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광기를 대신하는 이성
1) 또 다른 자아
지각은 선택하며, 그대가 보는 세상을 만든다. 지각은 마음이 지시하는 대로 말 그대로 그것을 골라낸다. 다른 것들이 동등하다면 크기와 모양과 밝기의 법칙이 적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동등하지 않다. 그대가 애써 외면하려는 것보다 그대가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한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은 듣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에고의 요란한 비명과 무의미한 헛소리에 결코 묻히지 않는다.
지각은 사실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러나 이 선택에는 그대가 아직 깨닫지 못할 만큼 훨씬 많은 것이 달려 있다. 그대가 듣기로 선택하는 음성과 그대가 보기로 선택하는 광경에, 그대가 무엇인지에 대한 그대의 신념 전체가 온전히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각은 오직 그 신념의 증인일 뿐, 결코 실재의 증인이 아니다. 그러나 지각은 실재에 대한 자각이 가능한 조건들, 혹은 결코 가능하지 않을 조건들을 그대에게 보여 줄 수 있다. 실재는 자기 자신이기 위해 그대의 협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실재에 대한 그대의 자각은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자각이 그대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에고가 말하는 것을 듣고 에고가 그대에게 보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라. 그러면 그대는 틀림없이 자신을 작고 상처받기 쉽고 두려운 존재로 보게 될 것이다. 그대는 낙담과 무가치감, 그리고 무상함과 비실재감을 경험할 것이다. 그대는 자신이 자신의 통제를 훨씬 벗어난, 자신보다 훨씬 강한 힘들의 무력한 먹잇감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자신이 만든 세상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그대의 믿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의 믿음이라고 해서 실재를 만든다고는 결코 믿지 말라. 그대의 자유가 놓여 있는, 그대의 선택을 기다리는 또 다른 인식(vision)과 또 다른 음성이 있다. 그리고 그대가 그것들에 믿음을 둔다면, 그대는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아를 지각하게 될 것이다.
이 또 다른 자아는 기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본다. 기적은 육체에게 숨쉬는 일만큼이나 이 자아에게는 단순하고 자연스럽다. 기적은 도움을 청하는 부름에 대한 명백한 응답이며, 이 자아가 하는 유일한 응답이다. 기적이 에고에게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은, 에고가 분리된 마음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리된 마음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그러나 마음은 분리될 수 없다. 이 또 다른 자아는 이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자아는 기적이 다른 이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직 자기 자신의 마음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본다. 다른 마음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분리라는 관념이 이성을 얼마나 심하게 방해해 왔는지 그 전체 정도를 깨닫지 못한다. 이성은 그대가 자각에서 잘라 낸 그 또 다른 자아 안에 있다. 그리고 그대가 자각 안에 남아 있도록 허락한 그 무엇도 이성을 지닐 수 없다.
이성이 없는 마음의 조각이 어떻게 이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거나 이성이 내주려는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 조각 안에서 온갖 물음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물음이 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조각은 그 물음을 묻지 않을 것이다. 이성에서 비롯된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 근본적인 물음은 명백하고 단순하며 물어지지 않은 채로 남는다.
그러나 이성이 그 물음에 답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말라. 그대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의 뜻과 그대의 동의 없이는 세워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 계획을 받아들였음이 틀림없다. 하나님이 그를 위해 뜻하는 것을 그는 반드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와 떨어져서 뜻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기 위해 시간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된 것은 지금 그대 안에 있어야 하며, 그 하나 됨은 영원하다. 그대는 성령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그가 있는 그 자리를 따로 마련해 두었을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필요가 일어난 그 순간부터 그는 그곳에 있었을 수밖에 없으며, 바로 그 같은 순간에 그 필요는 이루어졌다.
그대가 귀 기울인다면 그대의 이성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론은 분명 에고의 추론이 아니다. 그대의 이성이 에고에게 낯선 본성을 지녔다는 것이야말로 그대가 그곳에서는 답을 찾지 못하리라는 증거다.
