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시 대신 백합

1) 십자가가 아닌 부활

오늘은 종려주일, 승리를 기리고 진리를 받아들임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거룩한 주간을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 처형을 곱씹으며 보내지 말고, 그의 해방을 기뻐하며 기념하는 데 보내자. 부활절은 고통이 아니라 평화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살해된 그리스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부활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자신을 용서했다는 상징이 되며, 그가 자기 자신을 치유되고 온전한 존재로 바라본다는 표징이 된다.

이 주간은 종려나무 가지로 시작해 백합으로 끝나는데, 백합은 하나님의 아들이 결백함을 알리는 희고 거룩한 표징이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어두운 표징이 여정과 그 목적 사이에,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과 진리를 표현하는 것 사이에 끼어들지 않게 하라.

이 주간에 우리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기념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죄가 아니라 그의 완전한 순결함을 기린다.

형제에게 가시 면류관이 아니라 백합의 선물을, 두려움의 "선물"이 아니라 사랑의 선물을 내주라. 그대는 한 손에는 가시를, 다른 손에는 백합을 든 채 형제 곁에 서서, 무엇을 주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제 나와 하나가 되어 가시를 던져 버리고, 가시 대신 백합을 내주라. 이번 부활절에 나는 그대가 나에게 내주는 용서의 선물을 그대에게서 받고, 내가 그 선물을 그대에게 되돌려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십자가 처형과 죽음 안에서는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대의 용서가 나의 용서와 함께 그리스도 위에 머물기 전까지는 부활도 완성될 수 없다.

한 주는 짧지만, 이 거룩한 주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떠맡은 여정 전체의 상징이다. 그 아들은 승리의 표징으로,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부활의 약속으로 시작했다.

그 아들이 십자가 처형이라는 유혹 속으로 헤매어 들어가 그곳에서 지체하지 않게 하라. 그의 결백함의 빛이 그의 해방과 풀려남으로 가는 길을 밝히도록 하여, 그가 십자가 처형을 넘어 평화롭게 나아가도록 도우라. 그의 해방이 이토록 가까이 있는데 가시와 못으로 그를 붙들어 두지 말라. 대신 그대의 빛나는 백합 선물의 흰빛이 그가 부활로 가는 길을 재촉하게 하라.

그대가 선물로 받고 준 백합의 눈처럼 흰 꽃잎 사이로 베일 뒤 그리스도의 얼굴을 언뜻이라도 본다면, 그대는 형제의 얼굴을 보고 알아볼 것이다. 나는 낯선 이였고 그대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대의 백합 선물로 인해 그대는 알게 될 것이다. 이 낯선 이는 그대에게 낯설지만 그대의 오랜 친구(Friend)이며, 그대가 그를 용서하는 데에, 그의 풀려남과 그와 함께하는 그대의 해방이 담겨 있다.

부활절의 때는 애도의 때가 아니라 기쁨의 때다. 부활한 그대의 친구(Friend)를 바라보고, 나와 함께 그의 거룩함을 기념하라. 부활절은 나의 구원과 함께 그대의 구원의 때이기 때문이다.

2) 제단 위의 가시

육체에 걸치거나 그것을 덮거나 그것이 쓰도록 만들어진 온갖 장신구를 바라보라. 육체의 눈이 보도록 만들어진 온갖 쓸모없는 것들을 보라. 그것의 쾌락을 위해 만들어진 그 많은 봉헌물을 생각해 보고, 이 모든 것이 그대가 미워하는 육체를 사랑스러워 보이게 만들려고 만들어졌음을 기억하라.

그대는 형제를 그대에게로 끌어당기고 그의 육체의 눈을 매혹하려고 이 미워하는 육체를 쓰려 하는가? 알라. 그대가 그에게 내주는 것은 사실 가시 면류관일 뿐이다. 그대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그가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 선물의 가치에 대한 그대 자신의 해석을 정당화하려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그 선물은 그대에게 그가 무가치하다고 선포한다. 그가 그 선물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가치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선물이 참으로 주어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면, 선물은 육체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육체는 내주지도 받아들이지도, 내밀지도 취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마음만이 가치를 부여할 수 있으며, 오직 마음만이 무엇을 받고 무엇을 줄지 결정한다. 그리고 마음이 내주는 모든 선물은 마음이 원하는 것에 달려 있다.

