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싸움터 너머

1) 살인 대신 기적

이제 싸움터를 못 본 체하는 것이 그대의 목적이다. 위로 들어 올려져, 더 높은 자리에서 싸움터를 내려다보라. 그곳에서라면 그대의 관점은 사뭇 다를 것이다. 여기, 싸움터의 한복판에서는, 그것이 참으로 실재처럼 보인다.

여기서 그대는 싸움터의 일부가 되기로 선택했다. 여기서는 살인이 그대의 선택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면, 그 선택은 살인 대신 기적이다.

그리고 이 선택에서 비롯되는 관점은 그 싸움이 실재가 아니며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대에게 보여 준다. 육체들은 싸울지 모르지만, 형태들의 충돌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그 싸움이 결코 시작된 적이 없다는 것을 그대가 깨달을 때, 싸움은 끝난다.

그대가 싸움에 관여하고 있는데 그 싸움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지각될 수 있겠는가? 살인이 그대의 선택이라면 그대가 기적의 진리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는가? 공격하려는 유혹이 일어나 그대의 마음을 어둡고 살인적으로 만들 때, 그대가 위에서 그 싸움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가 알아보지 못하는 형태 안에서도, 표지들은 그대가 아는 것들이다. 찌르는 듯한 고통, 죄책감의 따끔거림,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화의 상실이 있다. 이것을 그대는 잘 알고 있다. 그 표지들이 일어날 때 높은 곳의 그대 자리를 떠나지 말고, 재빨리 살인 대신 기적을 선택하라.

그리고 하나님 자신과 천국의 모든 빛이 그대에게 부드럽게 기울어, 그대를 붙들어 줄 것이다. 그대는 그가 그대를 있게 하려는 그곳에 머물기로 선택했으며, 그 어떤 환영도 그의 아들과 함께 있는 하나님의 평화를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목적이 하나로 이음

싸움터에서 그 누구도 바라보지 말라. 그곳에서는 그대가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 형제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에게는 바라볼 기준점이 없으며, 그대가 보는 것에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자리도 없다. 오직 육체만이 공격하고 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이 그대의 목적이라면 그대는 그것들과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직 목적만이 하나로 이으며, 목적을 나누는 이들은 하나로서의 마음을 지닌다. 육체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목적도 지니지 않으며, 고립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래에서는 육체를 넘어설 수 없다. 위에서 보면, 육체가 여전히 싸움 속에 있는 이들에게 가하는 한계는 사라지며 지각되지 않는다.

육체는 아무런 목적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와 그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창조한 천국 사이에 서 있다. 자신의 아버지의 목적을 나누며 그것이 자신의 것임을 아는 이들에게 무엇이 주어지는지 생각해 보라.

그들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그 어떤 종류의 슬픔도 상상할 수 없다. 그들이 사랑하는 그 빛만이 자각 안에 있으며, 오직 사랑만이 영원히 그들 위에 빛난다.

그것은 그들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다. 언제나 같고, 영원히 완전하며, 온전히 함께 나누어진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이 그 어떤 종류의 변화도 결코 겪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그대는 싸움터가 그대가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내줄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싸움터가 그대에게 완전한 차분함을 내줄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의심의 손길도 결코 그대의 확신을 흠집 낼 수 없을 만큼 깊고 고요한 사랑의 느낌을 내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는 무언가일 수 있겠는가? 자신의 자각 안에 하나님의 힘을 지닌 이들은 결코 싸움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완전함을 잃는 것 말고 그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싸움터에서 싸워 얻으려는 모든 것은 육체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육체가 내주거나 소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것 말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지녔음을 아는 이는 그 누구도 제한을 추구할 수 없으며, 육체가 내주는 것들을 소중히 여길 수도 없을 것이다.

싸움터 위의 그 고요한 영역에서 보면 정복의 무의미함은 아주 뚜렷하다. 모든 것과 갈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더 적게 내주면서도 더 많이 원해질 수 있는 것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을 떠받쳐 주는 이가 기적과 살인 중에서 선택하는 것을 어렵게 여길 수 있겠는가?

3) 숨은 전사들

이 과정의 동기가 평화의 상태를 얻고 지키는 것임을 잊지 말라. 이 상태가 주어지면 마음은 고요해지며, 하나님이 기억되는 그 조건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해 줄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이미 그곳에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있고자 뜻하는 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평화는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안전하게 붙드는 그 뜻을 하나의 그림자가 붙들어 막을 수 있다고 그대는 믿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자신이 자기 자신이도록 허락받기 위해 환영을 기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도 그렇지 않다. 하나님과 아들은 그저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하릴없이 떠도는 것처럼 보이는 그 어떤 환영이 그들의 뜻인 것을 무너뜨릴 힘을 지녔겠는가?

이 과정을 배우려면 그대가 지닌 모든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 가치 중 어느 하나도 숨겨진 채 가려져 있게 놔둔다면 그것이 그대의 배움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그 어떤 신념도 중립적이지 않다. 신념 하나하나가 그대가 내리는 각각의 결정을 좌우할 힘을 지닌다. 결정이란 그대가 믿는 모든 것에 근거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결정은 신념의 결과이며, 고통이 죄책감을 뒤따르고 자유가 죄 없음을 뒤따르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신념을 뒤따른다.

평화에는 대체물이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는 것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진리는 하나님이 아는 것으로부터 일어난다. 그리고 그대의 결정들은 그대의 신념들로부터 비롯되며, 이는 모든 창조가 하나님이 아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일어난 것만큼이나 확실하다.

사랑은 확장이다. 가장 작은 선물을 거두는 것은 사랑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은 영원히 모든 것을 내준다. 단 하나의 신념, 단 하나의 내어줌만 거두어도 사랑은 사라진다. 그대가 그 자리를 대체물이 차지하도록 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평화의 대체물인 전쟁이, 그대가 사랑을 위해 택할 수 있는 그 유일한 대안과 함께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대가 전쟁을 택했기에, 전쟁이 지닌 것처럼 보이는 실재성 전부는 그 선택이 부여한 것이다. 신념들은 서로를 결코 공공연히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충돌하는 결과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아보아지지 않은 신념은 은밀히 전쟁하기로 한 결정이다. 그 안에서 갈등의 결과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으며, 그 결과가 분별 있는지 아닌지 헤아려지도록 이성 앞에 결코 옮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수많은 무의미한 결과가 도출되었고, 무의미한 결정들이 내려져 숨겨진 채로 남았다. 이 결정들은 이제 이후의 모든 결정을 이끌 힘이 주어진 신념이 되었다.

이 숨은 전사들이 그대의 평화를 흩뜨릴 힘을 착각하지 말라. 그대가 숨은 전사들을 그곳에 그대로 두기로 결정하는 한, 평화는 숨은 전사들의 처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 은밀한 적들, 곧 사랑 대신 공격을 택하려는 그대의 아주 작은 결정들은, 알아보아지지 않은 채,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싸움과 폭력으로 그대에게 재빨리 도전한다.

숨은 전사들은 그대의 선택에 의해 거기 있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도, 그들의 끔찍한 결과도 부인하지 말라. 부인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의 실재성뿐이지, 그들의 결과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