그러나 그 답이 그대를 위해 존재하고 그대의 자유를 자신에게 주어진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대는 반드시 그 답을 찾을 자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단순하다 — 결코 순환적이지 않고 결코 자멸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스스로를 확장하는 것 외에는 어떤 생각도 없으며, 여기에는 그대의 뜻도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대 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나누어 지니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반드시 그러해야 할 것이 그러한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대가 어째서 그러한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지 묻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대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하다면 그 물음에는 반드시 답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반드시 완전해야 한다. 그 근원은 불완전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답이 근원이 아니라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이 같은 답이 있는 바로 그곳이 아니라면 그대는 어디에 있겠는가?
그대의 정체성은 그 답과 마찬가지로 이 같은 근원의 참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정체성은 그 답과 함께이며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 그대는 이것을 알며, 이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도 안다. 그러나 지식의 어느 한 부분도 지식 전체만큼이나 해리를 위협한다. 그리고 그 전체는 어느 한 부분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여기에 그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성이 가리키는 것을 그대는 볼 수 있다. 이성을 뒷받침하는 증인들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미친 이들만이 그 증인들을 무시할 수 있으며, 그대는 이미 그 단계를 지났다.
2) 육체 너머의 이성
이성은 그 자체로 성령의 목적을 섬기는 수단이다. 다른 것들처럼 죄라는 목표에서 재해석되어 다른 방향으로 돌려지지 않는다. 이성은 에고의 수단이 미치는 범위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믿음과 지각과 신념은 잘못 놓일 수 있으며, 진리뿐 아니라 그 위대한 기만자의 필요도 섬길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은 광기 안에는 설 자리가 전혀 없으며, 광기의 목적에 맞게 조정될 수도 없다.
믿음과 신념은 광기 속에서도 강해서, 마음이 소중히 여겨 온 것을 향해 지각을 이끈다. 그러나 이성은 여기에 전혀 들어서지 않는다. 이성이 적용된다면 그 지각은 즉시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광기 속에는 이성이 없다. 광기는 전적으로 이성의 부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결코 이성을 쓰지 않는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미친 이들은 그것에 다가갈 수 있으며, 오직 그들만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 지식은 그것에 의존하지 않으며, 광기는 그것을 들이지 않는다. 그대의 아버지의 뜻과 하나가 된 그대의 뜻은, 이성이 깃든 마음의 그 부분을 광기를 되돌리는 데 바쳐 두었다.
이성이 깃든 그 부분에서 성령의 목적이 받아들여지고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성은 광기와는 낯선 것이며, 이성을 쓰는 이들은 죄에 적용될 수 없는 수단을 얻은 것이다. 지식은 그 어떤 종류의 성취도 훨씬 넘어서 있다. 그러나 이성은 그대가 스스로 걸어 잠근 문을 열어 주는 데 쓰일 수 있다. 그대는 이것에 매우 가까이 다가왔다.
믿음과 신념이 자리를 옮겼고, 그대는 에고가 결코 묻지 않을 그 물음을 물었다. 그대의 이성은 이제 그대에게, 그 물음이 그대가 알지 못하지만 반드시 그대에게 속한 무언가에서 비롯되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지 않는가?
이성으로 뒷받침되는 믿음과 신념은 바뀐 지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변화 안에서 인식(vision)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다. 인식(vision)은 자신이 섬기는 목적과 자신을 이루는 모든 수단이 그러하듯, 스스로를 넘어 확장된다.
