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든 환영은 하나
1) 복잡함 없는 진리
복잡함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는 것은 오직 하나뿐인데, 복잡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것일 수 있겠는가? 그는 하나의 창조, 하나의 실재, 하나의 진리, 오직 하나의 아들만을 안다. 하나 됨과 다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그에게 어떻게 복잡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결정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갈등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 하나이며 반대되는 것이 없다. 그런데 그 단순한 존재 안에 어떻게 다툼이 들어와 하나 됨이 있는 곳에 복잡함을 가져올 수 있겠는가?
진리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결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할 것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선택하는 일이 하나 됨을 향한 전진에서 필요한 단계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인 것은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자리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라는 이 크기는 이 과정의 범위를 넘어선다. 즉시 파악될 수 없는 그 무엇에도 우리가 머물 필요는 없다.
2) 실재 세계와 경계
이 세상과 천국 사이에는 생각의 경계지대가 있다. 경계지대는 어떤 장소가 아니며, 그대가 그곳에 이르는 때는 시간과 무관하다. 여기가 생각들이 함께 모이는 만남의 자리다. 이곳은 서로 다투는 가치들이 만나고 모든 환영이 진리 곁에 내려놓여 참이 아닌 것으로 판정되는 곳이다. 이 경계지대는 바로 천국의 문 너머에 있다.
여기서는 모든 생각이 순수하고 온전히 단순해진다. 여기서 죄는 부정되고, 그 대신 모든 것이 받아들여진다.
이 경계지대가 여정의 끝이다. 우리는 이곳을 실재 세계라고 불러 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실재 세계라는 말이 제한된 실재, 부분적 진리, 참으로 만들어진 우주의 한 조각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지식이 지각을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각은 함께 모이며, 오직 하나만이 하나 됨이 있는 그 문을 지나 계속 나아간다.
구원은 경계지대다. 그곳에서는 장소와 시간과 선택이 여전히 의미를 지니지만, 그것들이 일시적이고 제자리에 있지 않으며 모든 선택이 이미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3) 단순해진 선택
하나님의 아들이 믿는 것은 아무것도 파괴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에게 진리인 것은 그가 앞으로 할 마지막 비교, 가능한 마지막 평가, 이 세상에 대한 최종 판단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 판단은 환영에 대한 진리의 판단, 지각에 대한 지식의 판단이다 — "그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존재하지 않는다."
이 판단은 그대의 결정이 아니다. 다만 단순한 사실에 대한 단순한 진술일 뿐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단순한 사실이 없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가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선택을 하는 데 필수적인 단 하나는 바로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가르는 이 구별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두 세상 사이의 차이가 있다.
이 세상에서는 선택이 불가능해진다. 실재 세계에서는 선택이 단순해진다.
구원은 천국에 바로 못 미쳐 멈춘다. 오직 지각만이 구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천국은 결코 잃어진 적이 없으니 구원받을 수도 없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소망과 지옥에 대한 소망이 같지 않음을 알아보지 않는 한, 누가 그 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겠는가? 이 차이가 바로 이 과정이 세운 배움의 목표다.
이 과정은 이 목표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의 유일한 목적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가르쳐,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을 내릴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이 복잡하고 지나치게 복잡해진 세상에는 선택의 근거가 없다. 누구도 무엇이 같은지 이해하지 못한 채, 실제로는 선택이 없는 곳에서 선택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실재 세계는 그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대안들을 지각하는 데서 선택이 실재로 만들어지는 영역이다. 선택이 있다는 것은 환영이다.
그러나 선택이 있다는 바로 이 환영 안에, 이 환영 자체를 포함하여 모든 환영이 허물어지는 것이 놓여 있다. 이것이 그대의 특별한 기능과 같지 않은가, 한때 특별함이었던 것 안에서 목적이 바뀜으로써 분리가 허물어지고 이제 합일이 되는 그 기능과?
모든 환영은 오직 하나다. 그리고 모든 환영이 하나라는 인식 안에, 그것들 사이에서 선택하고 그것들을 다르게 만들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이 놓여 있다.
그토록 뚜렷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사이의 선택은 얼마나 단순한가. 여기에는 아무 갈등도 없다. 그러한 것으로 인식된 환영을 내려놓는 데에는 어떤 희생도 있을 수 없다. 결코 참이었던 적이 없는 것에서 모든 실재가 거두어진 곳에서, 환영을 내려놓고 참일 수밖에 없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어렵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