마음은 자신이 선택한 거처를 가장 세심하게 꾸민다. 그 거처로 찾아오는 이들이나 끌어들이려는 이들에게 원하는 선물을 내줌으로써, 그 선물을 받을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처에서 그들은 서로의 마음이 서로에게 합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내주고 받으며 선물을 주고받을 것이다.

선물 하나하나는 받는 이와 주는 이에 대한 평가다.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거처를 자기 자신을 위한 제단으로 본다. 누구나 자신이 제단 위에 놓은 것을 숭배할 이들을 제단으로 끌어들이려 하며, 그것을 그들의 헌신을 받을 만한 것으로 만들려 한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제단 위에 빛을 두어, 사람들이 그 위에 놓은 것을 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게 한다.

여기에 그대가 형제와 그대 자신에게 부여하는 가치가 있다. 여기에 그대가 둘 모두에게 주는 선물이 있으니,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그대의 판단이다. 그 선물이 내주어지는 대상이 바로 그대의 구원자임을 잊지 말라. 그 구원자에게 가시를 내주면 그대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 그에게 백합을 내주면 그대 자신이 자유로워진다.

나에게는 백합이 크게 필요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직 나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가시를 내주는데 내가 그에게 용서를 내줄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든 가시를 내주는 이는 여전히 나에게 맞서는 것이며, 그가 없다면 누가 온전할 수 있겠는가? 나를 위해 그의 친구가 되어 달라. 그래야 내가 용서받고,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을 온전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먼저 그대가 선택한 거처의 제단을 바라보고, 그대가 나에게 내주려고 그 위에 무엇을 놓았는지 보라. 만약 그것이 핏빛 붉은 광채 속에 날카롭게 번뜩이는 가시라면, 그대가 선택한 거처는 육체이며 그대가 나에게 내주는 것은 분리다. 그러나 그 가시는 사라지고 없다.

이제 그 가시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라. 그러면 그대의 제단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대는 여전히 육체의 눈으로 보고 있으며, 그 눈은 오직 가시만을 볼 수 있다.

3) 백합만 보는 인식

그러나 그대는 다른 시야를 청했고 그것을 받았다. 성령의 목적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그의 인식(vision)도 함께 나눈다. 그리고 성령이 이제 모든 제단에서 자신의 목적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인식은, 그의 것일 뿐 아니라 그대의 것이기도 하다.

성령은 낯선 이를 보지 않으며, 오직 깊이 사랑받고 사랑하는 친구만을 본다. 그는 가시를 보지 않으며, 그가 바라보고 사랑하는 모든 것 위에 빛나는 평화의 온화한 빛 속에서 반짝이는 백합만을 본다.

이번 부활절에는 다른 눈으로 형제를 바라보라. 그대는 나를 용서했다. 그러나 그대가 그 백합들을 보지 못하는 한, 나는 그대의 백합 선물을 쓸 수 없다. 그리고 그대도 내가 준 것을 나누지 않는 한 쓸 수 없다.

성령의 인식(vision)은 하찮은 선물도, 잠시 가지고 놀다가 치워 버릴 장난감도 아니다. 귀 기울여 이것을 주의 깊게 들으라. 이 인식을 단지 꿈으로, 가지고 놀 부주의한 생각으로, 이따금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 장난감으로 여기지 말라. 그렇게 여긴다면, 그것은 그대에게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에게는 모든 환영 너머를 바라볼 인식(vision)이 있다. 가시도, 낯선 이도, 평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보지 않을 능력이 그대에게 주어져 있다. 이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그대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의 구원자가 곁에 서 있음을 아는데, 누가 환영을 바라보기를 두려워하겠는가?