이성은 죄를 볼 수 없지만 오류는 볼 수 있으며, 오류를 바로잡음으로 이끈다. 그것은 오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오직 그 바로잡음을 소중히 여긴다. 이성은 또한 그대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할 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청한 그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대는 그 도움이 자신이 내줄 수 있는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대는 그 도움을 내주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그 믿음을 유지할 것이다. 어떤 종류든 바로잡히지 않은 오류는 그대 안에 바로잡을 힘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대를 속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바로잡음이 바로잡을 수 있는데도 그대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그 바로잡음을 자신과 형제에게서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형제가 이 같은 믿음을 나눈다면, 그대들 둘 다 자신이 단죄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대는 형제와 자신에게 단죄를 면하게 해 줄 수 있다. 이성은 그대 혼자만을 위해 바로잡음의 길을 마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잡음은 형제 없이 그대 혼자서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죄는 바로잡음을 형제 없이 그대 혼자서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성은 그대에게, 그대가 형제나 자신을 죄 많다고 보면서 다른 쪽을 죄 없다고 지각할 수는 없다고 말해 준다. 자신을 죄 있다고 바라보면서 죄 없는 세상을 보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죄 많은 세상을 보면서 자신을 그것과 떼어 놓고 바라볼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죄는 그대가 분리되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성은 그대에게 이것이 틀릴 수밖에 없다고 말해 준다. 그대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면, 어떻게 그대에게 사적인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오직 그대만의 것처럼 보이는 것 안으로 들어오는 생각들이 어떻게 그대의 것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없이 생각하지 않듯, 누구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생각할 수 없다. 둘 다 육체 안에 있어야만 이것이 가능할 것이다. 육체가 마음이 아니고서야 어떤 마음도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생각할 수 없다. 오직 육체만이 분리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광기의 집은 이성의 집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대가 이성을 본다면 광기의 집을 떠나기는 쉽다. 그대는 다른 곳으로 감으로써 광기를 떠나지 않는다. 그대는 그저 광기가 있던 자리에 이성을 받아들임으로써 광기를 떠난다.
광기와 이성은 같은 것들을 보지만, 그 둘이 그것들을 서로 다르게 바라본다는 것은 확실하다. 광기는 이성을 공격해 마음에서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공격이다. 이성은 공격하지 않으며, 미친 이가 그것에 귀 기울이기로 선택한다면 조용히 광기의 자리를 차지해 광기를 대신한다.
그러나 미친 이들은 자신의 뜻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육체를 본다고 믿으며, 자신의 광기가 육체가 실재한다고 말하도록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이성은 육체를 실재하게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이성에 맞서 육체를 방어하려 한다면, 그대는 육체도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육체는 그대를 형제에게서 갈라놓지 않으며,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미친 것이다. 그러나 광기에는 목적이 있으며, 광기는 그 목적을 실재하게 만들 수단도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이성이 반드시 하나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해 주는 것들 사이에 육체를 장벽으로 보는 것은 미친 짓일 수밖에 없다.
그대가 이성의 음성을 듣는다면 육체를 볼 수조차 없을 것이다. 계속 이어진 것들 사이에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면, 한쪽으로 들어오는 것이 어떻게 다른 쪽에서 떼어져 있을 수 있겠는가? 이성은 그대에게 이것을 말해 줄 것이다.
3) 형제가 곧 구원자
그러나 이성이 그렇다면 그대가 반드시 알아보아야 할 것을 생각해 보라. 그대가 치유 대신 죄를 선택한다면,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을 결코 바로잡힐 수 없는 것으로 단죄하는 것이다. 그대는 그 선택으로 형제에게, 그가 단죄받았으며, 영원히 그대에게서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갈라져 안전한 귀환의 희망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대는 형제에게 이것을 가르치며, 그대가 가르친 그대로를 그에게서 배우게 될 것이다.
