 찾는 죽음의 표시들을 지각하는 것 말고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어떤 슬픔도 어떤 고통도, 우상이 발견되었다는 메시지 외에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는다. 그 우상이 나타내는 것은 생명의 흉내다. 이 흉내는 생명 없음 속에서 참으로 죽음이지만,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져 살아 있는 형태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우상들 각각은 실패하고 무너지고 썩어 없어질 수밖에 없다. 죽음의 형태가 생명일 수 없고, 희생된 것이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우상은 그대 안의 진리가 그대에게 알려지지 못하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또한 우상들은 그대가 완전하고 행복해지려면 자신 밖에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그 꿈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평화를 바라며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하나님은 그대 안에 머물고, 그대의 완전함은 하나님 안에 있다. 어떤 우상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우상을 바라보지 말라. 자신 밖에서 구하지 말라.
2) 그대가 선택하는 꿈
과거가 이 세상에 부여한 그 목적을 잊자. 그렇지 않으면 미래도 과거와 같을 것이다. 미래는 다만 우울한 꿈들의 연속일 뿐이며, 그 안에서 모든 우상이 하나씩 그대를 실망시키고, 그대는 어디에서나 죽음과 실망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바꾸고, 끝없는 절망의 순환처럼 보였던 것 안에 희망과 해방의 길을 열기 위해, 그대는 다만 자신이 이 세상의 목적을 알지 못한다고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대는 이 세상에 없는 목표를 부여하고, 그렇게 이 세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그대가 결정한다.
그대는 이 세상 안에서 우상들의 자리를 보려 한다. 그 우상들은 자신 밖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그대가 무엇인지를 둘로 쪼갬으로써 그대 내면에 있는 것을 완전하게 만들 힘을 지닌 것들이다. 그대는 자신의 꿈들을 선택한다.
그대가 꿈들을 선택하는 것은 그 꿈들이 그대가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꿈들은 마치 그대에게 주어진 것처럼 지각된다. 그대의 우상들은 그대가 그것들에게 하기를 바라는 것을 하고, 그대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그 힘을 지닌다.
그리고 그대는 꿈속에서 우상들을 헛되이 뒤쫓는다. 그대가 그것들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든 마음 말고 어디에 꿈이 있겠는가? 그리고 꿈이 자신 밖으로 투사하는 그림을 실재로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겠는가?
3) 우상의 끝을 앞당김
시간을 아끼라, 나의 형제여. 시간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배우라.
그리고 우상을 보는 탓에 슬프고 병들게 된 세상 안에서 우상의 끝을 앞당기라. 그대의 거룩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제단이며, 그가 있는 곳에는 어떤 우상도 머물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다만 우상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일 뿐이다. 이 두려움은 그대의 실재를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러나 그대는 자신의 실재를 하나의 우상으로 만들었고, 그 우상을 진리의 빛으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온 세상이 그 우상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렇게 구원은 생명을 위협하고 죽음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구원은 죽음이 없으며 오직 생명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죽음을 희생해도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상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그가 그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그대에게 일깨우게 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자신에 대한 우상들에게 바치는 깊은 절망의 노래에 묻히게 하려 하지 말라. 그대의 희망을 아버지 밖에서 구하지 말라.
행복의 희망은 절망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