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뿐인 실수

1) 똑같은 문제

그대가 성령에게 모든 문제를 풀어 달라고 청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성령은 어떤 문제를 다른 것보다 더 어렵게 풀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그에게 똑같다. 각 문제는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접근을 통해 풀리기 때문이다.

문제가 어떤 형태를 취하는 듯 보이든, 풀어야 할 측면은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그 문제가 지속되는 한 그렇게 나타날 것이다. 그것을 특별한 형태 안에서 풀려고 시도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문제는 영원히 답해져 다시는 어떤 형태로도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고 또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그대는 문제에서 풀려난다. 성령은 그대가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문제로부터 그대에게 해방을 내놓는다.

문제들은 그에게 똑같다. 각 문제는 취하는 듯 보이는 형태와 무관하게, 그대가 얻을 수 있도록 누군가는 손실을 겪고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황이 아무도 잃지 않도록 풀릴 때 문제는 사라진다.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지각의 오류였던 것이 이제 바로잡혔기 때문이다. 성령에게는 한 실수를 다른 실수보다 진리로 데려오기가 더 어렵지 않다. 오직 하나의 실수만 있기 때문이다 — 손실이 가능하며 누군가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전체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참이라면, 하나님은 부당한 존재일 것이고, 죄는 가능할 것이며, 공격은 정당화되고 복수는 공정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이 하나의 실수에는 하나의 바로잡음이 있다.

손실은 없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실수다. 그대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러나 문제들이 크기와 복잡함, 장소와 시간, 혹은 그대가 지각하기에 저마다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그 어떤 속성에도 상관없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그대가 본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2) 부분적 정의 없음

그대가 보는 것에 부과하는 한계가 하나님을 어떤 식으로든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정의의 기적은 모든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 모든 문제는 오류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부당한 일을 하며, 따라서 참이 아니다.

성령은 부당함을 크거나 작다고, 더하거나 덜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성령이 보기에 부당함에는 아무 속성도 없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겪고 있지만 불필요하게 겪고 있는 실수들이다. 그래서 그는 가시와 못을 거두어 낸다.

성령은 상처가 큰지 작은지 판단하려고 멈추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하나의 판단만 내린다. 하나님의 아들을 다치게 하는 것은 부당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몇몇 실수만 바로잡히도록 내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간직해도 안전하다고 믿는 그대여, 이것을 기억하라 — 정의는 전체적이다. 부분적인 정의라는 것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유죄라면 그는 정죄받은 것이며, 정의의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자비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그대가 그를 유죄라고 여기고 그가 죽기를 바란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그를 벌하라고 청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대에게 그의 순수함을 볼 수 있는 수단을 내놓는다. 그대가 거기 있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벌하는 것이 공정하겠는가?

그대가 문제를 스스로 풀려고 간직하거나 풀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할 때마다, 그대는 그 문제를 크게 만들고 치유의 희망 너머로 밀어낸 것이다. 그대는 정의의 기적이 공정할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의롭다면, 정의가 풀 수 없는 문제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어떤 부당함은 공정하고 좋으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대가 크고 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들이다. 그대가 손실을 겪게 하고 싶은 이들이 있으며, 그대가 희생에서 완전히 지켜 주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3) 보편적인 축복

다시 한번 그대의 특별한 기능을 생각해 보라. 그대에게는 한 사람이 주어진다. 그 사람 안에서 그의 완전한 죄 없음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가 손실을 겪기를 바랄 수 없기에 그에게 어떤 희생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불러낸 정의의 기적은 그에게만큼이나 확실히 그대에게도 머물 것이다. 또한 성령은 정의의 기적이 모든 이에게 받아들여질 때까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성령에게 내주는 것은 모두의 것이며, 그대가 내줌으로써 성령은 모두가 그것을 똑같이 받도록 확실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대가 자신의 모든 문제에 대한 바로잡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그대 자신의 해방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 보라. 그대는 어떤 형태로든 고통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에 단 하나도 간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성령의 온화한 시야 앞에서 작은 상처 하나하나가 풀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성령의 눈에는 그 문제들 모두가 작으며, 사라지기 전 그저 작은 한숨만큼의 가치밖에 없어, 영원히 되돌려지고 잊힐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특별한 문제, 치료법 없는 실수, 치유책 없는 병으로 보였던 것이 보편적인 축복으로 바뀌었다. 희생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이 기억될 수 있으며, 희생과 손실에 대한 모든 기억을 비추어 없앨 것이다.

정의가 두려움 대신 사랑받을 때까지 하나님은 기억될 수 없다. 그는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부당할 수 없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속하며 자신이 창조한 그대로 영원히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든 죄 없고 공격 너머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대의 특별한 기능은 문을 활짝 연다. 그 문 너머에는 완전히 온전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채 지켜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대가 해야 할 일은 다만 지옥 대신 천국이 그대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러면 그 문을 단단히 잠그고 있는 듯 보이는 모든 빗장과 장벽은 그저 떨어져 나가 사라질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완전한 사랑으로 그대를 창조했을 때 준 것보다 그대가 덜 내주거나 덜 받아야 하는 것은 그대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