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명의 표지가 된 몸
이 세상의 동기가 되는 것은 생명에 대한 뜻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소망이다. 그것의 유일한 목적은 죄책감을 실재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나 느낌도 이것 말고 다른 동기를 지니지 않는다.
이 생각과 행동과 느낌들은 믿어지도록 불려 나온 증인들이며, 자신들이 대변하고 대표하는 체계에 확신을 실어 준다. 그리고 각각은 여러 목소리를 지니며, 그대의 형제와 그대 자신에게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한다.
그러나 그대의 형제와 그대 자신, 둘 모두에게 그 메시지는 같다. 몸을 치장하는 것은 죄책감의 증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보여 주려 한다.
몸에 대한 걱정은 그대의 삶이 얼마나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지, 그대가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쉽게 파괴되는지를 보여 준다. 우울은 죽음을 말하고, 허영은 그 무엇에 대해서도 참된 관심이 없음을 말한다.
병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 무의미함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인이다. 병은 나머지 모두를 뒷받침하며 죄가 정당화되는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준다. 병든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부자연스러운 욕망과 이상한 필요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다.
그토록 빨리 끊길 삶을 살면서 지나가는 기쁨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을 자가 누구겠는가? 오래갈 만한 즐거움이 무엇이 있겠는가? 연약한 이들은 훔쳐낸 쾌락의 부스러기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짧은 삶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믿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
그들이 그 혜택을 누리든 누리지 않든, 그들의 죽음이 그 모든 쾌락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삶이 어떤 식으로 쓰이든, 삶의 끝은 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빠르게 지나가는 덧없는 것에서 쾌락을 취하라.
이 쾌락들은 죄가 아니라, 죄와 죽음이 실재하며 순수함과 죄가 무덤의 끝에서 똑같이 끝난다는 이상한 신념에 대한 증인들이다. 이 신념이 참이라면, 지나가는 기쁨을 계속 추구하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작은 쾌락을 소중히 여기며 만족스럽게 남아 있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 안에서 몸은 중립적이고 그 자체에 내재된 목표가 없는 것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비난의 상징, 그 결과가 여전히 눈에 보여 그 원인이 결코 부정될 수 없게 만드는 죄책감의 표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대의 기능은 그대의 형제에게 죄가 아무 원인도 지닐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대의 기능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증거의 그림으로 그대 자신을 보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이겠는가!
성령의 그림은 몸을 몸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바꾸지 않는다. 이 그림은 다만 몸에서 비난과 책망의 모든 표지를 거두어 낼 뿐이다. 목적 없이 그려지면, 몸은 병들지도 건강하지도,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몸이 어떤 식으로든 심판될 수 있는 근거는 제공되지 않는다. 몸에는 생명이 없지만,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나 두려움의 그 어떤 경험과도 떨어져 서 있다.
이제 몸은 아직 아무것도 증언하지 않는다. 몸의 목적은 열려 있고, 마음은 몸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이제 그것은 정죄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게 될 그 기능을 이룰 수 있도록 목적이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죄의 목표가 거두어진 이 텅 빈 공간 안으로, 천국은 자유로이 기억될 수 있다. 여기에 천국의 평화가 올 수 있고, 완전한 치유가 죽음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몸은 생명의 표지, 해방의 약속, 죽음의 악취 나는 냄새를 들이마시는 데 지친 이들에게 불멸의 숨결이 될 수 있다.
몸이 치유를 자신의 목적으로 삼게 하라. 그러면 그것은 자신이 받은 메시지를 내보내고, 자신의 건강과 사랑스러움으로 자신이 대표하는 진리와 가치를 선포할 것이다. 그것이 끝없는, 영원히 공격받지 않는 생명을 대표할 힘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대의 형제에게 그 메시지가 이렇게 되게 하라, "형제여, 나를 보라, 그대의 손에서 나는 산다." 이것이 이루어지게 하는 간단한 방법은 다만, 몸이 그 목적을 키우는 것이 죄책감이라고 그대가 확신했던 과거로부터 아무 목적도 갖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과거의 그 목적은 그대의 망가진 그림이 자신이 대표하는 것의 지속적인 표지라고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몸에 다른 시각, 다른 목적이 주어질 수 있는 아무 공간도 남기지 않는다.
그대는 몸의 목적을 알지 못한다. 그대는 그저 그대의 기능을 자기 자신에게서 숨기기 위해 만든 어떤 것에 목적이라는 환영을 주었을 뿐이다.
목적 없는 이 몸은 성령이 준 그 기능을 숨길 수 없다. 그렇다면 몸의 목적과 그대의 기능이 마침내 화해하여 하나로 보이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