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오류로 드러난 죄
1) 바꿀 수 없는 믿음
죄란 지각이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고정된 믿음이다. 저주받은 것은 저주받았고 영원히 저주받아,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죄가 용서받는다면, 죄에 대한 지각은 틀렸던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하여 변화가 가능해진다.
성령 또한 자신이 보는 것을 변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넘어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의 시야에는 죄가 침범할 수 없다. 죄는 그의 시야에 의해 이미 바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죄는 죄가 아니라 오류였던 것이 틀림없다. 죄는 어떤 일이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다. 죄는 처벌로 공격받으며, 그렇게 보존된다. 그러나 죄를 용서하는 것은 그 상태를 오류에서 진리로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결코 죄를 지을 수 없지만, 자신을 해칠 것을 바랄 수는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상처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힘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잘못된 지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죄인가 실수인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그 형제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인가 정죄인가? 그 형제가 구원받는 것과 저주받는 것 중 무엇이 그대의 목적인가?
그 형제가 그대에게 어떤 존재인가가 이 선택(형제를 구원할지 저주할지의 선택)을 그대의 미래로 만들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 그대는 지금, 모든 시간이 목표에 이르는 수단이 되는 바로 이 순간에 그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대의 선택을 하라. 그러나 이 선택 안에서 그대가 보는 세상의 목적이 선택되며, 그 목적이 정당화되리라는 것을 알라.
2) 기쁨을 위한 보기
합쳐져 있고 자신들이 합쳐져 있음을 알아보는 마음은 죄책감을 느낄 수 없다. 이 마음들은 공격할 수 없으며, 이 행복한 사실 안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면서 그러함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들의 기쁨은 이들이 보는 순수함 안에 있다. 그래서 이들은 순수함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기에 그 순수함을 추구한다.
누구나 자신이 규정하는 대로 자신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것을 추구한다. 달라지는 것은 그 목표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수단의 선택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목표가 바뀌지 않는 한 변화의 희망을 넘어서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목표가 보이는 방식이다. 그리고 무엇이 기쁨을 가져다줄지가 다른 방식으로 규정되고 다르게 추구될 때, 수단은 다시 한번 선택된다.
지각의 근본 법칙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대는 그대가 보는 것을 기뻐하기 위해 보기 때문에 그것을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고통과 죄가 그대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것들은 그대가 보도록 그만큼 오래 거기 있을 것이다.
그대가 바라는 것과 무관하게 해롭거나 이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것이든 그대에게 미치는 효과에서 그것을 그것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대의 바람이다.
그대는 그 효과가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고 믿으며, 그 효과를 얻는 수단으로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법칙은 천국에서도 성립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기 위해 창조하며, 자신의 창조 안에서 아버지의 목적을 함께함으로써 자신의 기쁨이 늘어나고 하나님의 기쁨도 함께 늘어나게 한다.
3) 빛의 세상
사실이 아닌 세상을 만든 자여, 평화가 머무는 또 다른 세상 안에서 쉼과 위안을 얻으라. 그대는 죄를 바라보며 그 슬픈 후렴을 되뇌는 지친 눈과 지친 가슴 모두에게 평화가 머무는 세상을 함께 가져다준다. 이들의 쉼은 그대로부터 올 수 있다. 이들이 기쁘게 바라볼 세상, 이들의 가슴이 즐거워할 세상이 그대로부터 일어날 수 있다.
그대 안에는 지친 눈과 가슴 모두에게 뻗어 나가 이들을 온유함과 빛으로 감싸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이 빛의 세상이 넓어짐에 따라, 이들이 있다고 생각했던 어둠은 밀려나 마침내 멀리 떨어진 그림자가 되며, 태양이 그것들을 무로 비추어 없앨 때 더는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의 모든 "악한" 생각과 "죄스러운" 소망, 죄책감과 무자비한 복수의 꿈, 그리고 해치고 죽이고 죽고 싶어 하는 모든 소원은 그대가 가져오는 태양 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그대는 이것을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대 자신을 위해서도?
이 빛의 세상이 그대를 위해 무엇을 해 줄지 생각해 보라. 지금 그대를 괴롭히는 그대의 "악한" 생각들은 점점 더 멀고 아득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대 안의 태양이 떠올라 그것들을 빛 앞에서 밀어낼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것들은 점점 더 멀리 물러난다. 그것들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뒤틀린 형태로 잠시, 아주 잠시 머물다가 영영 사라진다.
그리고 그 햇빛 속에서 그대는 고요하게, 순수하고 조금도 두려움 없이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찾은 쉼은 그대로부터 뻗어 나가, 그대의 평화가 결코 떨어져 나가 그대를 집 없는 신세로 남겨 두지 않게 할 것이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내주는 이들은 세상이 파괴할 수 없는 천국의 집을 찾은 것이다. 그 집은 세상을 그 평화 안에 담을 만큼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그대 안에는 천국 전체가 있다. 떨어지는 모든 잎사귀는 그대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 언젠가 노래했던 모든 새는 그대 안에서 다시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피어났던 모든 꽃은 그 향기와 아름다움을 그대를 위해 간직해 왔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뜻보다 앞설 수 있는 목표가 무엇이겠는가, 천국을 유일한 집으로 삼아 창조된 그 아들에게 천국이 되돌려지는 것보다? 천국보다 앞선 것도 천국 뒤에 오는 것도 없다. 다른 장소도, 다른 상태도, 다른 시간도 없다. 천국보다 더 먼 것도 더 가까운 것도 없다. 다른 무엇도 없다.
어떤 형태로도. 그대는 바로 이것을 온 세상에, 그리고 한동안 그 안에 들어와 잘못 알려졌던 모든 생각에 가져다줄 수 있다. 어둠의 세상을 넘어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천국의 빛을 그대와 함께 가져오려는 그대의 기꺼운 마음보다 그대 자신의 실수를 진리로 더 잘 가져올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