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은총이 된 특별함
1) 저마다의 역할
이것이 바로 특별함에 대한 성령의 자애로운 지각이다 — 해치는 대신 치유하기 위해 그대가 만든 것을 사용하는 것. 성령은 각자에게 오직 그 자신만이 채울 수 있는, 구원 안의 특별한 기능을 준다 — 오직 그만을 위한 역할이다.
각자가 자신의 특별한 기능을 찾아 맡겨진 역할을 다하고, 그렇게 불완전함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기 전에는 그 계획도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칙이 완전한 형태로 우세하지 않는 이곳에서도, 각자는 여전히 완전한 한 가지 일을 하고 완전한 한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지각되는 이에게 이렇게 특별히 신실하게 행함으로써, 각자는 자신이 건넨 선물이 실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었음을, 그래서 자신과 그 사람이 하나일 수밖에 없음을 배운다.
용서는 시간 안에서 의미를 지니는 유일한 기능이다. 그것은 성령이 특별함을 죄에서 구원으로 옮기는 데 사용하는 수단이다. 용서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용서가 모두에게 머물 때 비로소 완전해지며, 이 세상의 모든 기능도 용서와 함께 완성된다.
그러면 시간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 안에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리고 각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해야 한다. 각자의 역할에 계획 전체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각자는 스스로 그렇게 선택했기에 시간 안에서 특별한 역할을 지니며, 그 역할을 선택함으로써 그는 그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 각자의 소망은 거부되지 않고 형태만 바뀌어, 그의 형제와 자기 자신을 섬기고, 잃는 대신 구하는 수단이 되었다.
2) 공격이 아닌 기능
구원은 이 세상이 그대의 집이 아니라는 상기일 뿐이다. 세상의 법칙은 그대에게 강요되지 않으며, 세상의 가치는 그대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가 세상 안에서 본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실제로 거기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각자가 세상을 만드는 데 자신의 역할을 했던 것처럼 세상을 허무는 데도 자신의 역할을 함에 따라, 이 사실이 보이고 이해된다.
각자는 언제나 그랬듯이 세상을 만드는 쪽으로든 허무는 쪽으로든 그 수단을 지니고 있다. 각자가 자기 자신을 해치려고 선택한 그 특별함을, 하나님은 그 선택이 이루어진 바로 그 순간부터 그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정했다. 각자의 특별한 죄는 각자의 특별한 은총이 되었다. 각자의 특별한 미움은 각자의 특별한 사랑이 되었다.
성령은 자신의 기능이 다해지도록, 그대의 특별한 기능을 필요로 한다. 그대에게 여기서 특별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특별한 기능을 원했고, 그것이 그대에게 주어졌다.
그대가 만든 모든 것은 쉽고도 훌륭하게 구원을 섬길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성령은 그 선택을 그를 위해, 그에게 불리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오직 어둠 속에서만 그대의 특별함은 공격처럼 보인다. 빛 안에서 그대는 그대의 특별함을 계획 속 그대의 특별한 기능으로 본다. 그 계획은 하나님의 아들을 모든 공격에서 구하고, 그가 언제나 안전했으며 시간 안에서도 영원 안에서도 안전할 것임을 그가 이해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기능이 그대의 형제를 위해 그대에게 주어진 기능이다. 그렇다면 이 기능을 그대의 형제의 손에서 부드럽게 받아, 구원이 그대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하라. 이 한 가지를 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그대에게 주어질 것이다.
3) 변함없는 뜻
그러나 성령이 그대가 자기 자신에게 내린 각각의 선고를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선고는 죄일 수 없다. 죄는 온 세상에서 바뀔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은 변경 불가능하다. 그리고 세상은 그 변함없음에 의지한다.
세상의 마법은 죄인들에게서 죄의 고통을 감추고 번쩍임과 속임수로 속이는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죄의 대가가 죽음임을 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다. 죄란 죽음을 청하는 것, 곧 이 세상의 토대를 사랑만큼 확실하고 천국만큼 믿을 만하며 하나님 자신만큼 강하게 만들려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사랑으로부터 안전하다. 그리고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은 것이, 모든 면에서 그의 창조에 반대되면서도 그 창조의 속성을 함께 지닐 수 있겠는가? 죽음을 향한 "죄인"의 소망이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뜻만큼이나 강할 수는 없다. 또한 그가 만들지 않은 세상의 토대가 천국만큼 확고하고 확실할 수도 없다.
지옥과 천국이 같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뜻하지 않은 것이 바뀔 수 없다는 것이 가능한가? 하나님의 뜻 말고 무엇이 변경 불가능한가? 그리고 그 뜻 자체 말고 무엇이 그 뜻의 속성을 함께 지닐 수 있는가? 어떤 소망이 그의 뜻에 맞서면서도 변경 불가능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 말고는 변함없는 것이 없음을 그대가 깨달을 수 있다면, 이 과정은 그대에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가 이 사실이 실제로 무엇인지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면, 그대가 믿을 수 있는 다른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