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음이 유일한 원인
투사가 지각을 만든다. 그대가 보는 세상은 그대가 그것에 내준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 아니라 해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대에게 중요하다. 그것은 그대의 마음 상태를 증언하는 증인이며, 내면 상태를 바깥에 비춘 그림이다.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지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세상에 대한 그대의 마음을 바꾸기로 선택하라. 지각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기적에 난이도의 순서가 무의미한 이유다. 인식(vision)으로 바라본 모든 것은 치유되고 거룩하다. 인식(vision) 없이 지각된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리고 의미가 없는 곳에는 혼돈이 있다.
단죄는 그대 자신에 대한 그대의 판단이며, 그대는 이것을 세상에 투사할 것이다. 세상을 단죄받은 것으로 보라. 그러면 그대가 보는 모든 것은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을 해치려고 한 일이다. 그대가 재앙과 참사를 본다면, 그대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한 것이다.
그대가 거룩함과 희망을 본다면, 그대는 그를 자유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된 것이다. 이 두 결정 사이에 놓인 선택은 없다. 그리고 그대는 자신이 내린 선택을 증언하는 증인을 보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자신이 어느 쪽을 선택했는지 알아보는 법을 배울 것이다.
보지 못하는 이가 "보는" 세상은 상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 그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그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언제나 간접적인 증거로부터 보일 수 있는 것을 추론해야 하며, 알아보지 못한 것 때문에 걸려 넘어지고 쓰러지거나, 닫혔다고 생각했던 열린 문을 다치지 않고 지나갈 때마다 자신의 추론을 다시 짜맞추어야 한다.
그대도 마찬가지다. 그대는 보지 못한다. 그대의 추론 단서는 잘못되어 있어서, 그대는 알아보지 못한 돌에 걸려 넘어지고 쓰러지면서도, 닫혔다고 생각했던 문을 지나갈 수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 문은 보지 못하는 눈앞에 열려 서서 그대를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대신 보일 수 있었던 것을 판단하려 드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세상이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할 필요는 없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려면 먼저 세상이 보여야 한다.
그대는 어느 문이 열려 있는지 보여질 수 있고, 안전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으며, 어느 길이 어둠으로 어느 길이 빛으로 이어지는지도 볼 수 있다. 판단은 언제나 그대에게 잘못된 방향을 알려 주지만, 인식(vision)은 그대에게 갈 곳을 보여 준다. 어째서 그대가 짐작해야 하는가?
고통을 통해 배울 필요는 없다. 부드러운 가르침은 기쁘게 얻어지고 즐겁게 기억된다. 그대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그대가 배우고 싶어 하고 잊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대가 부인하려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그대의 물음은 이 과정을 배우는 수단이 이 과정이 약속하는 기쁨을 그대에게 가져다줄 것인가이다. 그대가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면, 이 과정을 배우는 일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아직 행복한 배움자가 아니다. 인식(vision)이 판단보다 더 많은 것을 그대에게 준다는 것을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그 둘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세상에 자신을 맞추어 감으로써 그 세상에 익숙해진다. 그들은 자신이 그 안에서 길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기쁜 가르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넘어설 수 없다고 믿었던 한계의 냉혹한 필요를 통해 그 세상을 배웠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믿으면서, 그들은 그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매달린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그 가르침이 자신을 계속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상상 속에서 "보도록" 배운 세상을 그대로 붙들고, 그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고통을 통해 배운 그 세상을 미워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자신이 불완전하고 몹시 궁핍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사는 곳을 규정하며, 자신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거기에 맞추어 가면서, 가진 그 작은 것마저 잃을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육체를 자신이 가진 전부이자 형제들이 가진 전부로 보는 모든 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그리고 그들은 육체를 지키는 것이 자신이 가진 그 작은 것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으며 외로움에 자신을 맞추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