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대 안에 있는 영원
그대 안에는 이 세상 전체가 잊힌 자리가 있으니, 그곳에는 죄와 환영에 대한 어떤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 그대 안에는 시간이 지나쳐 간 자리가 있어, 그곳에서는 영원의 메아리가 들린다. 그대 안에는 너무나 고요하여 아버지와 아들을 기쁘게 하려고 솟아오르는 천국을 향한 찬가 외에는 어떤 소리도 없는 안식처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머무는 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기억된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며 평화다.
아버지와 아들의 거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의 정체성이 아버지와 아들 안에 머물러 있으니,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곳에 그대도 영원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국의 변함없음이 그대 안에 있으니, 너무나 깊이 있어서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눈에 띄지 않고 보이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갈 뿐이다. 끝없는 평화의 고요한 무한함이 그 부드러운 품 안에서 그대를 온화하게 감싼다. 그 평화는 강하고 고요하며 창조주의 위엄 안에서 평온하니, 그 무엇도 그 안의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을 침범할 수 없다.
여기,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리며 그가 깨어나 기뻐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그대에게 성령이 주는 역할이 있다. 그 아들은 그대의 일부이고 그대는 그의 일부다.
이는 그가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이지, 그대가 그에게서 볼 수도 있는 어떤 목적 때문이 아니다. 그대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안에 머무는 변함없고 영원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니, 그대의 정체성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 안의 평화는 오직 그 아들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대가 그에게 주는 사랑의 생각 하나하나가 그대를 영원한 평화와 끝없는 기쁨으로의 깨어남에 더 가까이 데려간다.
하나님의 이 거룩한 아들은 그대와 같다. 그는 그대를 향한 그의 아버지의 사랑을 비추는 거울이며, 그가 그 사랑으로 창조되었고 그대 안에 머물듯 그 안에도 여전히 머무는 그 사랑을 부드럽게 일깨워 주는 자다. 매우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그리고 그 음성이 그대에게 그의 역할이 무엇인지 말해 주게 하라. 그 아들은 그대가 온전해질 수 있도록 창조되었으니, 오직 완전한 것만이 그대를 창조한 하나님의 완전함의 일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대에게 요구하는 선물은 오직 그대가 모든 창조물 안에서 그대를 향한 아버지의 선물의 빛나는 영광을 보는 것뿐이다. 그의 아들, 그의 완전한 선물을 바라보라.
그 아들 안에서 그의 아버지가 영원히 빛나고, 그에게 모든 창조물이 그 자신의 것으로 주어져 있다. 그가 모든 창조물을 가졌기에 그것이 그대에게 주어졌으니, 그 아들 안에 그것이 놓여 있는 곳에서 그대의 평화를 보라.
그대를 둘러싼 고요함이 그 아들 안에 머물며, 이 고요함으로부터 그대의 손이 결백함 속에서 맞잡히는 행복한 꿈들이 나온다. 이 손들은 고통의 꿈속에서 움켜쥐는 손이 아니다.
그 손들은 칼을 쥐고 있지 않으니, 세상의 온갖 헛된 환영을 붙잡던 것을 놓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어 있기에 그것들은 대신 완전함이 놓여 있는 형제의 손을 받아들인다.
용서 너머에 있는 그 영광스러운 목표를 그대가 안다면, 그대는 그 위에 악의 손길이 아무리 가볍게 스친 것처럼 보이더라도 어떤 생각도 붙들고 있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지 않은 것을 마음속에 붙들고 있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 그대는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손을 이끌어 축복하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할 수 있는 마음이다.
그대는 아버지가 그의 집으로 창조한 그 아들에게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자신에게 걸맞은 존재로 여긴다면, 그대는 미움의 손으로 그를 공격하겠는가?
누가 천국 자체에 피 묻은 손을 얹고서 그 평화를 찾기를 바라겠는가? 그대의 형제는 자신이 죽음의 손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를 믿지 말라. 대신, 그대의 손을 그에게 내밀기만 해도 그를 풀어 줄 수 있는 그대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를 배우라.
그대에게 하나의 꿈이 주어졌으니, 그 안에서 그 형제는 미움에 찬 그대의 적이 아니라 그대의 구원자다.
그대에게 하나의 꿈이 주어졌으니, 그 안에서 그대는 그의 모든 죽음의 꿈에 대해 그를 용서했다. 미움의 사악하고 분리된 꿈들을 꾸는 대신 그와 함께 나누는 희망의 꿈이다.
어째서 이 꿈을 나누는 것이 그토록 어려워 보이는가? 성령이 그 꿈에 역할을 주지 않는 한, 꿈은 미움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죽음의 종노릇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꿈이 취하는 각각의 형태는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요구한다. 그리고 죽음의 주인을 섬기는 이들은 분리된 세상에서 예배하러 와, 저마다 작은 창과 녹슨 칼을 들고 죽겠다는 자신의 오랜 약속을 지킨다.
이것이 바로 두려움의 핵심이며, 이 두려움은 꿈에 다른 역할이 있다고 보는 성령이 쓰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모든 꿈 속에 있다. 꿈이 함께 나눠질 때, 공격과 분리의 역할을 잃는다.
비록 바로 공격과 분리라는 그 목적을 위해 모든 꿈이 만들어졌다 해도 말이다. 그러나 꿈의 세계 안에는 변화와 개선의 희망 없이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여기는 변함없음이 발견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러함을 참으로 기뻐하자.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을 구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