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시간을 끝내는 용서

1) 용서가 곧 평화

용서하는 꿈들은 자신 밖의 세상을 꿈꾸는 것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꿈 너머, 영원한 생명의 평화로 이끄는 수단이다.

그대는 형제를 용서할 마음이 얼마나 있는가? 그대는 끝없는 다툼과 비참함과 고통 대신 평화를 얼마나 바라는가? 이 질문들은 다른 형태로 표현된 같은 질문이다.

용서가 그대의 평화다. 용서 안에 분리의 끝이 있고, 위험과 파괴, 죄와 죽음, 광기와 살인, 슬픔과 상실의 꿈의 끝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원이 요구하는 '희생'이며, 구원은 이것 대신 기꺼이 평화를 준다.

2) 변할 수 없는 아들

죽겠다고 맹세하지 말라,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여! 그대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생명의 아들은 죽임을 당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만큼이나 불멸이다.

그의 참모습은 바뀔 수 없다. 그는 온 우주에서 반드시 하나여야 하는 유일한 것이다.

영원해 보이는 모든 것에는 끝이 있을 것이다. 별들은 사라질 것이고, 밤과 낮도 더는 없을 것이다. 오고 가는 모든 것, 곧 조수와 계절과 사람들의 삶,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변하고 피고 지는 모든 것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끝을 정한 곳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들이 그를 무엇으로 만들었든 결코 변할 수 없다.

그는 예전의 그였고 지금의 그인 그대로 있을 것이다. 시간이 그의 운명을 정한 것도 아니고, 그의 태어남과 죽음의 때를 정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용서는 그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용서를 기다린다. 용서로 인해 시간에 속한 것들이 쓸모가 없어져 사라질 수 있도록 말이다.

자신의 목적을 넘어 살아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것이 죽도록 구상되었다면, 그것이 이 목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반드시 죽어야 한다.

변화는 이곳에서 축복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곳은 목적이 아무리 변함없어 보인다 해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대를 위해 정한 목적과 다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변함없고 영원한 것으로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자신에게 없는 목적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는 마음을 바꾸어 다른 목적을 보는 그 힘을 없앨 수는 없다. 변화는 하나님이, 그대가 영원하게 만들고자 하는 모든 것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니, 오직 천국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대는 죽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대는 변할 수 없다. 하나님이 그대의 역할을 고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 밖의 모든 목표는 시간을 보존하기 위해 시간과 변화 안에 정해져 있으나, 오직 하나만은 예외다. 용서는 시간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시간이 쓸모없어질 때 시간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목적이 끝나면, 시간은 사라진다. 그리고 시간이 한때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 자리에는 이제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온전한 자각 속에 세운 그 역할이 회복되어 있다.

시간은 그 역할의 성취에도, 그 변함없음에도 어떤 끝을 정할 수 없다. 죽음은 없다.

죽음이 없는 까닭은 살아 있는 것들이 자신의 창조주가 준 역할을 나누기 때문이다. 생명의 역할이 죽는 것일 수는 없다. 생명의 역할은 반드시 생명의 확장이어야 하며, 생명이 끝없이 영원토록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

3) 용서가 목적인 세상

이 세상이 그대의 발을 묶고 손을 결박하고 그대의 육체를 죽이는 것은, 오직 그대가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때뿐이다. 비록 이 세상이 죽음의 꿈이었다 해도, 그대는 이 세상이 그대에게 그런 뜻을 지니도록 내버려 둘 필요가 없다.

그 뜻을 바꾸라. 그러면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함께 바뀔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그대가 그것을 무엇을 위한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정의되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아들의 용서인 세상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두려움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축복과 행복으로 얼마나 가득한가! 그런 행복한 곳에서 잠시 머무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리고 그런 세상 안에서는, 무시간성이 조용히 와서 시간의 자리를 대신할 때까지 잠시뿐이라는 것을 잊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