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걸작을 보는 눈

1) 형태는 수단일 뿐

그 과업이 그대의 마음속에서 사라져 그 안에 있는 것을 더 어둡게 하지 않게 된 것을 기뻐하라. 형태를 내용으로 착각하지 말라. 형태는 내용을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액자는 그림을 보여 줄 수 있도록 그것을 받쳐 주는 수단일 뿐이다. 그림을 가리는 액자는 아무 목적이 없다. 액자가 그대가 보는 것 자체라면 그것은 액자일 수 없다.

그림이 없으면 액자는 그 의미를 잃는다. 그 목적은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그 자리에 걸작이 있는 것처럼, 빈 액자를 벽에 걸어 놓고 그 앞에 서서 깊이 경외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그대의 형제를 몸으로 본다면, 그대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몸이라는 이 액자 안에 둔 걸작이야말로 볼 것의 전부다.

몸은 걸작을 조금도 가리지 않은 채 한동안 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액자가 필요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것을 자기 안에서 떠받치고 틀 지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걸작을 그대가 보도록 내놓는다. 그런데 그대는 차라리 이것 대신 액자를 보고 싶은가? 그리고 그림은 전혀 보지 않고 싶은가?

2) 하나님의 액자

그대는 하나님의 일부를 분리된 것으로 보고 싶어 하는데, 성령은 하나님이 그 일부 둘레에 둔 액자다. 그러나 그 액자는 그것의 창조주와 이어져 있으며, 그와, 그리고 그의 걸작과 하나다.

이것이 액자의 목적이며, 그대가 액자를 제자리에서 보기로 선택할 때 그대는 액자를 그림으로 만들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림에 준 액자는 오직 그의 목적을 섬길 뿐, 그와 따로 떨어진 그대의 목적을 섬기지 않는다.

그림을 가리고 그것 대신 액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바로 그대의 분리된 목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걸작을, 그대의 것은 먼지로 부스러질 때도 영원히 남을 액자 안에 두었다.

그러나 그 그림이 어떤 식으로든 파괴된다고는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이 창조하는 것은 모든 부패로부터 안전하며, 영원 안에서 변함없고 완전하다.

그대의 액자 대신 하나님의 액자를 받아들이라, 그러면 그대는 그 걸작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보고, 그 걸작을 살과 뼈가 아니라 그 자체만큼 아름다운 틀 안에서 생각해 낸 마음을 이해하라. 그 거룩함은 어둠의 액자가 가리는 죄 없음을 밝힌다. 또한 그림의 얼굴 위에 빛의 베일을 드리우는데, 그 빛은 그 걸작에서 창조주에게로 비치는 빛을 그저 반사할 뿐이다.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그림의 얼굴을 죽음의 액자 안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 얼굴이 어두워진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안전하게 지켰다. 그대가 그 얼굴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그 얼굴에 준 거룩함을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어둠으로부터의 구원자를 보고, 그대의 형제를 그의 아버지의 마음이 그대에게 보여 주는 대로 이해하라. 그대가 그를 바라볼 때 그는 어둠에서 걸어 나올 것이며, 그대는 더는 어둠을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어둠은 그를 건드리지 않았으며, 그대가 보도록 그를 앞으로 데려온 그대 또한 건드리지 않았다.

형제의 죄 없음은 그저 그대의 죄 없음을 그려 보일 뿐이다. 형제의 온유함은 그대의 힘이 되며, 그대와 형제 둘 다 기꺼이 자기 안을 들여다보고, 그대가 형제 안에서 본 것 때문에 거기 있는 것이 틀림없는 거룩함을 보게 될 것이다.

그 형제는 그대의 거룩함이 놓여 있는 액자이며, 하나님이 그에게 준 것은 그대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그가 자기 안의 걸작을 아무리 지나쳐 보고 어둠의 액자만을 본다 해도,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 안에서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그대의 유일한 기능이다. 그리고 이렇게 보는 데에, 죽음을 보는 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함께 나누는 인식이 있다.

3) 하늘의 기쁨

그대가 하늘의 주의 걸작을 알아본다면 그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사랑하듯 하나님의 아들을 사랑하는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 말고 하나님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대가 그저 그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그의 찬미를 함께 나누기만 한다면, 그가 그대에게 그의 사랑을 알리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완전한 아버지답게 창조물을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그의 일부가 그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그의 찬미에 동참할 때 그의 기쁨은 완전해진다.

이 형제는 그대에게 주는 하나님의 완전한 선물이다. 그리고 그대가 그의 완전한 아들에게 그 아들이 존재하는 그대로임에 대해 감사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고 감사해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그 기쁨을 완전하게 하고자 하는 그대 위에 하나님의 모든 감사와 기쁨이 빛난다.

이렇게 하여 그대의 기쁨도 완전해진다. 자신의 아버지의 행복을 완전하게 하고, 그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행복도 완전하게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어둠의 빛줄기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의 감사는 그의 목적을 함께하는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주어진다.

홀로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의 뜻도 아니다.

그대의 형제를 용서하라, 그러면 그대는 그로부터도 그의 아버지로부터도 그대 자신을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대에게는 용서가 필요 없다. 온전히 순수한 이는 결코 죄를 지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대에게 준 것을 주라.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로 보고, 하나님이 그대에게 감사하듯 그 아들의 아버지에게 감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의 모든 찬미가 그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고 믿지 말라. 그대가 주는 것은 그의 것이며, 그것을 줌으로써 그대는 그대에게 준 그의 선물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 둘 다에게 똑같이 내놓는 것을 성령에게 주라.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을 확장할 뿐인 그대의 뜻 말고는 그 무엇도 그대를 지배하는 힘이 없다. 그대가 창조된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였으며, 그대의 형제도 그대와 함께 그대와 하나로 창조되었다.

그대와 그대의 형제는, 하나님 자신이 하나이며 그의 뜻 안에서 나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같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그대들 둘 다에게 같은 것을 주었으므로, 그대들은 하나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

그대가 뜻 안에서 합쳐질 때 그 아버지의 뜻은 하나로 모인다. 이는 그대가 그대의 형제에게 완성을 내줌으로써 그대 자신도 완성되게 하기 위해서다.

그 형제가 보는 죄스러움을 그 형제 안에서 보지 말고, 그대 자신과 그 형제를 존중할 수 있도록 그 형제에게 경의를 표하라. 그대와 그대의 형제에게는 구원의 힘이 주어졌다. 이는 어둠에서 빛으로 벗어나는 그 탈출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고, 결코 분리된 적 없고 하나님의 사랑 — 똑같이 주어지는 그 사랑 — 으로부터 결코 떨어진 적 없는 것을 하나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