그대가 형제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대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가 무엇이기를 선택하든, 그것은 다만 그대 자신을 위한 그대의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두려운 일로 여기지 말라. 그대가 형제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은 그저 사실이지 해석이 아니다. 이 사실이 그대가 진리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과 어긋나지 않는 한, 사실이 어떻게 두려운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이성은 그대에게 이 사실이 곧 그대의 해방임을 말해 줄 것이다. 그대의 형제도 그대 자신도 홀로 공격받을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쪽도 상대가 기적으로 축복받고 고통에서 치유되지 않고서는 공격받는 대신 기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성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그대를 안심시키려 하지, 그대를 두렵게 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을 치유할 힘이 그대에게 주어진 것은 그가 그대와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아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는 그대에게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성은 그대에게, 그대와 하나인 그의 마음 전체를 단 한순간에 바꿀 힘이 그대에게 주어져 있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든 그의 오류를 완전히 바로잡고 그를 온전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대가 스스로 치유되도록 허락하기로 선택하는 그 순간, 바로 그 같은 순간에 그의 구원 전체가 그대의 구원과 함께 완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은 이것이 그러함을 이해하도록 그대에게 주어졌다. 이성은 자신이 섬기는 목적만큼이나 친절해서, 광기에서 벗어나 진리라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이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대는 진리를 부인하는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무서운 것은 이 짐이지 진리가 아니다. 그대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그대의 구원이다 — 두려움의 선물이 아니라 천국의 선물이다.
천국이 그대에게 짐처럼 느껴지는가? 광기 안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광기가 보는 것은 이성으로 흩어져야만 한다. 이성은 그대에게 천국이야말로 그대가 원하는 것이며 그대가 원하는 전부라고 확언한다.
이성으로 말하는 이에게 귀 기울이고, 그대의 이성을 그의 이성과 나란히 두라. 그가 그대를 광기 뒤에 남겨 두고 떠나도록 이끌려는 그 수단으로 이성이 쓰이도록 기꺼이 하라. 이성을 피하려고 광기 뒤에 숨지 말라. 광기가 감추려는 것을, 성령은 여전히 모두가 기쁘게 바라보도록 내밀고 있다.
그대는 형제의 구원자다. 그 형제도 그대의 구원자다. 이성은 실로 이것을 기쁘게 말한다. 이 은혜로운 계획은 사랑에 의해 사랑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사랑이 계획하는 것은 이 점에서 사랑 자신과 같다 — 사랑은 하나로 이어져 있기에, 그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그대가 배우기를 원한다. 그리고 사랑과 하나이기에, 사랑이 내준 것을, 그리고 여전히 내주고 있는 것을 그대도 내줄 수 있어야 한다. 형제에게 내주도록 그대에게 주어진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데 단 한순간만 쓰라. 그리고 그와 함께, 그대들 둘 다에게 주어진 것을 배우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덜하지도 않다. 하나님의 아들은 언제나 하나로서 축복받는다. 그리고 그가 그대에게, 자신을 축복한 그대에게 감사를 표할 때, 이성은 그대에게 그대가 축복에서 떨어져 서 있을 수 없다고 말해 줄 것이다.
그 아들이 그대에게 내주는 감사는 그대에게, 그를 완성한 것에 대해 그대의 아버지가 그대에게 내주는 감사를 일깨워 준다. 그리고 오직 여기에서만 이성은 그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그대에게 말해 준다. 그대의 아버지는 그대의 형제만큼이나 그대에게 가깝다. 그러나 그대의 참나(Self)보다 그대에게 더 가까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지닌 그 힘은 그의 실재성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실재성을 입증할 뿐이다. 그가 이미 자유롭다면 그의 자유가 그 자신 말고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가 자신의 자유를 부인한다면 그 자신 말고 누가 그를 가둘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않으며, 그의 아들도 자신의 원함으로써가 아니고서는 갇힐 수 없다. 그리고 그가 풀려나는 것도 바로 그 자신의 원함으로써다. 이것이 그의 강함이지 약함이 아니다.
그 아들은 자기 자신의 자비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가 자비롭기를 선택하는 곳에서, 그는 자유롭다. 그러나 그대의 형제가 대신 단죄하기를 선택하는 곳에서, 그는 갇힌 자가 되어 사슬에 묶인 채, 자기 자신에게 내릴 사면이 자신을 풀어 주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