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환영들의 싸움 너머

1) 승리를 꿈꾸는 에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고요한 마음에 찾아온다. 그것은 갈등이 있는 곳에는 올 수 없다. 자기 자신과 전쟁 중인 마음은 영원한 부드러움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수단은 평화의 수단이 아니며, 호전적인 것이 기억하려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승리에 대한 신념이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 한 전쟁은 불가능하다. 그대 안의 갈등은 에고가 승리할 힘을 지녔다고 그대가 믿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가 무엇 때문에 에고와 자신을 동일시하겠는가? 그대는 분명 에고가 하나님과 전쟁 중임을 알고 있다. 하나님에게 적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에고에게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고 결국 성공할 적이 있다는 고정된 신념도 그만큼이나 확실하다. 그대는 자신을 향한 전쟁이 하나님을 향한 전쟁이 되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승리가 상상이나 될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해도, 이것이 그대가 원할 만한 승리인가? 하나님의 죽음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그대의 죽음일 것이다. 이것이 승리인가?

에고는 언제나 패배를 향해 나아간다. 그대에 대한 승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하나님의 뜻이 공격받아 무너뜨려질 수 있다는 미친 신념일 뿐이다. 그대는 이 신념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코 광기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두려움이 광기 속에서 다스리며, 그곳에서 사랑을 대신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것이 갈등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 수단이 실재처럼 보인다. 하나님과 에고, 또는 그대와 에고가 결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라. 그대와 에고는 만나는 것처럼 보이며, 아무 의미도 없는 근거 위에서 그 기이한 동맹을 맺는다. 그대의 신념들은 에고가 택한 거처인 육체 위에서 하나로 모이며, 그대는 그 육체가 자신의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하나의 실수에서, 곧 그대 자신에 대한 평가의 오류에서 만난다. 에고는 그대가 에고와 함께 나누는 그대 자신에 대한 환영과 하나가 된다. 그러나 환영은 하나가 될 수 없다. 환영들은 서로 같으며,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들의 결합은 아무것도 아닌 것 안에 있다. 둘은 하나나 천 개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에고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과 하나가 된다. 에고가 추구하는 승리는 에고 자신만큼이나 무의미하다.

2) 적의 정체

형제여, 자신을 향한 전쟁은 거의 끝나 간다. 여정의 끝은 평화의 자리에 있다. 이제 그대는 여기서 그대에게 내밀어진 평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그대가 자신의 평화를 침범한 침입자로 여겨 맞서 싸웠던 이 "적"은 여기서, 그대가 보는 앞에서, 그대의 평화를 내주는 이로 변모한다.

그대의 "적"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었다. 하나님에게는 그 어떤 종류의 갈등도, 승리도, 공격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는 그대를 완전하게, 온전하게, 영원히 사랑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창조주와 전쟁 중인 상태는 우스꽝스럽다. 마치 자연이 분노하여 바람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바람은 더는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고 선포하는 것과 같다. 자연이 이것을 확립하여 참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무엇이 그대의 일부가 되고 무엇이 떨어져 있게 될지를 말하는 것도 그대에게 달린 일이 아니다. 자신을 향한 전쟁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그가 자기 자신이 아니며 자기 아버지의 아들도 아니라고 가르치려고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려면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잊혀야 한다. 그 기억은 육체의 삶 안에서 잊힌다. 그리고 그대가 자신을 육체라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자신이 그 기억을 잊었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결코 스스로 잊힐 수 없으며, 그대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그대 자신에 대한 낯선 환영, 곧 그대가 무엇인지를 이기려는 소망뿐이다. 자신을 향한 전쟁은 다만 두 환영의 싸움일 뿐이다. 정복하는 쪽이 참이 되리라는 신념 속에서 서로를 다르게 만들려고 애쓰는 싸움이다.

두 환영과 진리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다. 그것들은 서로 다르지도 않다. 둘 다 참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것들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상관없다.

환영을 만든 것은 미쳐 있으며, 환영은 자신을 만든 것의 일부로 남아 있다. 광기는 실재에 그 어떤 위협도 내밀지 못하며, 실재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환영은 진리를 이길 수 없으며, 그 어떤 식으로도 진리를 위협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들이 부인하는 그 실재는 그것들의 일부가 아니다. 그대가 기억하는 것은 그대의 일부다. 그대는 하나님이 그대를 창조한 그대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환영에 맞서 싸우지 않으며, 환영도 진리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환영은 오직 자기 자신과만 싸운다. 조각나 있기에, 그것들은 조각을 낸다. 그러나 진리는 나뉠 수 없으며, 그것들의 하찮은 손길이 닿는 곳 훨씬 너머에 있다.