구원자와 함께, 그대의 인식(vision)은 하나님 자신이 줄 수 있는, 환영을 풀어헤치는 가장 위대한 힘이 되었다. 하나님이 성령에게 준 것을 그대가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의 해방을 그대에게 바라고 있다. 이는 그대가 이 마지막 장애물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음의 왕관을 씌울 가시도 못도 보지 않을 힘을 청하여 받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선택한 거처는 저편에, 베일 너머에 있다. 그 거처는 그대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되었으며, 이제 그대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대는 그것을 육체의 눈으로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그대는 지니고 있다. 그대의 거처는 시간이 시작된 이래로 그대를 불러 왔으며, 그대는 그 부름을 완전히 듣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대는 들었지만, 어떻게 보아야 할지, 어디를 보아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그대는 안다. 그대 안에 그 앎이 있으며, 그 앎은 자신을 감추어 온 온갖 공포로부터 풀려나 베일을 벗을 준비가 되어 있다.

4) 형제와 함께 걷기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부활절의 노래는 하나님의 아들이 결코 십자가에 못 박힌 적이 없다는 기쁜 후렴이다.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함께 눈을 들자. 그러면 우리 안에는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인식(vision) 안에는 환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천국의 열린 문으로 가는 길만이 있을 것이며. 천국은 우리가 고요함 속에서 함께 나누고 온유함과 평화 속에서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거처다.

그대는 거룩한 형제가 그대를 그 거처로 이끌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의 결백함은 그대의 길을 밝혀, 그대에게 인도의 빛과 확실한 보호를 내줄 것이다. 그리고 이 결백함은 그대가 용서의 백합을 놓아 둔 그의 안의 거룩한 제단에서 빛날 것이다. 그가 그대에게 환영으로부터의 구원자가 되게 하고, 백합을 바라보고 그대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그 새로운 인식(vision)으로 그를 바라보라.

우리는 서로의 길을 밝히며 두려움의 베일 너머로 나아간다. 우리를 이끄는 거룩함은 우리의 거처가 그렇듯 우리 안에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이끄는 이를 통해, 우리가 찾도록 정해진 것을 찾을 것이다. 이것이 천국으로, 부활절의 평화로 가는 길이다. 이 평화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과거에서 부활하여 현재로 깨어났다는 기쁜 자각으로 하나가 된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은 자유로우며,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과의 친교 안에서 제한이 없다. 이제 그의 결백함의 백합은 죄책감에 물들지 않았으며, 두려움의 차가운 냉기와 죄의 시들게 하는 병충해 둘 다로부터 완전히 보호받는다. 그대의 선물이 그를 가시와 못에서 구했으며, 그의 강한 팔은 그것들을 지나 그 너머로 그대를 안전하게 이끌 자유가 있다.

이제 기뻐하며 거룩한 형제와 함께 걸으라. 환영으로부터의 구원자가 그대를 맞이하러 왔으며, 그대를 자신과 함께 거처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그대의 구원자이자 친구가 있다. 그는 그대의 인식(vision)을 통해 십자가 처형에서 풀려나, 이제 자신이 있고자 하는 곳으로 그대를 이끌 자유를 얻었다.

거룩한 형제는 그대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고통 속의 구원자를 저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은 천국의 열린 문을 보고 그대를 불러 온 그 거처를 알아보며 노래하면서, 함께 결백함의 길을 기쁘게 걸을 것이다.

그대들을 그 거처로 이끌 자유와 힘을 서로에게 기쁘게 내주라. 그리고 힘과 자유가 기다리는 서로의 거룩한 제단 앞으로 나아가, 그대를 거처로 이끄는 밝은 자각을 내주고 받으라. 그대들 둘 다의 안에는 서로를 위한 등불이 켜져 있다. 그리고 그 등불을 형제에게 준 그 손을 통해, 그대들 둘 다 두려움을 지나 사랑으로 이끌릴 것이다.