그대가 갈등 속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을 때, 그대는 자신이 아는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대 자신에 대한 하나의 환영이 다른 환영과 싸울 수는 있지만, 두 환영의 전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다. 승자도 없고 승리도 없다.

그리고 진리는 갈등에서 떨어져, 손대어지지 않은 채 하나님의 평화 안에서 고요히 빛나며 서 있다. 갈등은 두 힘 사이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의 힘과 아무것도 아닌 것 사이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대가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대의 일부다.

그리고 그대의 일부를 공격함으로써 그대는 자신에 대한 두 개의 환영을 만들어 내며, 환영들은 서로 갈등한다. 그리고 그대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을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바라볼 때마다 두 환영의 갈등이 일어난다. 갈등은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두려움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태어난 것은 싸움을 통해 실재성을 얻을 수 없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자신의 세상을 자기 자신과의 갈등으로 채우려 하겠는가? 이 모든 광기가 그대를 위해 풀리게 하고, 그대의 고요한 마음 안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기억으로 평화롭게 돌아서라.

3) 평화의 확장

환영들의 갈등이 진리 앞으로 옮겨질 때 어떻게 사라지는지 보라! 그 갈등은 오직 서로 다투는 진리들 사이의 전쟁으로 보이는 동안에만 실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복하는 쪽이 더 참되고 더 실재하는 쪽이 되며, 정복당해 패배로 인해 환영이 된 그 덜 실재하는 환영을 물리친 쪽이 된다. 그렇게, 갈등은 환영들 사이의 선택이다.

하나는 실재로 관을 쓰고, 다른 하나는 정복되어 경멸받는다. 이 갈등 속에서는 아버지가 결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환영도 그의 집을 침범하여 그가 영원히 사랑하는 것에서 그를 몰아낼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것은 그의 집이기에 영원히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밖에 없다. 그의 사랑을 받는 그대는 환영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만큼이나 참되고 거룩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그대 자신에 대한 그대의 확신이 지닌 고요함은 그대들 둘 다의 집이다. 그대들은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서 그 안에 산다. 그의 가장 거룩한 집의 문을 열고, 하나님을 집 없는 이로 만들고 그의 아들도 그와 함께 집 없는 이로 만드는 죄에 대한 신념의 모든 흔적을 용서가 쓸어 가게 하라. 그대는 하나님의 집에서 낯선 이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평온과 평화 안에 두고 그와 함께 사는 그 집으로 그대의 형제를 맞이하라. 사랑이 머무는 곳에는 환영이 있을 자리가 없으며, 사랑은 참이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그대를 지켜 준다. 그대는 창조주만큼이나 한계 없는 평화 안에 산다. 그리고 그를 기억하려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진다.

성령이 하나님의 집 위에서 지켜보며, 그 평화가 결코 흔들릴 수 없음을 확신한다. 하나님의 안식처가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 등을 돌려, 그곳에 사는 그 하나를 이기려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집이 자신을 나뉜 것으로 지각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라. 제단이 사라지고, 빛이 흐릿해지며, 거룩한 이의 성전이 죄의 집이 된다. 그리고 환영 말고는 그 무엇도 기억되지 않는다.

환영은 서로 갈등할 수 있다. 그것들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오직 어느 형태가 참인지를 정하려고만 싸운다.

환영은 환영을 만난다. 진리는 자기 자신을 만난다. 환영들의 만남은 전쟁으로 이어진다. 평화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확장한다.

전쟁은 두려움이 태어나 자라나고 지배하려 드는 상태다. 평화는 사랑이 머물며 스스로를 나누려 하는 상태다. 갈등과 평화는 서로 반대다. 하나가 머무는 곳에 다른 하나는 있을 수 없으며, 어느 쪽이든 가는 곳에서 다른 하나는 사라진다.

그렇게 환영들의 싸움터가 된 마음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가려진다. 그러나 이 무의미한 전쟁 훨씬 너머에서 그 기억은 빛나며, 그대가 평화의 편에 설 때 기억될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